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선수들 17일(현지시각) WBC 결승전에서 미국을 꺾고 우승에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8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위치한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WBC 결승전에서 베네수엘라가 미국을 3대 2로 제압하며 짜릿한 우승을 거뒀다. 이번 우승은 베네수엘라가 아마추어 월드시리즈에서 정상에 올랐던 1945년 이후 무려 81년 만에 거둔 국제 대회 최고 성적이다.
그동안 메이저리거를 많이 배출했던 베네수엘라였지만, 국가대표팀 경기에서는 기대한 만큼의 성적은 나오지 않았다. 이번 WBC 베네수엘라 대표팀은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호세 알투베(휴스턴 애스트로스) 같은 메이저리그(MLB) 선수들이 모여있는 황금세대 멤버들로 구성됐다. 이번 WBC 우승은 베네수엘라 국가대표팀 역시 강하다는 것을 세계 무대에 증명한 계기가 됐다.
특히 이번 베네수엘라와 미국의 결승전은 '마두로 더비'로 불리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군 특수부대가 지난 1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현직 대통령이 '불법' 체포해 납치한 이후 열린 양국 첫 스포츠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한국시간) 트루스 소셜에 남긴 글 ⓒ트루스 소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WBC 결승전 직후 "(51번째)주 승격!!!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이라는 글을 올리며 조롱하기도 했다.
사실상 미국의 관리 하에 놓인 베네수엘라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열린 이번 맞대결은 단순한 야구 경기를 넘어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베네수엘라 야구 연맹(Fevebeisbol)은 그동안 마두로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왔다. 마두로 대통령이 체포되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를 직접 관리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야구 대표팀에게도 정치적 압박이 상당했다.
이러한 배경 탓에 베네수엘라 대표팀의 우승은 더욱 '기적'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대회 직전 미군의 마두로 체포 작전 여파로 양국 간 항공편이 전면 중단되고 비자 발급마저 불투명해지면서, 선수단의 마이애미 입국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마르 로페즈 감독과 선수들은 "우리는 정치가 아닌 야구를 하러 왔다"며 정치적 압박에 선을 그었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베네수엘라 출신 스타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팀을 재정비했고, 조국에게 승전보를 전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마이애미 땅을 밟았다.
베네수엘라의 우승은 대회 내내 제기된 개최국 특혜 논란을 실력으로 잠재웠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있다. 이번 WBC는 대진표 구성과 휴식일 배정이 미국과 일본에 지나치게 유리하게 짜였다는 외신들의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미국은 모든 경기를 안방에서 치르는 이점을 누렸으나, 베네수엘라는 당당히 실력으로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극심한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 이번 우승은 단순한 스포츠 승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외신들은 베네수엘라 전역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국민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고 전하며, 야구가 선사한 위로에 주목했다.
결승전 직후 승리의 주역들은 벅찬 감동을 감추지 못했다. 결승타의 주인공 에우헤니오 수아레즈는 폭스스포츠 인터뷰에서 "이 승리는 베네수엘라를 위한 것"이라며 "우리는 조국을 향한 열정과 사랑으로 뛰었고, 이 유니폼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팀의 정신적 지주인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 또한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내 커리어 통틀어 이번 우승이 단연 1위"라며 "우리 국민들은 오늘 이 승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대표팀을 이끈 오마르 로페즈 감독도 공식 기자회견에서 "지금 우리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축제를 즐기고 있을 텐데, 그게 나를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게 한다"며 "이것이 내가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