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회당의 토대를 닦고 40년에 걸쳐 성공적으로 이끈 리오넬 조스팽 전 프랑스 총리가 별세했다. 향년 88세. 조스팽 전 총리는 올해 1월 수술을 받은 뒤 자택에서 요양 중이었으나 구체적 병명이나 사망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리오넬 조스팽 전 프랑스 총리. AI 이미지.
조스펭 총리는 22일(현지시각) 유명을 달리했다고 뉴욕타임스가 24일 전했다.
조스팽 전 총리는 프랑스의 대표적 엘리트 코스로 꼽히는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뒤 프랑스 외무부 경제국에서 관료로 일했다. 1971년 사회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에 발을 들였다.
조스팽 전 총리는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과 함께 프랑스 좌파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꼽힌다. 조스팽 전 총리는 사회당에 입당한 당시 당을 재건하던 미테랑 전 대통령의 눈에 들어 빠르게 입지를 다졌다.
조스팽 전 총리는 미테랑 대통령이 1981년 대선에서 승리한 뒤 같은 해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주요 정치인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조스팽 전 총리는 1988년에는 미테랑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교육부 장관에 임명됐다.
LA타임스의 1997년 보도에 따르면 미테랑 전 대통령은 조스팽 전 총리를 두고 생전에 "이 사람은 최고의 직책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테랑 전 대통령과 끝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은 아니었다. 1993년 총선에서 사회당이 참패하면서 조스팽 전 총리와 미테랑 전 대통령의 관계는 소원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스팽 전 총리는 1995년 2월 사회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면서 정치적 홀로서기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조스팽 전 총리는 같은 해 치러진 대선에서 자크 시라크 공화국연합당 대선 후보에게 패배했다. 조스팽 전 총리는 1997년 시라크 전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고 실시한 조기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의회를 이끄는 총리가 됐다. 이에 따라 프랑스에서는 우파 시라크 대통령과 좌파 조스팽 총리가 이끄는 '좌우 동거정부'가 꾸려졌다.
조스팽 전 총리는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총리로 일하면서 주 39시간이던 프랑스 법정 근로시간을 35시간으로 줄였고, 저소득층의 의료접근성도 개선해 호응을 얻었다.
그는 총리 재임기간에 경제성장과 실업률 하락, 국영기업 에어프랑스의 민영화를 이끌며 행정가로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평생 꿈꿨던 대권을 잡는 데는 실패했다. 조스팽 전 총리는 2002년 대통령 선거에 나섰지만 1차 투표에서 극우 후보인 장 마리 르펜에게 밀리면서 3위에 그쳤다. 결국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