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제주 4·3 사건 당시 '양민학살' 등 강경진압 작전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고 박진경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지정 취소 검토를 지시했다. 이념논쟁과 법리다툼으로 번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오영훈 제주지사를 비롯한 내빈들이 2025년 12월15일 오후 제주시 한울누리공원 인근 고 박진경 대령 추도비 옆에서 열린 '4·3 역사 왜곡 대응 안내판' 설치 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안내판에는 제주4·3 당시 학살을 주도한 박 대령의 행적이 담겼다. ⓒ 뉴스1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지위를 취소하려면 1950년 수여된 을지무공훈장을 취소 및 박탈하는 절차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국가유공자법은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 별도 심의 없이 국가유공자 등록자격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 본인 또는 가족이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하면 행정절차를 거쳐 국가유공자 지위증서가 자동 발급된다.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등록증서는 올해 10월20일 양손자의 신청 뒤 국방부의 훈장서훈기록 확인, 경찰의 범죄사실 등 결격사유 조회를 거쳐 약 2주 만에 발급됐다.
한 변호사는 허프포스트와 나눈 통화에서 "무공훈장이 취소되면 국가유공자 지위가 자동박탈되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하지만 박진경 대령의 경우 별도의 사유로 국가유공자 지위만 취소하는 것은 현행법상 불가능해 보이며 이를 강행할 경우 법적 다툼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논란의 대상이 된 박진경 대령은 70여년 전 제주 4·3 사건 당시 제주도 안에서 수많은 양민을 학살한 혐의를 받는다. 그가 진행한 강경진압작전으로 붙잡힌 양민들은 총살 또는 행방불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지정 취소 검토는 좌우 이념논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어보인다.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의 배경은 1947년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TCOK)이 주도해 한반도 남쪽지역에서만 단독선거를 실시하려는 것을 두고 반대가 시발점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제주도에서는 이 선거가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화시킬 것으로 보고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그 뒤 1954년 9월21일까지 남조선로동당(남로당)의 지휘를 받는 이른바 '빨치산 조직'의 무장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무고하게 학살된 것으로 전해진다.
진보진영과 주류 역사학계는 제주 4·3 사건을 '통일정부 수립을 열망한 민중항쟁' 또는 '해방정국에서 제주도민의 생존을 위한 저항'으로 바라보고 있다.
반면 뉴라이트 진영에서는 제주 4·3 사건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방해하기 위한 남로당의 공산폭동'이라고 주장한다.
박진경 대령을 둘러싼 논란은 윤석열 정부의 '홍범도 장군 동상 이전'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윤석열 정부는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 가입'과 '자유시 참변' 연루를 주장하면서 육군사관학교에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존치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봐 이전하려 하면서 역사 논쟁에 불을 당겼다.
4·3 사건이나 홍범도 장군 흉상 문제에는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자의 독립운동'과 한국전쟁 시기 '양민학살'를 어떻게 평가할지를 둘러싼 좌우간 논쟁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진보진영은 이를 품으려 하고, 보수진영은 이를 배척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