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이를 단발머리로 살았다. 견딜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무거워진 머리칼이었다. 미용실에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일이 너무 바빠 별수 없이 참아야 했던 시간이 길어봤자 3개월이었을 정도로 긴 머리가 답답했다. 미용실이 문 연 시간 안에 미용실에 갈 수 있을지가 제약이었을 뿐, 일터나 집 근처에 갈 미용실이 없어서 내 선택을 접어야 했던 적은 없었다.
신지혜 기본소득당 최고위원
흔한 미용실의 존재조차 모두에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한 것이 있다. 보고 있으면 몽글한 마음이 들게 하고 응원까지 하게 되는 예능 <보검 매직컬> 이야기다.
연기를 잘하는 줄은 알았지만, 음악까지 잘한다는 사실을 다른 예능으로 보여준 배우 박보검이 알고 보니 이용사 국가 자격증까지 있었다. 군대 복무할 때 부대원들의 이발을 담당했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작정하고 살려 배우의 매력을 증폭시키고야 말겠다고 작정한 예능인 듯하다.
박보검이 애정과 정성을 듬뿍 담아 주민들의 머리를 매만질 것을 예상했던 모양인지 기다리는 시간을 다르게 채워줄 매력적인 동행도 있었다.
배우 이상이는 네일리스트 자격증을 따서 <보검 매직컬>에 합류했고, 배우 곽동연은 마을 주민에게 간식을 대접하고 일하느라 배고플 동료를 위해 요리를 배워 함께했다.
주민에게 멋진 헤어스타일과 추억으로 보답하기 위해 이용사 자격증에 그치지 않고 미용사 자격증까지 따 미용실을 연 박보검과 동료들의 진정성은 마을 주민을 대하는 태도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민 속에 녹아 들어가려는 진심과 다정함에 저절로 몽글해지다가도, 육아 때문에 1년 만에 미용실에 왔다는 귀촌한 주민의 사연에는 숙연해진다. 슈퍼도, 미용실도 없는 시골 마을에서 머리를 자르려면 도시에서보다는 더 큰 결심을 해야만 하는 게 육아의 고단함과 함께 전해져서다.
(사진 왼쪽부터) 배우 박보검, 이상이, 곽동연씨가 출연한 TVN 예능 보검매직컬의 한 장면. ⓒTVN
<보검 매직컬> 촬영 장소인 전북 무주의 앞섬 마을은 80가구 남짓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인구가 줄어든 마을 주민은 머리 자르기와 같은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더 수고롭게 움직여야 한다. 미용실과 같은 공간이 인구가 줄어 적자 볼 것이 뻔한 곳에 들어설 리 없기 때문이다.
<보검 매직컬>이 한창 방영 중인데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전북 무주군이 1년에 80만 원의 기본소득을 모든 주민에게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전북 무주군은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 지역에 선정되지 않았지만, 향후 전국적으로 확대될 것을 대비해 군비만을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주민들이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과 기본소득이 생겨 동네에 돈이 돌고 더 많은 이들이 작은 마을로 이주해 온다면 동네 미용실이 탄생하는 변화가 생길까.
미용실 이름을 <보검 매직컬>로 지은 이유는 박보검이 주민에게 마법 같은 순간을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마법은 유명하고 어여쁜 젊은 배우가 시골 마을을 찾아온 것만을 의미하진 않았을 것이다.
미용실도 없는 외진 마을에서 사는 이들이 귀하게 대접받으며 머리하는 시간과 기회가 생기는 것 역시 마법처럼 기억될 순간일 것이다. 무주군 기본소득이 단 한 번의 마법이 아닌 동네 미용실에서 자신을 가꿀 수 있는 일상의 변화를 불러오길 기대한다.
글쓴이 신지혜는 기본소득당의 정치인이다. 1987년 부산에서 태어나 통영여자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과 함께 '기본소득'이라는 정치적 비전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2020년 기본소득당을 창당했다.
최근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정치합니다> 책을 출판했다. 일상에서의 소소한 장면을 자연스레 정치의 한 장면과 연결하며 책 쓴 경험을 살려 일상의 장면에서 발견한 정치의 의미를 독자에게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