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이 장기 침체의 터널을 벗어나 올해 5년 만에 연간 영업이익 흑자전환을 현실화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기초화학 부문의 사업재편과 함께 중동 전쟁으로 발생한 반사이익은 이영준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겸 화학군 총괄대표 사장이 전문성을 발휘해 첨단소재사업을 확장하는 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4년 4월30일 이영준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겸 화학군 총괄대표 사장(당시 첨단소재사업 대표)이 전남 율촌산업단지에서 열린 롯데엔지니어링플라스틱 컴파운딩 공장에서 열린 착공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롯데케미칼
14일 롯데케미칼에 따르면 6월1일 롯데대산석화(임시 이름)를 물적분할 해 신설하고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해 9월 통합법인을 출범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대산 공장이 물적분할되는 롯데대산석화 및 HD현대오일뱅크과 합작법인인 HD현대케미칼을 하나로 합쳐 두 회사의 중복 설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겠다는 방안이다. 최종 통합법인은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가 50%씩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에틸렌을 생산하는 나프타분해설비(NCC)의 연간 생산능력은 기존 200만 톤에서 100만 톤가량으로 낮아진다.
롯데케미칼이 대산에서 보이는 행보는 공급과잉이라는 구조적 한계에 부딪혀 수익성이 악화한 석유화학업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추진되는 정부 주도 사업재편의 1호 프로젝트로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다. 이에 따른 상징성과 함께 실질적 효과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케미칼은 석유화학 사업재편의 근거인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업활력법)'에 따라 재편 과정에서 채권금융기관의 상환유예, 신규자금, 영구채 전환 등의 종합 지원을 받게 된다. 세제 혜택 및 인허가 합리화 등의 추가 수혜도 본다.
이와 관련해 롯데케미칼은 "대산공장 내 생산 공정의 일관성과 운영 효율성을 극대화하고자 한다"며 "사업구조의 통합 및 정예화를 통해 제조 원가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고 고부가 가치 제품 중심의 포트폴리오 전환을 가속화함으로써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제고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여수 공장 사업재편도 앞서 3월 산업통상부에 계획서를 제출한 만큼 프로젝트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여천NCC 및 여천NCC의 주주인 한화솔루션, DL케미칼과 협력을 지속해서 모색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이영준 사장은 석유화학 사업재편이라는 구조조정을 더해 최근 중동 전쟁으로 찾아온 기회를 타고 연간 흑자전환이라는 성과를 바라보고 있다. 특히 롯데케미칼이 올해 연간 영업이익을 거둔다면 2021년 이후 무려 5년 만에 흑자로 전환하는 것인데 석유화학 사업재편은 연결기업 변화로 이익 개선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요소다.
롯데케미칼은 1분기 적자에 머무를 것이라는 기존 시장 예상을 깨고 영업이익 735억 원을 거둔 것으로 잠정집계됐다. 분기 기준으로 10개 분기 만에, 햇수로는 2년 반가량 만에 영업이익을 창출한 것이다.
사업 전반에서 래깅효과(시차효과)를 크게 봤다. 2월 말 중동 전쟁 발발 이후 3월부터 제품 가격이 급등했는데 원재료로는 기존의 저가 나프타를 투입해 이익을 낸 것으로 수치로는 2500억 원의 효과가 발생했다. 이에 영업손실에 가장 큰 원인이었던 기초화학 부문에서도 영업이익 455억 원을 거두는 데 성공했다.
갑작스러운 중동 사태 이후 4년 가까이 석유화학업계를 괴롭혔던 공급과잉이 완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점도 중장기적으로 롯데케미칼의 실적 전망에 긍정적 요소다.
전유진 iM증권 연구원은 "중동의 석유화학 산업단지가 이란의 공격을 받으며 피해를 받았고 나프타 부족으로 아시아와 NCC 가동률이 하향한 것까지 고려하면 현재까지 생산차질 규모는 글로벌 공급량의 25%에 이른다"며 "유전과 정제설비, 항구, 터미널 등 중동 내 에너지 인프라 전반에 걸쳐 가동이 이뤄져야 석유화학설비가 정상화될 수 있기 때문에 고질적 공급과잉이 해소될 반전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역래깅효과와 글로벌 일부에서 에틸렌 증설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롯데케미칼 향후 실적개선에 변수로 여겨진다.
급등했던 제품 가격이 하락하고 고가 원재료 구매분이 투입되면 이익을 봤던 래깅효과가 반대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대표적으로 울산에서 진행되는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의 증설분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에 공급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분기 '깜짝' 흑자전환 이후 롯데케미칼의 올해 실적 전망치는 영업손실 3천억 원대에서 영업이익 275억 원으로 상향됐다. 아직 불확실성이 섞여 있지만 연간 수천억 원에 달했던 적자 폭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라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이에 이 사장은 실적 개선이라는 과제를 넘어서 롯데그룹이 요구했던 리더로서의 목표를 달성할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장이 롯데케미칼과 롯데그룹의 화학군 총괄대표에 선임된 2024년 말 롯데그룹은 인사에서 '경영체질 혁신과 구조조정'을 핵심 열쇳말로 삼았다.
롯데케미칼이 고부가가치 중심의 사업구조로 체질을 개선하는 데 힘이 붙은 가운데 이 사장이 전문성을 지닌 첨단소재 분야에서 사업 확장 성과에 시선이 몰린다.
이 사장은 첨단소재, 정밀화학, 전지소재, 수소에너지를 롯데케미칼의 4대 성장 축으로 제시했다. 이 가운데 첨단소재 부문은 기능성 컴파운딩(합성) 사업을 통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성과를 확대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의 첨단소재사업 자회사 롯데엔지니어링플라스틱은 올해 하반기 전남 율촌 컴파운딩 공장의 전체 준공을 거쳐 완전 가동에 돌입해 고객 맞춤형 소재를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일부 라인의 상업생산을 진행하고 있는데 전체 설비가 준공되면 연산 50만 톤 규모의 국내 최대 단일 컴파운딩 공장으로 자리매김한다. 롯데케미칼은 향후 시장 상황을 보고 추가 20만 톤의 증설도 검토하고 있다. 고성능 슈퍼EP(엔지니어링플라스틱)으로 제품군을 넓혀 피지컬 인공지능(AI), 우주항공 등 미래성장 분야의 소재 시장도 바라보는 것이다.
이 사장은 첨단소재 및 화학분야의 전문가로 평가된다. 1991년 삼성종합화학으로 입사해 제일모직 케미칼 연구소장, 삼성SDI PC사업팀장을 역임했다. 이후 삼성SDI에서 물적분할된 뒤 2016년 롯데그룹에 인수된 롯데첨단소재(옛 SDI케미칼)에서 PC사업부장을 지냈고 롯데첨단소재가 롯데케미칼로 합병된 2019년 말부터 2024년 말까지 첨단소재 부문을 이끌어 왔다.
이 사장은 첨단소재 부문의 컴파운딩 사업 확장을 시작부터 총괄하기도 했다. 롯데엔지니어링플라스틱은 2021년 순천시·광양시 등과 '율촌 첨단소재 투자협약'을 맺은 뒤 다음 해 부지구매를 마쳤고 2024년 착공에 이어 올해 하반기 율촌 컴파운딩 공장의 본격 가동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4월 이 사장은 취임 뒤 처음으로 진행한 'CEO인베스터미팅'에서 "미래 전략 방향성을 직접 설명하며 "기초화학은 선제적 사업재편을 통한 합리화로 경쟁력을 보완하고 첨단소재, 정밀화학, 전지소재, 수소에너지의 4대 성장 축을 탄탄히 쌓아 올려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