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표한 약가제도 개선방안에 대해 제약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 그래픽 인공지능(AI) Gemini 생성
정부가 지난 11월28일 발표한 약가제도 개선방안에 대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반발이 거세다.
특히 제네릭 약가 산정률 인하로 경영 악화와 투자 축소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제네릭은 신약의 특허 만료 후 동일제제로 개발된 후발 등재 의약품을 말한다.
정부가 추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2월 개편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어, 업계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될지 관심이 모인다.
◆ 정부 “신약 중심 제약산업 생태계 조성”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약가제도 개선방안은 △신약 개발과 필수약 공급을 촉진하고 △필수의약품에 대한 국민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고 △제네릭 중심의 산업 생태계를 개선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특히 OECD 평균의 2.17배에 달하는 높은 제네릭 약가 때문에 국내 기업이 신약 개발보다 제네릭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를 바로잡겠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시각이다.
주요 내용을 보면, 먼저 혁신 신약(중증·난치치료제 등)은 제약사에 대한 보상을 강화한다. 신약 약가에 대한 비용효과성 평가 체계를 단계적으로 고도화해 적절한 가치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또 희귀질환 치료제 등의 건강보험 등재 기간을 현재 최대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단축하고 약가유연계약제 적용 대상도 대폭 확대한다. 약가유연계약제는 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 간 별도 계약을 체결해 건강보험 신속 등재를 지원하는 제도다.
아울러 국가필수의약품과 퇴장방지의약품을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도록 대응체계를 강화한다. 국가필수의약품은 보건의료상 필수적이지만 시장기능만으로는 안정적 공급이 어려운 의약품을 가리킨다. 퇴장방지의약품은 환자의 진료에 반드시 필요하나 경제성이 없는 약제로서 생산 또는 수입 원가 보전이 필요한 약제를 뜻한다.
정부는 약가관리 전반을 합리화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제네릭의 최초 등재 시 약가산정률을 현행 오리지널 약가의 53.55%에서 40%대로 하향 조정한다. ‘계단식 인하’와 ‘다품목 등재 관리’를 통해 제네릭의 무분별한 시장 진입도 막는다.
계단식 인하 정책은 동일 성분의 여러 제네릭 제품이 건강보험에 등재될수록 약가를 단계적으로 낮추는 방식이다. 현재 동일성분의 11번째 제제부터 5%p씩 약가를 인하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다품목 등재 관리 정책은 동일성분의 여러 제품이 건강보험에 등재될 때 등재 순서, 등록 시점 등을 기준으로 약가를 통제·조정하는 제도다. 이번 개선방안에는 최초 제네릭 등재 후 10개까지는 일반 조건으로 인정하고, 11번째 등재 후 1년 경과 시점에 11번째 제제 가격 수준으로 전체 가격을 조정하는 방식이 제시됐다.
반면 혁신형 제약기업, R&D 적극 투자기업, 국가필수약·퇴장방지약 등 안정공급에 기여한 제약사 등에는 약가 가산 혜택을 부여한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정부는 2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에서 심의·의결을 진행하고, 이후 제도 정비를 거쳐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 제약사들 “기업들 매출·영업이익 직격탄, 산업경쟁력 약화”
이번 약가제도 개편안으로 제약업계에는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 특히 주요 제네릭 제품을 간판으로 하고 있는 기업들의 타격이 클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제네릭 약가 인하 폭이 큰 데다 계단형 기준이 강화되면서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유비스트가 지난 12월11일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처방실적 상위 10개 제네릭의 최근 1년(2024년 4분기~2025년 3분기) 실적에 새로운 약가 산정률을 적용하는 경우 약 1421억 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53.55%의 산정률이 적용되는 대웅바이오 글리아타민을 보면, 이 제품의 최근 1년 처방액은 1789억 원이었지만 산정률을 40%로 낮추면 453억 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리아타민은 2024년 대웅바이오 매출의 17%를 차지한 대표 제품이다.
중소제약사의 경우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대우제약의 히알산은 2024년 회사 매출의 30%를 차지했는데, 만약 산정률 40%가 적용되는 경우 1년 합산 실적은 354억 원에서 264억 원으로 약 89억 원 줄어든다. 이는 전체 매출의 8%에 달한다.
제약업계에서는 이러한 손실이 투자 재원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특히 영업이익을 기반으로 R&D 투자를 추진하는 업계의 현실을 정부가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12월22일 열린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는 “정부는 제네릭 기반 회사, 제네릭 비기반 회사를 구분하지만, 신약 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회사도 기본적으로 제네릭 기반 수익으로 R&D 투자를 하는 게 현실”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비상대책위원회가 이번 약가제도 개편안과 관련해 진행한 ‘제약바이오기업 CEO 대상 긴급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이 같은 우려는 반복됐다.
이번 설문조사는 국내에 제조시설을 갖춘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정회원사 184개사 가운데 59개 회사가 참여했다.
이번 조사에서 CEO들은 제네릭 약가가 40%로 인하되는 경우 영업이익이 기업당 평균 51.8%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연구개발과 설비투자도 대폭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약가제도 개편 시 가장 우려되는 사항을 묻는 질문에는 ‘채산성 저하에 따른 생산중단’(52개사)과 ‘연구개발 투자 감소’(52개사) 답변이 가장 많이 나왔다. 이어 ‘구조 조정에 따른 인력 감소’(42개사), ‘원가절감을 위한 저가 원료 대체’(20개사)가 뒤를 이었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비상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체질개선을 원한다면 일방적 정책 시행이 아니라 산업계와의 진지한 대화가 선행돼야 한다”며 “어떤 방식으로 제네릭에서 신약으로 전환할 것인지, 그 과정에서 정부는 어떤 지원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