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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시간’이 가고 ‘방패의 시간’이 왔다.

2024년 말 ‘인적 쇄신’이라는 칼을 빼 들었던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2기 체제의 시작점인 2026년 신년 인사에서는 전혀 다른 방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바로 ‘안정’이다.

임 회장은 무리한 변화 대신 조직을 안정시키고, 그 토대 위에서 ‘비은행 수익 확대’와 ‘소비자 신뢰’라는 두 가지 과실을 수확하겠다는 실리 중심의 전략을 2기 체제의 승부수로 띄웠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2026년 신년 인사에서 '변화'보다 '안정'을 선택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2026년 신년 인사에서 '변화'보다 '안정'을 선택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 ‘파격’ 대신 ‘안정’ 택한 임종룡, 11곳 중 10곳 유임의 의미

우리금융지주는 최근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를 열고 자회사 11곳의 대표이사 후보 추천을 완료했다.

이번 인사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단연 ‘정중동’이다. 겉으로는 고요해 보이지만 내실을 다지며 묵직하게 움직이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우리금융은 11개 자회사 가운데 IT 계열사인 우리FIS를 제외한 10개 자회사의 대표이사를 1년 유임하기로 결정했다.

우리금융캐피탈, 우리자산신탁, 우리금융저축은행, 우리자산운용, 우리벤처파트너스, 우리프라이빗에퀴티자산운용, 우리금융에프앤아이, 우리신용정보, 우리펀드서비스 등 비은행 계열사 수장 대부분이 자리를 지켰다. 출범 초기 조직 안정화가 시급한 우리투자증권 역시 현 대표 체제를 유지했다.

우리금융지주는 이번 인사와 관련해 “현 대표들의 재임 기간 중 성과가 양호했고 전략의 연속성 및 조직 안정성을 고려해 유임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2년 전 임 회장이 취임 직후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통해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던 것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행보다.

임 회장은 2024년 연말 우리금융그룹 인사에서 임기가 끝나는 계열사 대표 6명을 모두 교체하는 ‘초강수’를 뒀다. 우리은행장에는 민영화 이후 가장 젊은 행장인 정진완 행장이 선임됐고, 우리카드는 그동안 그룹 내부에서 CEO를 임명하던 관행을 깨고 진성원 전 롯데카드 고문을 대표로 세웠다. 우리신용정보에는 우리금융 계열사 최초의 여성 CEO, 정현옥 전 우리은행 금융소비자보호그룹장을 선임하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임 회장이 이미 연임이 유력한 상황에서 대내외 금융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을 흔들기보다 검증된 리더십을 재신임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고 있다. 2기 체제의 시작점에서 조직의 피로도를 낮추고 비은행 성장과 내부통제라는 확실한 과제에 집중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셈이다.

유일하게 수장이 교체된 우리FIS에는 고영수 전 우리은행 정보보호그룹 부행장이 추천됐다. 우리은행과 지주에서 디지털, 핀테크, 정보보호 관련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전문가를 투입해 IT 거버넌스 개편 이후의 리더십 전환과 조직 쇄신을 맡기기 위함이다.

◆ 업계 최초 지주 단독 CCO 선임, 소비자보호 진심 보여줬다

조직개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소비자보호부문’의 신설과 지주 단독 CCO(소비자보호최고책임자) 체제의 도입이다.

우리금융은 그동안 은행 등 주요 자회사의 CCO가 지주 CCO를 겸직하던 금융권의 관행을 과감히 깼다. 지주사가 독자적으로 임원을 선임해 오로지 소비자보호 업무만 전담하게 한 것이다. 이는 겸직이 아닌 지주 단독 CCO 선임을 통해 소비자보호 거버넌스를 격상시킨 국내 금융지주사 최초의 사례다.

초대 지주 CCO에는 고원명 ESG경영부 부장이 상무로 승진해 발탁됐다. 고 상무는 ESG 분야에서 지속가능경영과 이해관계자 보호 업무를 수행하며 쌓은 성과를 인정받았다.

신설된 소비자보호부문은 은행, 증권, 보험 등 전 계열사의 소비자보호 정책과 운영 현황을 총괄·관리하는 그룹 차원의 강력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된다.

금융당국이 최근 소비자 보호, 금융사의 책임경영을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는 만큼, 임 회장이 2기 체제의 최우선 가치이자 생존 전략으로 ‘소비자 신뢰 회복’을 설정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 포트폴리오 구축에서 성장으로, 조직 명칭 변경에 담긴 임종룡의 메시지

임 회장은 이번 인사와 함께한 조직개편에서 부서 명칭 변경을 통해 비은행 부문의 실질적 성장을 독려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우리금융은 이번 개편을 통해 지주 전략부문 산하의 ‘사업포트폴리오부’를 ‘사업성장부’로 재편했다. 

그동안 우리금융이 우리투자증권 출범, 동양생명·ABL생명 인수 등을 통해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포트폴리오에 편입된 계열사들이 실질적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집중 ‘성장’시키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이는 유임된 자회사 CEO들에게 던지는 과제이기도 하다. 유임을 통해 리더십의 안정이라는 판을 깔아줬으니 이제는 실적과 성과로 증명하라는 주문인 셈이다.

이와 함께 전략부문에 ‘글로벌전략부’를 신설해 자회사의 글로벌 사업 방향을 제시하고 그룹 차원의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포화 상태인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겠다는 의도다.

우리금융지주의 임원진도 재편됐다. 재무부문에서는 곽성민 재무관리부 본부장이 부사장으로 승진해 신임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았으며, 김병규 우리은행 본부장이 우리금융지주 성장지원부문 상무로 선임돼 그룹 시너지 전략을 담당하게 됐다.

우리금융지주 관계자는 “새로 선임된 지주 CCO를 중심으로 그룹 소비자보호 거버넌스 체계를 강화하고 비은행 주력 자회사의 성장과 경쟁력 제고에 힘쓸 것”이라며 “그룹이 새로운 진용을 갖춘 만큼 2026년 ‘미래동반성장프로젝트’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 생산적·포용적 금융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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