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에서 산모가 흔히 하는 질문 중 하나가 "임신 몇 주부터 안정기인가요?"이다. 원하던 임신에 성공하면 물론 기쁘나, 이후부턴 혹시나 잘못될까 봐 늘 노심초사하는 것이 산모의 마음이다.
일반적으로 임신에서 안정기를 13~16주로 보지만, 항상 방심은 금물이다. AI 이미지.
과거에 비해 임신이 많이 귀해졌다. 임신과 출산은 인생에서 우선순위가 계속 뒤로 밀리며 생물학적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소중한 '한 번'만 임신하며, '다음'의 여유는 점차 사라지는 추세이다. 산모는 임신의 모든 것이 처음인데, 무사히 출산해야 한다는 압박까지 받는다.
초기 임신에서 통증과 질 출혈은 꽤 흔하게 발생하는 증상인데, 하필이면 유산의 징조도 비슷하므로 산모는 다소간의 불안을 항상 품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대체 언제쯤이면 좀 마음을 놓아도 되는가?'라는 의미로 '안정기'라는 용어가 생긴 듯하다.
부부에겐 주변의 관심이 꽤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특히 남들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우려 섞인 조언이 그러하다. "임신 몇 주까지는 유산의 위험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더라." 같은 말은 산모 본인이 더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나중에 정말 안 좋은 일이 발생하면 상황이 더욱 난감해진다.
그런 가능성까지 고려하여 축하조차 부담이 되는 부부는 임신 사실을 최대한 나중에 알리고 싶어 한다. 따라서 '임신 안정기'는 '언제쯤이면 주위에 임신 사실을 알려도 괜찮을까요?'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임신 안정기는 의학 교과서나 학술지에 정식으로 정의된 표준 의학 용어는 아니다. 오히려 교과서는 모든 임신 기간 중엔 뜻하지 않은 변수가 발생할 수 있으니 방심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다만 임신 중기에 돌입하면 여러모로 산모의 몸 상태가 안정되어 보통 이 시기를 진료 현장에서 '안정기'라고 많이 말한다.
40주인 임신 기간을 13주씩 세 등분하여 '제1삼분기', '제2삼분기', '제3삼분기'라고 한다. 그중 두 번째 시기인 제2삼분기가 시작하는 13주를 안정기의 기준으로 설명하는 편이며, 16주를 기준으로 하는 의사도 있다.
13주를 기준으로 하는 이유는 유산의 80%가 그전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13주가 지나면 태반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유산의 위험이 많이 감소한다. 그렇다면 조금은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16주를 기준으로 말하는 경우는 산모가 느끼는 몸 상태에 주목한다. 임신 후 태반 호르몬이 증가하면서 산모는 입덧을 겪는다. 입덧이 호르몬 때문이라는 건 알지만, 왜 하필 울렁거리고 구토까지 하도록 작용하는지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임신 초기는 태아의 주요 장기가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혹여 해가 될 음식을 먹지 말라고 입덧이 있는 것 같다는 추측 및 해석만 있을 뿐이다.
다만 무엇이 해가 될지 모르니까 전부 못 먹게 만드는 게 문제이다. 개인차는 있으나 산모는 하루 종일 멀미하는 것 같은 느낌이 지속되므로 몸 상태가 좋을 수가 없다. 그러다가 16~20주 정도 되면 태반 호르몬이 안정화되면서 입덧이 호전된다. 입덧으로 말라가던 산모가 임신 전의 생기를 되찾을 정도로 몸 상태가 매우 좋아진다. 따라서 16주가 지나면 산모가 비로소 좀 살만한 느낌이 든다며 이를 안정기로 말하기도 한다.
진료실에서 산모에게 일반적으로 '임신 안정기'를 설명할 땐 필자도 13주나 16주를 말한다. 하지만, 필자는 '20주까진 임신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곤 했다. 산부인과 의사로 오래 일하며 여러 가지 사례를 봐온 탓이다.
예를 들어 치명적인 태아 기형이 발견되어 임신 유지를 놓고 부부와 함께 고뇌에 빠지게 되는 일들이 간혹 있다. 기다리던 아기가 생겨 부부는 이미 주변에 임신 사실을 다 알린 상황이었다. 그런 정리 또한 여러모로 부부에게 큰 스트레스였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산모는 정상 임신과 출산을 하며, 예상하지 못한 변수는 드물게 발생한다. 따라서 '당연히 나도 별일 없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확률적으로는 합리적이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이 자꾸 '혹시 나에게도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쩌지?'라는 불안을 키우고 신경 쓰이게 만든다. 주변에도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으니, 필자는 개인적으로 ‘20주’라는 ‘비밀 작전’을 계획한 것이다.
그런데 왜 20주인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태아의 염색체 이상 및 기형에 대한 검사가 대부분 완료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NIPT(비침습적 산전 기형아 검사)가 있어서 염색체 이상은 12주면 결과를 알 수 있지만, 염색체 이상이 없어도 태아 기형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20주쯤 실시하는 정밀 초음파까지 보고 안심을 하겠다는 의미이다.
두 번째는 20주가 되면 자궁이 배꼽 위치까지 올라올 정도로 커지기 때문에 슬슬 배가 나오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산모인 게 티가 나서 어차피 숨기기 어려워진다.
세 번째는 20주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이다. '유산'의 정의는 '임신 20주 이전에 임신이 종결되는 것’이다. 임신 20주 이후부턴 통계에 유산이라는 개념으로 집계되지 않으니, 모든 유산은 20주 이전인 셈이다. 더는 유산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태아가 많이 컸다는 의미이다. 마침 딱 40주 임신 기간의 절반이다.
물론 모든 산모가 필자가 계획한 '20주의 비밀작전'에 따를 필요는 없다. 모성보호 제도가 필요한 산모는 임신낭만 확인해도 바로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기도 한다. 13주든, 16주든, 20주든 간에 모든 산모의 신체적, 사회적인 임신 안정기는 저마다 다르다. 어차피 임신 중 정말로 안심할 수 있는 시기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산모가 40주라는 긴 여정 중에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다는 게 임신 안정기가 가지는 의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