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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가을, 글로벌 금융 시스템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과 함께 월스트리트는 공황에 빠졌고, 그 충격파는 태평양을 건너 전 세계 경제를 강타했다.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다. 

흔히 이 사태의 주범으로 월가의 탐욕을 꼽는다. 부실 채권을 정교하게 포장해 팔아치운 금융공학, 그리고 이 금융공학을 활용한 단기 수익 달성에 눈이 먼 투자은행들이 파국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탐욕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고 판을 깔아준 것은 다름 아닌 미국 정부의 매우 '인도적인' 질문이었다. 

[허프 생각] 가난하면 왜 비싼 이자 내나는 대통령의 '옳은' 질문 앞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 : 선의는 논의의 출발점이지 해법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 가난한 사람은 집을 가질 수 없는가." 진보를 표방한 클린턴 행정부부터 보수인 부시 행정부까지, 좌우를 막론하고 던졌던 이 도덕적 질문에 답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저소득층 주택 소유 확대를 국가적 목표로 내걸었다. 그리고 은행들이 저신용자에게 대출의 문턱을 낮추도록 강한 압박을 가했다. 이러한 '압박'이  파생상품의 복잡성, 신용평가사의 도덕적 해이, 금리 상승, 규제 공백 등 복잡한 금융 현실과 결합하는 순간, 비극은 전 세계를 집어삼켰다.

이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서 기시감이 드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왜 가장 여유 있는 사람이 낮은 금리를 누리고, 가장 절박한 사람이 가장 비싼 이자를 내야 하느냐"고 의제를 제시했고,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SNS에 '금융의 구조' 시리즈를 연재하며 "신용등급 숫자가 대출의 성패를 가르고, 금리 높낮이를 정하는 분류가 정말 공정한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이들의 질문은 분명 ‘옳은 질문’이다. 금융은 경제의 혈맥인 동시에 사회의 안전망으로서 기능해야 하지만, 유독 그 사회적 책임 앞에서는 지금까지 눈을 감아왔다. 불평등한 현실의 급소를 찌르는 이러한 질문들이 우리 사회에게 던지는 함의는 분명 새겨야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질문이 너무나 옳기 때문에 우리는 이 문제를 더욱 신중하게 다뤄야만 한다.

논의의 핵심은 ‘이자의 본질’에 있다. 고신용자가 낮은 금리를 적용받는 것은 그들이 가진 '특혜'가 아니다. 돈을 갚지 못할 확률이 낮다는 데이터로부터 도출된 결과물일 뿐이다. 반대로 저신용자의 높은 금리 역시 그들에 대한 '징벌'이 아니라, 금융사가 떠안아야 하는 위험에 대한 ‘보험료’ 성격을 지닌다. 사고 이력이 많은 운전자의 자동차 보험료가 무사고 운전자의 그것보다 높은 이유와 정확히 같은 원리다. 

물론 대통령과 정책실장의 발언이 시장 원리 자체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현재의 신용평가 체계가 실제 부실 확률을 정교하게 반영하고 있는지, 아니면 단지 기존의 불평등을 관성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발언들이 신용평가 체계를 정밀하게 고도화하거나, 정책 금융의 파이를 키우는 방향의 건전한 논의의 촉매제로서 기능한다면 얼마든지 환영할만한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발언들이 ‘정치적 압박’이라는 형태로 시장에 메시지를 던질 때 발생한다. 민간 금융의 작동 방식에 정부가 정치적 논리를 앞세워 압박을 가하는 경로를 택하는 순간, 본래 국가와 사회가 부담해야 할 금융 취약계층 복지의 책임은 고스란히 민간에 전가되고 데이터와 리스크 관리가 아닌 정치적 득실이 금융 시스템을 지배하게 된다. 

김 실장은 '금융의 구조' 시리즈를 SNS에 게시하고 이틀이 지난 뒤 "정부가 은행의 팔을 비틀겠다거나, 외국인 지분을 강제로 낮추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며 민간 금융에 국가가 개입하자는 주장은 더더욱 아니다"라며 압박을 부인했다. 하지만 시장과 금융권이 받아들이는 무게감은 여전히 상당해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대통령실의 질문에 즉각 행동으로 답했다. 김 실장의 발언이 나온 즉시 간부회의를 열고 신용대출 시스템과 포용금융에 대한 향후 대응 방향 등을 논의했다. 김 실장이 "건전성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구조적 모순을 방치한 채 성벽을 높이는 데만 급급했던 것 아니냐"며 직접적으로 금융당국을 지적한 데 따른 것이다.

금융은 감정이나 당위가 아닌, 냉혹한 리스크 계산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외부의 거센 압박이 그 '계산'의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하면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붕괴의 균열을 일으킨다. 

대통령의 질문은 옳고 정책실장의 문제의식도 정당하다. 하지만 옳은 질문이 언제나 옳은 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정부의 선의는 훌륭한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만, 결코 문제 해결의 '방법'이 될 수는 없다. 

2008년 가을, 세계 경제를 무너뜨린 붕괴의 시작 역시 ‘옳은 질문’이었다. 우리는 이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는 값비싼 오답 노트를 가지고 있다. 당시 무너진 시스템의 최대 피해자는 탐욕스러운 월가도, 억만장자들도 아니었다. 정부의 선의와 시스템을 굳게 믿고, 없는 돈을 쥐어짜 내 생애 첫 보금자리를 마련했던 평범한 저소득층들이었다. 뜨거운 가슴으로 던진 질문일수록, 차가운 머리로 신중하게 답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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