흑인 민권 운동의 발상지인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수천 명이 선거구 재조정 반대 집회를 열고 흑인 정치 대표성 수호를 외쳤다. 보수 성향 주들이 흑인의 정치적 대표성을 보장해온 기존 선거구 체계를 손질하려는 움직임에 맞대응하는 시위다.
코리 부커 상원의원(민주당·뉴저지주)은 몽고메리 지역을 시민권 투쟁의 '성지'라고 일컬으며 "우리 세대가 지금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쟁취해준 권리와 자유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16일(현지시각)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열린 선거구 재조정 반대 집회에서 쓰인 시위 팻말이 앨라배마 주의사당 앞에 놓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집회 참가자들은 16일(현지시각)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열린 집회에서 "우리는 물러서지 않는다", "우리는 싸운다"와 같은 구호를 외쳤다.
앨라배마 선거구 재조정 소송 원고인 샬레일라 다우디는 이날 집회에서 "우리는 싸움 없이 물러나지 않을 것이며 '짐 크로'식 선거구 획정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짐 크로는 19세기 당시 흑인을 무지하고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희화화해 만든 캐릭터 이름이다. 이후 이 표현은 흑인과 백인을 차별하는 법률과 관행을 상징하는 용어로 쓰여왔다.
이번 논란의 배경에는 지난달 미국 연방대법원이 루이지애나 선거구 사건에서 내린 판결이 자리 잡고 있다. 이 판결은 이미 2013년 대법원이 과거 흑인 유권자 차별 전력이 있는 주들에 대한 연방 차원의 감시 장치를 약화시킨 데 이어, 흑인을 비롯한 소수 민족의 투표권 기능을 한층 더 축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루이지애나 선거구 판결에 따라 엄격한 유권자 신분증 제도와 유권자 등록 제한, 조기투표 축소, 투표소 변경 제한과 같은 규제를 도입할 길이 더 넓어졌으며, 과거에는 이런 변경을 하기 전 연방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했던 주들조차 이제는 보다 자유롭게 선거 규정을 손볼 수 있게 됐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딸 버니스 킹 목사는 "선거구 재조정은 흑인과 소외된 공동체가 민주주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수많은 희생을 감수한 세대의 유산에 대한 직접적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집회는 1965년 미국 앨라배마주 셀마 시위의 종착지였던 주의사당 앞까지 이어졌다. 이곳은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이 출범한 장소이자, 킹 목사가 연설을 했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선거구 재조정 시도가 과거 인종차별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는 반응도 나왔다.
70세 참가자 카멜리아 훅스씨는 "앨라배마가 앞으로 나아가는 듯하다가도 결국 두 걸음 뒤로 물러나는 느낌이다"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4일(현지시각)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열린 선거구 재조정 반대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시민권 운동 원로들은 수십 년간 희생을 통해 얻어낸 권리들이 불과 10여 년 만에 흔들리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75세 커크 캐링턴씨는 1965년 '피의 일요일(흑인 민권 운동가들이 참정권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의 강경 진압에 희생된 사건)' 당시 셀마 시위 현장에 있던 십대였다. 그는 당시 경찰 진압 과정에서 막대기를 든 백인 남성이 말을 타고 자신을 쫓아왔던 기억을 떠올렸다.
캐링턴씨는 "1960년대 거리로 나서 투표권과 평등권, 시민권을 얻기 위해 싸웠던 사람들에게 지금 상황은 정말 충격적"이라며 "6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그때와 같은 문제를 놓고 다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고 말했다.
몽고메리는 이번 연방대법원 판결의 여파로 실제 선거구 변경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2023년 연방법원은 앨라배마주가 흑인 주민들의 투표 영향력을 의도적으로 약화시켰다고 판단해, 흑인 유권자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후보를 선출할 실질적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앨라배마 제2연방하원의원 선거구를 다시 획정했다.
하지만 지난달 연방대법원 판결은 공화당이 해당 의석을 되찾는 데 유리한 새 선거구안 적용에 길을 터줬다.
현재 관련 소송은 계속 진행 중이지만 앨라배마주는 새 선거구안을 기준으로 오는 8월11일 특별 예비선거를 실시한다.
2024년 해당 지역에서 당선된 쇼마리 피겨스 하원의원(민주당·앨라배마)은 "이 문제는 개인의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모든 시민들의 정치적 대표성을 지키는 문제다"라고 정의했다.
반면 공화당 소속 네이선얼 레드베터 앨라배마주 하원의장은 "연방법원이 '강요'했던 선거구를 다시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앨라배마 선거구 재조정 소송의 대표 원고인 에번 밀리건은 "이것이 새로운 현실이라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그것이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현실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 허프포스트코리아는 미국 허프포스트와 제휴를 통해 기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번역·정리 강서원 허프포스트코리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