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를 20일 앞둔 시점에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제안한 'AI(인공지능) 국민배당금'이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다. 국민의힘은 김 실장의 AI 국민배당금 정책 제안을 '기업 이익을 뺏는 공산주의식 발상'이라 비판하면서 색깔론을 펼치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1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정작 자본주의의 최전선인 미국이나 글로벌 혁신 기업가들은 AI 시대의 생존 전략으로 '보편적 고소득'과 '이익 공유'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어 국민의힘 등 야권의 비판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14일 페이스북을 통해 "초과 이윤이든 초과 세수든, 이재명이 잘해서 번 돈이 아니다"며 "산업 발전에 훼방만 놓고는 마치 자신들이 잘해서 번 돈처럼 강제로 뺏어가겠다는 발상은 전형적인 조폭 마인드"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전날 야권과 일부 언론을 향해 '초과 세수'와 '초과 이윤'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은 채 AI 국민배당금에 대해 왜곡된 비판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이에 반박한 것이다.
반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시선집중에서 "AI가 우리 산업의 기본 인프라가 되면 반도체·AI 산업 등의 초과 이윤이 크게 발생할 수 있다. 그렇게 늘어난 세수를 국민에게 돌려주는 방식을 설계하자는 제안"이라고 국민의힘 주장을 비판했다.
진 의원은 "국민이 낸 세금을 국민을 위해 어떻게 잘 쓸 것인지를 논의하자는 것인데 그게 무슨 사회주의냐"며 "AI·로봇 시대가 오면 보편적 소득 배당을 정부가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이미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외신 보도에 따르면 세계 최고의 부호이자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CEO인 일론 머스크는 지난 4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인공지능(AI) 발전에 따른 일자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보편적 고소득'을 주장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연합뉴스
머스크의 주장은 김용범 정책실장의 AI 국민배당금보다 한 발 더 나아간 것으로 이 대통령이 강조해 온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머스크는 "연방정부가 시민들에게 보편적 고소득을 지급하는 것이 AI로 인한 실업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라며 "연방정부가 수표를 발행해 (보편적 고소득을) 지급하면 실업에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기업가이자 미래학자 피터 디아만디스는 4월 비즈니스 인사이더 인터뷰에서 머스크의 주장을 두고 "기술 발전으로 막대한 부가 창출되고 물가가 저렴해지면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 고소득’을 지급할 수 있게 된다는 견해"라며 "정부가 매달 3천 달러(약447만 원) 수준의 ‘보편적 고소득’을 지급하고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크게 낮아지면 그 돈의 가치는 훨씬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픈 AI의 CEO인 샘 알트먼은 이미 2021년에 펴낸 에세이 'Moore’s Law for Everything'를 통해 인류의 모든 자산을 공평하게 나누는 '아메리칸 에쿼티(American Equity)' 펀드가 필요하다고 제안하면서 AI가 창출하는 '가치'의 일부를 세금으로 걷어 모든 시민에게 주식처럼 배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도 2021년에 인간 노동자를 대체하는 로봇(AI)에게 이른바 '로봇세'(소득세)를 부과해 그 재원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재교육과 취약계층 복지에 활용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국민의힘의 비판 기준을 적용하면 샘 알트먼과 빌 게이츠는 '공산주의자'인 셈이다.
무엇보다 '기업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치는 미국 정부 역시 AI와 반도체 산업에서 발생하는 초과 이익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2023년 제정한 칩스법에는 1억5천만 달러 이상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예상보다 많은 이익을 거두면 미국 정부와 이를 공유해야 한다는 '업사이드 공유'(Upside Sharing) 조항을 담고 있다. 또한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5년간 자사주 매입이 금지되며 과도한 배당을 통해 공적 자금이 주주들의 배를 불리는 데 쓰이지 않도록 철저한 감시를 받는다.
국가 자원이 투입된 산업에서 발생한 '잭팟'을 기업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이 함께 나눠야 한다는 실용적 자본주의 모델을 추구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한 것이다.
유럽에서도 2017년부터 AI 활용으로 발생하는 초과 이윤, 데이터 기반 수익, 플랫폼 독점적 지위에서 발생하는 가치 등 기존 세법으로는 거두기 어려운 세금을 거둬 사회에 환원하자는 취지에서 'AI세'(AI tax)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을 고려할 때 이번 'AI 국민배당금' 논쟁은 아주 기초적 단계에서부터 생산적 논의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초과 세수'의 분배를 두고도 '공산주의'라는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 선거에 활용하려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CEO. ⓒ연합뉴스
글로벌 리더들 사이에서는 이미 2년 전부터 AI 이익 공유를 '공산주의'가 아닌 '인권과 시스템 유지'의 문제로 논의해 왔다.
세일즈포스닷컴 CEO인 마크 베니오프는 2024년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AI 격차(AI Divide)를 해소하기 위해 빅테크의 부는 반드시 공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로드를 개발한 기업인 앤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CEO도 2026년 1월에 열린 다보스 포럼 당시 월스트리트저널(WSJ) 편집국장 엠마 터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AI 확산으로) GDP 성장률이 5~10%로 뛰는 동시에 실업률이 10%에 달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이 정도로 거시 경제적 충격이 큰 노동시장 이동에는 정부가 일정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