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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위에 쌓은 성은 높을수록 쉽게 무너진다. 선행학습을 높게 쌓아 올리는 사이, 기초학력이라는 지반은 내려앉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한 EBS 강사가 공개한 중학교 3학년 E등급 비율이다.

'시발'과 '족보'에 대한 오해는 문해력 문제 이상이다 : 선행학습이 추앙 받는 동안 학생 40%가 '낙제생' 된 이 학급을 보라
EBS 영어 강사 정승익은 지난 21일 인스타그램에 2025년 대구 S구 소재 H중학교 3학년의 D등급 퍼센트를 공개했다(왼쪽), 수업시간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든 중학생들의 모습이다. AI 합성 이미지 ⓒ정승익 인스타그램

EBS 영어 강사 정승익은 지난 21일 인스타그램에 2025년 대구 S구 소재 H중학교 3학년의 성적 분포를 공개했다. 그는 "전국적으로 중학교에서 40%가량이 E등급(60점 이하)을 받고 있다"며 "교육열이 높고 생활 수준이 높은 지역마저 E등급이 30% 이상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잠시 멈추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학교는 성취평가제(절대평가) 5등급(A-E) 체계로 운영된다. 이 중 가장 낮은 단계인 E등급(60점 미만)은 사실상 해당 학년의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기초학력 미달'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위 구간의 존재 자체보다, 그 비중에 주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기초학력의 마지노선이라 불리는 E등급에 학생 10명 중 4명이 몰려 있다는 것은 우리 교육이 중간층 없이 상위권과 하위권으로 극단적으로 갈라진 학력 양극화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선생님, 욕하신 거예요?"

기초학력 저하의 핵심 고리로는 '문해력 실종'이 꼽힌다. 지식을 쌓는 과정이 기초학력이라면, 문해력은 이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기본 능력이다. 이 능력이 약해지면서 학생들은 학습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 기초학력 미달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글자는 읽을 줄 알지만 맥락과 정보를 파악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늘면서 교실 현장에서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하고 있다.

교사가 "이것이 사건의 시발점(始發點)"이라고 설명하자 한 학생이 '왜 욕을 하시냐'고 묻는가 하면, 가족의 계보를 기록한 '족보(族譜)'를 설명하자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족발 보쌈 세트'가 먼저 떠오르는 식이다. 잠자리에 펴는 '이부자리'를 두고는 '별자리 이름이냐'고 묻는 경우도 있었다. 

현장의 목소리는 통계로도 증명된다. 2024년 10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발표한 '학생 문해력 실태 교원 인식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교원 92%가 "학생 문해력이 과거보다 떨어졌다"고 답했다. 또 지난 1월 발표된 '2024 서울 학생 문해력 진단검사' 결과에서도 고등학교 1학년 학생 10명 중 3명이 문해력 기초 이하 수준으로 나타났다. 

'선행'에 매몰된 사이 무너진 '현행 학습' 

정 강사는 교육 현장이 기초학력 문제에는 무관심한 채, 선행학습 중심의 담론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3쯤 되면 고등 선행을 바짝 하면서 선행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전국적으로 최소 30%, 많게는 40%가 넘는 아이들은 중3임에도 중3 교과서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결국 선행이 아니라 '현행'을 제대로 못 하게 되는 아이들의 비율이 전국적으로 30%가 넘는다"고 꼬집었다. 

'시발'과 '족보'에 대한 오해는 문해력 문제 이상이다 : 선행학습이 추앙 받는 동안 학생 40%가 '낙제생' 된 이 학급을 보라
수학 강사 정승제가 지난 2023년 11월 5일 방송된 '성적을 부탁해 티쳐스'에 나와 현행 학습의 중요성을 말했다. ⓒ채널A

이 같은 문제의식은 수학 일타강사 정승제 씨의 과거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정 씨는  2023년 11월 방송된 채널A 프로그램 '성적을 부탁해 티쳐스'에서 "고3 때 중2 도형을 공부하고, 중2 때 고1 도형을 공부한다"며 선행 위주의 교육을 비판했다. 그는 "우리나라 중학생들이 중등 수학을 제대로 푸는 나라였으면 좋겠다"며 학년에 맞는 현행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국가 통계와 비교해도 현장의 체감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7월 공개된 '2024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중3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국어 10.1%, 수학 12.7%로 나타났다. 학교 현장의 E등급 비율이 이보다 훨씬 높게 나타나는 것은 실제 수업 현장에서 소외되는 학생의 범위가 공식 통계보다 훨씬 넓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모두가 상위권일 필요는 없지만, 누구도 기초에서 배제돼선 안 돼

정승익 EBS 강사는 "무엇이 그들을 공부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이건 지역과 가정을 초월한 우리 시대의 평균값"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학교 시험이 어렵다, 여기 중학교 시험이 어렵다는 식으로 여기며 중학이라는 골든타임을 놓쳐 버리면 그 아이는 고등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며 "그렇게 수많은 아이들이 잠들어 버린다"고 경고했다. 

기초학력은 글을 이해하고 정보를 판단하는 기본 능력이자 모든 학습의 출발점이다. 특히 중학교는 국가가 책임지는 마지막 의무교육 과정이다. 고등학교 진학 이후에는 학습의 주도권이 개인에게 더 크게 넘어가는 만큼, 이 시기를 놓친 채 고등학교에 진학할 경우 수업 이해 자체가 불가능해지며 결국 학습 포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모두가 상위권일 필요는 없지만, 누구도 기초라는 출발선에서 배제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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