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수사반장'의 박영한 반장, '전원일기'의 김 회장으로 안방극장을 지켜온 배우 최불암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
30일 유족 등에 따르면 최불암은 전날인 29일 오후 10시쯤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 지난해 3월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거동이 불편해져 재활치료를 이어왔으나, 최근 건강이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불암 배우가 29일 밤 10시쯤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2013년 1월3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1939년 인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서울 명동에서 주점 '은성'을 운영했다. 시인 김수영과 박인환, 화가 김환기 등 당대 예술인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예술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고인은 이처럼 문화예술인들의 교류가 활발했던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연출가를 꿈꾸던 그는 1959년 극단 실험극회의 연극 '햄릿'으로 처음 무대에 섰다. 1965년 국립극단 단원이 됐으며, 1967년 서울중앙방송(현 KBS) 특채 탤런트로 선발되면서 본격적으로 TV 연기에 발을 들였다.
젊은 시절부터 나이 든 인물을 연기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20대에는 드라마 '수양대군'에서 노년의 김종서를 연기했고, 40대에는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에서 80대 이승만 전 대통령을 맡았다. 자신의 나이에 어울리는 배역에 얽매이지 않고 작품과 인물을 우선하는 연기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MBC 드라마 '수사반장'을 통해 국민 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1971년부터 1989년까지 방송된 이 작품에서 고인은 박영한 반장 역을 맡아 범죄 수사 현장을 누볐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는 형사의 모습을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22년간 방송된 '전원일기'에서는 양촌리 김 회장으로 분해 또 다른 대표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배우 김혜자와 부부로 호흡을 맞춘 그는 농촌의 일상과 가족의 희로애락을 담담하게 그려내며 시청자들에게 친숙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수사반장'의 강직한 형사와 '전원일기'의 인자한 가장은 서로 다른 모습이었지만, 모두 최불암의 이름을 국민 배우로 각인시킨 배역이었다.
2026년 10월11일 병상에 누워있는 배우 최불암. ⓒ문화체육관광부
연기 활동을 넘어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2011년부터는 KBS 1TV '한국인의 밥상'을 진행하며 전국 곳곳을 찾아다녔다. 화려한 음식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밥상에 담긴 삶과 사연에 귀를 기울였다. 14년간 지역의 역사와 가족의 이야기를 전하며 안방극장에 또 다른 모습의 '국민 아버지'로 다가갔다.
고인의 관심은 카메라 밖에서도 어려운 이웃을 향했다. '전원일기' 속 금동이의 이야기를 계기로 1980년대부터 불우아동 후원에 나섰으며, 40여 년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으로 활동하며 취약계층 아동의 성장과 자립을 지원했다.
교육환경 개선과 위기청소년 지원에도 힘을 보탰다. 1994년에는 광고 출연료를 모교인 인천신흥초등학교에 기부해 책걸상을 교체하도록 했다. 사단법인 제로캠프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는 소년수형자와 위기청소년에게 연극·음악·무용 등 문화예술교육 기회를 제공해 이들의 사회 복귀를 도왔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다음 달 2일 오전 7시이며, 장지는 동화경모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