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 '명문대생'. 무한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대다수 현대인이 자신의 이름 앞에 붙길 바라 마지않는 대표적 수식어다. 고달픈 세상살이 난이도를 낮춰줄 것만 같은 이 달콤한 수식어를 다 갖고도 기어이 살인범의 길을 택한 청년이 여기 있다. 그의 이름은 루이지 맨지오니. 나이는 26살. 남성이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조부모는 다수의 컨트리클럽과 기업을 보유한 재력가였으며 사촌은 메릴랜드 주 하원의원인 니노 맨지오니다.
보험금 미지급으로 악명 높은 미국 보험사 유나이티드헬스케어 CEO의 살해용의자로 체포된 루이지 맨지오니(26). ⓒ루이지 맨지오니 SNS, GettyImages Korea
루이지 맨지오니는 볼티모어의 명문 사립고등학교 길먼스쿨을 전교 수석으로 졸업, 아이비리그 중 한 곳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진학해 컴퓨터과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타임스가 그의 지인 다수를 취재한 결과 공통적으로 나온 말은 그가 무척 성실하고, 똑똑하고, 사교적인 사람이라는 거였다. 그가 소위 말하는 상류층 엘리트였기에, 그의 범행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척추 통증'이 아킬레스건…보험금 미지급 원인이었나
얼핏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루이지 맨지오니는 지난 4일(현지시각) 뉴욕 맨해튼의 한 호텔 앞에서 미국 최대 건강보험사 유나이티드헬스케어 CEO 브라이언 톰슨을 사제 총으로 쏴 죽인 혐의를 받는다. 그는 범행 직후 자전거를 타고 달아났다가 5일 뒤인 9일 펜실베이니아주 알투나에서 체포됐다. 지역 맥도날드를 방문한 그를 직원이 알아보고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명확한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보험금 미지급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범행 현장에서는 'delay(지연)', 'deny(거부)', 'depose(축출)'이라고 적힌 총알과 탄피가 발견됐는데. 이중 'delay'와 'deny'는 미국 보험사의 보험급 지급 거부 전략 키워드다. 보험금 지급을 '지연'하고 '거부'했으니 '축출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맨지오니는 척추 전방전위증(척추가 주저앉아 만성 통증을 유발하는 병)을 앓아왔으며 한 차례 수술을 받기도 했다. 또 SNS에 척추 통증과 그로 인한 브레인 포그 증상을 호소한 적도 있다. 20대 청년으로서의 일상생활을 제대로 누릴 수 없었던 데다 치료 과정에서 보험사에 대한 분노가 쌓였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악명 높은 美 보험 시스템…'잘 죽였다'는 분위기
살인범 맨지오니를 향한 대중의 시선은 호의적이기 그지없다. '그럴 수도 있지' 정도가 아니라, '잘 죽였다'는 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의 의료보험 시스템은 미국 사회의 대표적인 병폐로 꼽히는데, 유나이티드는 개중에서도 특히 악질적인 보험사로 꼽히기 때문이다. 유나이티드에서 보험금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31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의료보험 시스템과 그 피해자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식코'의 감독 마이클 무어도 맨지오니 사건을 언급하면서 '정말 오래 묵은 분노의 발현'이라고 평했다.
현재 맨지오니를 신고한 맥도날드 지점에는 "쥐새끼(밀고자)가 너무 많다" 등 악평과 별점 테러가 이어지고 있으며, 맨지오니의 재판 비용 등을 위한 기금도 마련됐다. 교도소에서는 그가 TV도 없는 열악한 방에 홀로 있다며 "루이지를 석방하라"는 재소자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고 뉴스위크는 전했다. 코미디쇼 'SNL', '크리스 락 쇼' 등에서는 맨지오니의 잘생긴 외모가 대중의 호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언급하면서, '죽을 짓한 놈이 죽었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시니컬한 유머로 풀어냈다.
'제2의 유나바머'?
맨지오니는 체포 당시 사제 총과 소음기, 마스크, 그리고 3장 분량의 선언문을 갖고 있었다. 해당 선언문에서 그는 미국이 전세계에서 가장 비싼 보건의료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유나이티드가 막대한 수익을 위해 나라를 학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솔직히 기생충들이 자초했다"면서도 "갈등과 트라우마를 일으킨 것을 사과하지만, 해야만 할 일이었다"고 했다.
이처럼 자신의 범행을 논리화, 정당화하는 맨지오니의 태도와 그의 높은 학력 등을 이유로 그가 세간에 '유나바머'로 알려진 시어도어 카진스키와 비슷하다는 말도 나온다. 카진스키는 24살에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최연소 수학교수로 임명된 천재였지만, 17년에 걸쳐 '폭탄 택배'를 보내 3명을 죽였고 23명을 다치게 해 종신형을 선고받고 ADX 플로렌스에 수감됐다. 그는 '유나바머의 선언'을 써 산업화가 인류를 멸망케 할 것이라는 급진적인 정치관을 전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공교롭게도 맨지오니는 도서 리뷰 사이트를 통해 이 선언문에 별점 4개를 주면서 "이 성명문이 드러내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기 위해선 이걸 미친사람이 썼다고 생각하는 편이 쉬울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대한 그의 예측이 얼마나 정확한지 무시하기 어렵다"고 평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넷플릭스가 유나바머 전기 드라마 '맨헌트'를 만들었듯, 맨지오니의 삶을 다룬 작품이 제작될 수 있단 추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