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불안하고 어지러워 산길 대신 인터넷 주소를 따라 온라인 절로 향한다. 스마트폰 화면 속 법당 안에서 절을 올리고 염주를 108번 굴린다. 쉴 새 없이 새 소식이 밀려들던 화면에 잠시 마음을 내려놓을 자리가 생겼다.
전쟁과 인공지능(AI)이 가져올 변화, 기후재난까지. 내일을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에 사람들은 오늘의 불안을 달랠 작은 위안을 찾는다.
30일 온라인 절 '산사'에 방문했다. ⓒ산사
28일 문을 연 ‘산사’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1인 개발자가 만든 가상 사찰인데, 이용자들은 동자승 캐릭터로 염불을 듣고 합장하거나 절을 올린다. 이용자들은 나란히 앉아 있어도 서로 말을 건넬 수는 없다.
처음 정원은 20명이었다. 공개 하루 만에 방문자 5만 명이 몰려 서버가 마비되자 개발자는 100명씩 들어갈 수 있는 '청연당' 서버 100개를 마련했다. 마음을 비우러 온 사람들로 법당이 들어찬 셈이다.
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37회 서울국제문구사무용품전시회에서 참관객들이 말랑이 등 제품을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화면 밖에서는 손끝의 감각이 위로를 건넨다. 말랑이를 누르면 말캉한 덩어리가 손가락 사이로 비집고 나오고, 왁뿌볼(왁스 뿌시기 볼)을 쥐면 얇은 껍질이 와그작 깨진다. 촉감 장난감에는 주무르는 맛, 부수는 맛이 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에서 쥐고 누르는 대로 돌아오는 반응이 작은 안도감을 준다.
인기는 소비 지표에서도 드러난다. 올해 6월 에이블리 내 말랑이 거래액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128% 늘어 약 12.3배가 됐다. 검색량은 281.6% 증가했다. 왁뿌볼 거래액도 직전 달보다 87% 늘었다.
사람들이 위안를 구한다는 사실은 사회조사 결과에서 나타난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해 11월11일 발표한 '2025년 사회조사'를 보면 13세 이상 인구의 38.2%가 평소 외로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는 지난해 5월14~29일 전국 약 1만9천 가구의 만 13세 이상 가구원 3만4천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자주' 외롭다는 응답은 4.7%, '가끔'은 33.5%였다. 열 명 중 네 명 가까이가 일상에서 외로움을 마주하는 셈이다.
자신의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일본어 속어 '멘헤라(メンヘラ)'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거나, 상대에게 의존하며 애정을 거듭 확인하려는 사람을 가리킨다. 일본 인터넷의 '멘탈 헬스' 게시판 이용자를 부르던 말이다. 최근 국내 유튜브와 SNS에서도 쓰임이 늘면서 자신의 심리 상태를 자조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 됐다. 또, 자신의 애착 유형을 '불안형'이나 '회피형', '안정형'으로 구분하며 관계 속에서 느끼는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2023년 7월6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에 AI(인공지능) 표지판이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자신을 설명할 말을 찾던 이들은 이제 그 마음을 들어줄 상대도 화면 안에서 찾는다. 미래의 일자리를 걱정하게 만든 인공지능(AI)에게 정작 오늘의 고민을 털어놓는 일도 벌어진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올해 8월18일 발표한 ‘AI 확산에 따른 청년 일자리 인식 조사’에서 구직 중인 만 19~34세 청년 응답자 315명 중 63.8%는 향후 5년 안에 희망 직무가 AI로 대체되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봤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0월8일 공개한 ‘생성형 AI 이용에 따른 국민 정신건강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내 생성형 AI를 이용한 15~79세 1019명 중 68.8%가 일상 대화나 감정적 교감·위로, 심리상담 등 정서적 목적으로도 AI를 이용한다고 답했다.
다만 16.3%는 AI와 대화를 중단하기 어려웠던 경험이 있었다. 마음을 달래러 시작한 대화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내일, 손에 잡히는 오늘
오늘도 변함없이 전쟁과 기술 변화, 기후재난 소식이 이어진다. 새로운 기술은 익숙한 일의 경계를 바꾸고, 폭염과 폭우, 산불과 가뭄은 먼 곳의 일로만 여기기 어려워졌다. 불안감은 늘어간다.
한국환경연구원이 지난 4월20일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한 ‘2025 국민환경의식조사’를 보면, 응답자 3008명 중 73.1%가 기후위기나 환경재난 등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 불안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걱정이 증가했다는 응답도 71.3%였다.
재난에 대비하자는 정부의 안내도 일상으로 들어왔다. 영국 정부는 지난 22일 ‘비 레디(Be Ready)’ 캠페인을 시작하며 악천후로 전기·수도·통신 등이 끊기는 상황에 대비하도록 안내했다. 일본에서도 11월2일 방재청 출범에 맞춰 물과 식량, 휴대용 화장실 등을 최소 사흘, 가능하면 일주일분 비축하도록 요청할 방침이 보도됐다.
그러자 온라인에서는 "제3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 "대규모 사이버 공격을 앞둔 것 아니냐" 등의 추측이 퍼졌다. 영국은 폭풍과 정전, 단수 등에, 일본은 지진과 화산 분화 등 자연재해에 대비하자는 취지였지만 이를 전쟁의 전조로 해석하는 반응까지 나왔다. 불안에 대비하라는 안내가 또 다른 걱정의 재료가 된 셈이다.
내일의 불안이 넘쳐나는 속에 오늘 우리는 작은 위로를 찾는다. 온라인 절을 찾는 데는 호기심과 종교적 관심이, 촉감 장난감을 쥐는 데는 놀이와 취향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을 수 있다. 완전히 다른 방향 같지만 어쩌면 모두 오늘의 작은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