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의 대량 수입 승인이 나오지 않아 수십만 개의 엔비디아 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가 홍콩에서 발이 묶여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정부는 미국 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수입 승인을 꺼리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기업들은 AI 모델 학습 등에 사용할 엔비디아의 첨단 반도체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기업들이 구매할 수 있는 AI 모델 학습용 엔비디아 반도체의 수량을 제한하고 있다.
이는 중국 정부의 반도체 자급자족 기조와 사이버 보안 위험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의 새로운 RTX 스파크 반도체가 탑재된 마더보드가 2026년 10월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 서피스 행사에서 전시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연합뉴스
로이터통신은 5일(현지시각)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엔비디아의 첨단 AI 반도체 약 60만 개가 중국 본토로의 선적을 기다리며 홍콩에 보관되어 있다"며 "중국 정부는 자국 기술 기업들의 대규모 수요에도 불구하고 엔비디아 반도체의 수입 승인을 보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몇 달 동안 일부 반도체의 수입은 허용됐다. 한 소식통은 중국의 주요 인터넷 기업 몇 곳이 지난 몇 달 동안 각각 약 1만 개의 H200 반도체를 구매했다고 밝혔다. 또 소량의 반도체가 중간업체와 우회 경로를 통해 중국으로 반입됐다고 전했다.
공식 공급이 제한되자 중국 구매자들은 중간업체와 우회 경로를 통해 엔비디아 반도체를 구매하려 하고 있으며, 이에 비공식 시장에서 엔비디아 반도체 가격도 오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 소식통은 로이터에 10월 말 기준 중국 본토에서 H200 반도체 8개로 구성된 서버 한 대가 600만 위안(약 12억2천만 원) 이상에 거래됐는데, 이는 지난해 가격의 약 3배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이어 미국 수출 통제 대상인 엔비디아의 최신 블랙웰 반도체를 탑재한 서버는 대당 2천만 위안(약 40억5천만 원) 이상에 거래됐다고 설명했다.
H200 반도체는 엔비디아의 최신 AI용 반도체만큼 강력한 성능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중국산 반도체가 아직 따라잡지 못한 수준의 성능을 보유하고 있다. 엔비디아 소프트웨어와 함께 사용하면 AI 모델 학습에 더 유용하다는 특성도 있다.
미국은 2022년부터 수출 통제를 통해 중국이 엔비디아의 첨단 반도체와 관련 장비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한해 왔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중국 무역 협상 이후 지난해 12월 엔비디아가 중국 내 승인된 고객에게 반도체를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정책은 올해 1월 시행됐다.
이에 중국 기업들은 엔비디아 반도체 대량 구매에 나섰다. 이번에 홍콩으로 보내진 60만 개의 엔비디아 반도체도 당시 엔비디아와 중국 기술 기업들이 체결한 계약에 따라 중국으로 보내진 물량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중국 본토로의 엔비디아 반도체 대량 수입을 아직 승인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수입 승인을 미루는 배경에는 미국 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술 전문지 인포메이션은 소식통을 인용해 7월 중국 당국이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딥시크 등 기업에 H200 반도체 구매 허가 물량을 제한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총 승인 물량은 20만 개 미만으로 책정될 가능성이 있는데, 기업들이 올해 초 주문한 물량의 절반에도 못 미칠 수 있다. 소식통들은 중국 정부가 구매를 희망하는 모든 기업에 최종 승인을 내린 것은 아니며, 승인 시기도 바뀔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식통은 이어 제안된 제한 조치의 하나로, 중국 당국이 기업들에 H200 반도체를 중국 고객 정보와 같은 민감한 데이터가 아닌 공개 데이터 처리에만 사용하도록 지시했다고 전했다.
또 정부 관계자들은 H200 반도체를 AI 모델 학습에만 사용하고, AI 모델이 작업을 수행하는 추론 과정에서는 중국산 반도체를 우선 사용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들은 중국 정부가 자국산 반도체의 성능이 더 뛰어나다고 판단하는 데다, 자국 반도체 산업을 전략 차원에서 육성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 관계자 일부는 H200 반도체의 사이버 보안 위험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사이버 보안 규제 당국은 지난해 7월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 전용으로 개발한 H20 칩에 보안상 위험이 있으며, 원격으로 추적하거나 무력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후 중국 정부는 기업들에 엔비디아 반도체 구매를 자제하도록 권고해 왔다. 다만 엔비디아는 자사 제품에는 원격 접근이나 제어를 허용하는 백도어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10월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텐센트가 수출 규정을 준수하는 H200보다 성능이 낮은 엔비디아 RTX Pro 5500 그래픽 카드 300만 개 이상을 주문했다"고 보도했다. 총 주문액은 350억 달러(약 47억5천만 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