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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진. ⓒSBS/tvV/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백현진. ⓒSBS/tvV/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우스갯소리로 적을 너무 잘 안다고 할까요? 너무너무 싫어해서 오히려 쉽게 연기할 수 있습니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과 인기 드라마 <모범택시>(SBS), <해피니스>(tvN),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웨이브) 등에 출연하며 ‘빌런 끝판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백현진(50·사진)이 말했다. 이른바 ‘꼰대’, ‘한남’으로 불리는 가부장적 남성성을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그는 유독 화를 많이 내는 악역을 주로 연기하면서 “20대 시절에 큰 분노를 가지고 살았는데 연기할 때마다 그때 품었던 분노를 끄집어내서 쓰는 것 같다”고 했다.

대중들에게 찌질하거나 악랄하거나 못된 캐릭터들로 기억되는 백현진이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나섰다. 영화제가 해마다 한 사람씩 선정하는 스페셜 프로그래머 자격으로 작품 5편을 소개한다. 28일 전주 베스트웨스턴호텔에서 프로그래머로서 그리고 배우이자, 음악가, 미술가로서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백현진.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백현진.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백현진이 이번에 꼽은 작품은 루이스 부뉘엘의 생전 마지막 3부작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1972), <자유의 환상>(1974), <욕망의 모호한 대상>(1977)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던 김지영 감독의 <뽀삐>(2002)와 지역 ‘꼰대’ 교수로 출연했던 장률 감독의 <경주>(2014)다. “아주 다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서 부뉘엘을 좋아한다는 백현진은 “20대 때 배꼽 잡고 웃으며 재밌게 본 영화를 관객들과 큰 화면에서 같이 보고 싶어 마지막 3부작을 골랐다”고 밝혔다. 또 자신의 출연작 두 편은 “그동안 음악가나 배우로 박찬욱, 임상수, 홍상수 등 좋은 감독들과 많이 작업했지만 상대적으로 관객들에게 덜 알려진 영화들을 소개하고 싶었다”고 했다. 70분짜리 영화 <뽀삐> 상영 때는 그가 연출했던 비디오 작업으로 국외 갤러리 등에서 주로 상영됐던 <디 엔드>와 <영원한 농담>을 함께 공개한다.

백현진은 2001년 <꽃섬>으로 처음 연기를 시작했지만 오랫동안 “동료로서 품앗이한다는 생각으로 연기를 해왔지 배우라는 정체성을 가진 건 불과 2~3년 전부터”라고 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회장 아들로 직원들에게 갑질하는 상무 역할을 한 뒤 출연 제안을 많이 받았다. “연기를 몸에 붙여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여러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 그 전까지는 배우로 한길만 걸어온 분들한테 실례인 것 같아 배우라는 생각을 안 했는데 이 정도 일하면 배우라고 스스로도 인정하자고 마음먹게 됐다.”

'모범택시' 스틸컷. ⓒSBS
'모범택시' 스틸컷. ⓒSBS

그는 “그 직업을 가진 일반인 아니냐는 반응을 받을 때 특히 고맙다”며 화제가 됐던 <모범택시>에서의 악역에 대해 설명했다. “(성착취물 유포 등으로 공분을 샀던) 양진호를 염두에 둔 악역을 연기할 때 특별히 준비한 것 없이 엠(M)자 탈모만 분장으로 더 강조하고 아저씨처럼 옷 입은 게 다인데 다들 ‘싱크로율 쩐다’, ‘똑같다’는 반응이 커서 내가 그 사람과 비슷한 게 있나 보다 싶어 웃고 말았다”고 했다.

지금은 상업영화와 드라마에 활발하게 출연하며 배우로 알려졌지만 그는 1990년대 홍대 인디음악 공간들을 중심으로 어어부 밴드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고 미술가로도 명망을 쌓은 전방위 예술가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요즘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엔(N)잡러’인 셈. 그는 “어릴 때부터 경쟁을 극도로 싫어해 4수 끝에 들어간 대학도 금방 때려치웠다. 경쟁하고 싶지 않으니 취업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장기적인 계획 없이 그때그때 호기심에 따라 일을 하면서 음악가로 미술가로 배우로까지 일하게 됐다”고 했다. “스무살부터 삼십대 중반까지 십오년 동안은 생계나 미래에 대해 늘 불안한 마음을 갖고 살았는데 이후 15년은 정말 운이 좋았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도 잘 벌고 잘 쓰면서 살게 됐다. 지금도 부동산 주식 관심 없고 전·월세 살면서 모아둔 돈은 하나도 없지만 말이다.”

백현진은 요즘 음악가로 미술가로 배우로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최근 죽음과 이별을 주제로 새로운 동영상 작업을 준비하면서 이 작품과 전작 단편 <디 엔드> <영원한 농담>을 엮어 장편영화를 한 편 완성할 계획이다. 김오키 등과 같이하는 백현진씨(C) 밴드와 혼자 작업하는 전자음악 프로젝트의 새 앨범도 각각 마무리 중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전주를 포함한 모든 영화제가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대중적이지 않더라도 진지한 프로그램들을 용감하게 만들어냈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한겨레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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