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경기에는 '파울', 즉 반칙이라는 규정이 있다. 쉽게 말해 선수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주는 페널티다. 승패와 상관없이 나오는 몇몇 비신사적 행위를 제외한다면 반칙의 특징은 선수들이 승리를 향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상대 팀이나 선수를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정도를 넘는' 행위를 정해 놓고 이를 막는 제재 수단인 셈이다. 상대가 이기는 것을 막고 우리 팀이, 그리고 내가 이기려 들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승리를 위한 산물이다.
올해 2월 열린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SK 나이츠 홈경기에서 팬들이 환호하고 있는 모습. ⓒSK 스포츠
그런데 승부의 세계에서 반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다. 바로 '이기지 않으려고' 할 때다. 이처럼 '경쟁'이라는 스포츠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 국내 4대 프로스포츠 가운데 하나인 남자프로농구(KBL)에서 발생했다.
지난 8일 KBL 정규리그 마지막 날, 서울 SK 나이츠와 안양 정관장 레드부스터스 경기에서 SK는 2점차로 패배했고 이른바 '고의패배' 의혹에 휩싸였다. 점수 차이만 보면 치열한 경기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파장이 큰 경기였다.
시소게임으로 진행되던 경기종료 3분 전, SK는 팀반칙(반칙을 하면 상대가 자유투를 얻는 상황) 상태에서도 의미 없는 반칙을 지속해서 범했다. 공격 때에는 다소 무리한 슛을 쐈고, 경기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얻은 자유투 가운데 하나는 아예 림을 맞지 않고 왼쪽으로 빗나가기도 했다.
농구를 잘 아는 팬들은 SK가 일부러 패배했다고 주장했다. 경기종료 3분 전 해당 상황에서는 그런 반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소 무리했던 슛이 골망을 흔들자 오히려 당황한 듯한 선수의 모습이 이상하다는 것을, 자유투가 좌우로 림을 맞지 않을 정도까지 빗나가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TV중계를 담당한 아나운서는 경기 도중 "의도를 알기 어려운 운영"이라고 에둘러 표현했고, 상대팀이었던 정관장 감독이 SK 감독을 쳐다보는 이상한 눈빛도 모두가 확인했다.
SK는 그 경기에서 패배하면서 6강 플레이오프에서 단기전 강팀으로 꼽히는 부산 KCC 이지스(6위)를 피해 2023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5위)를 만날 수 있었다. 3위와 6위, 4위와 5위가 맞붙는 플레이오프 시스템에서 3위 대신에 일부러 4위를 노린 것이라고, 팬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SK그룹은 재계에서도 오랫동안 국내 스포츠 발전에 기여해 온 그룹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SK는 SK 나이츠의 농구뿐 아니라 축구, 핸드볼, e스포츠 등의 프로스포츠 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SK의 스포츠 사랑이 더욱 빛이 나는 것은 프로스포츠뿐 아니라 빙상, 역도, 수영, 근대5종, 높이뛰기 등 여러 아마추어 스포츠 종목 선수들을 후원해오고 있다. 중고등학교 유망주 발굴 및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 대한펜싱협회와 대한핸드볼협회에는 2000년대 중반부터 후원하면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런 행보는 SK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실천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이는 2021년 2월 프로야구의 SK 와이번스를 매각할 때 재조명됐다. 재정악화 등의 사유가 없었음에도 당시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SK 와이번스의 매각을 놓고 재계, 스포츠계의 시선이 쏠렸다.
당시 SK그룹은 ESG 경영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보다 지원이 더 절실한 비인기 종목을 지원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SK 스포츠' 공식 홈페이지를 들어가면 'ESG탭'이 별도로 마련돼 있고 여기에서 "SK는 스포츠 ESG 실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설명과 함께 그동안의 노력이 담겨있다.
ESG의 목표를 보면 SK가 스포츠 ESG를 통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ESG의 목표는 그저 사회공헌에서 머물지 않고 실행 주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이다. 탄소배출을 줄이고, 노사 관계를 재정립하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구축하는 것은 이제 단순한 사회적 책임을 넘어 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단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스포츠 ESG의 궁극적 지향점은 무엇일까. 단순히 스포츠구단이나 선수를 매개로 사회공헌사업을 늘리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스포츠가 지속가능하려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치열한 경쟁'이 전제로 깔려 있다. 매 순간이 경쟁인 스포츠에서 ESG란 이기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감동을 나누고 팬과 함께 행복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이 문구는 포털에서 SK 스포츠를 검색하면 나오는 한 줄 설명이기도 하다. 팬들은 '승리를 향한 열망'을 확인했을 때 스포츠의 존재가치를 느낀다.
다시 SK 나이츠의 고의패배 논란으로 돌아오면 고의패배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결론이 난 모양새다. 문제의 경기 결과로 SK와 플레이오프에서 만나게 된 소노의 감독과 선수는 자신들이 '선택' 당했다고 표현했다. KBL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SK 감독에게 벌금 500만 원을, SK 구단에게는 경고 조치를 내렸다. KBL에 따르면 고의패배 의혹이 인정된 것은 아니고 '오해를 살 만한 경기를 했다'는 점에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벌금과 경고 조치가 나왔다.
이를 종합하면, 용맹스럽고 스피디한 '기사단'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되돌리기 어려워 보인다. 4위로 정규리그를 마친 SK는 '언더독' 소노에게 0승 3패로 패배하고 올 시즌을 마무리했다. 만약 SK가 승리해 좋은 성적을 냈더라도, 그 가치가 얼마나 인정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선을 논하는 와중에 결과가 그리 중요하지도 않지만, 결국 '명분'과 '실리'까지 모두 잃어버린 SK 나이츠와, 그리고 ESG를 강조하는 SK그룹에게 같은 SK의 프로스포츠(e스포츠) 구단인 T1의 '페이커' 이상혁 선수가 주는 메시지는 남다르다.
이상혁 선수는 e스포츠도 스포츠라고 볼 수 있냐는 과거 기자의 질문에 "경기를 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분께 좋은 영향을 미치고 경쟁하는 모습이 영감을 일으킨다면 그것이 스포츠로서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SK 나이츠의 경쟁하는 모습이 팬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줄 수 있었는지, ESG를 강조하는 SK그룹 스포츠단의 지속가능성에 부합했는지, 생각해 볼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