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헌법 개정을 통해 '조국 통일' 조항을 사실상 삭제했다. '국부'로 추앙받는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업적도 헌법에서 상당 부분을 줄였다. 1948년 분단(단독 정부 수립) 이후 78년이 흐른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남한에도 통일 보다 평화 공존을 요구하는 여론이 커지는 상황과 어느 정도 궤를 같이하는 셈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월2일 노동당 외곽 청년단체인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청년동맹) 제11차대회의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일 통일부에 따르면 최근 공개된 북한의 새 헌법 서문에서는 기존 헌법에 10여 개 항목에 걸쳐 상세히 서술됐던 김일성 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업적이 모두 삭제됐다.
특히 김일성과 김정일이 '조국통일 위업'을 실현했다는 표현이 사라졌으며, 기존 헌법에서 네 차례 등장했던 '불멸의 업적'이라는 문구도 이번 개정본에서는 제외됐다. 북한 체제의 정통성을 상징하던 선대 지도자들의 혁명·통일 서사를 대폭 축소한 셈이다.
특히 새 헌법 전문에서는 '조국통일' 개념 자체가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신 남북을 별개의 국가처럼 구분하는 영토 조항이 새롭게 담겼다. 이는 과거 김일성이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통해 제시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통일 3대 원칙과, 이를 계승했던 김정일 시대의 노선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번 헌법 개정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강조해온 '두 국가론'을 헌법적으로 제도화한 것이기도 하다. 남북을 더 이상 통일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사실상 별개의 국가 관계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북한은 이번 개정 헌법에 '적대적 두 국가'나 '교전국 관계'와 같은 직접적인 표현, 북방한계선(NLL) 관련 구체적 조항 등은 포함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북한이 남북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기보다는 향후 정세 변화에 따라 관계를 조정·관리할 여지는 남겨둔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이번 개헌이 북한의 이른바 '정상국가화' 전략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혁명국가·사회주의 국가 이미지를 일부 걷어내고 보다 일반적인 국가 체제의 외형을 강조하려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기존의 '사회주의 헌법' 명칭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으로 수정했으며, 헌법 서문에 포함됐던 '김일성·김정일 헌법'이라는 표현도 삭제했다. 이와 함께 △혁명적 △자주적 사회주의 △제국주의 침략자 등 이념색이 강한 표현들도 상당수 삭제하거나 완화했다. 체제 선전보다 국가 운영의 형식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헌법 표현을 정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변화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통일 인식 변화와도 일정 부분 맞물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일연구원(KINU)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KINU 통일인식조사 2025' 결과에 따르면, 통일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점차 약화되는 흐름을 보였다. 이번 조사는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조사 결과 '통일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49%로 집계됐다. 이는 2014년 조사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반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면 통일은 필요 없다'는 주장에 동의한 응답도 63.2%에 이르렀으며, 해당 문항이 처음 포함된 2016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