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2년차 국감으로 야당의 활약이 서서히 시작될 수 있었음에도 전반적으로 야당은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역대급 '물 국감'이라는 혹평도 있다.
다만 국감장에서 인공지능(AI)으로 불법도박 광고를 만드는 시연이 진행되는가 하면, 온누리상품권으로 800만 원짜리 수입 오디오까지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번 국감의 '흔한 풍경'과 함께 시민들 눈길을 끈 '국감 명장면'을 모아봤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9월30일 국회에서 전체회의를 열어 국정감사 관련 안건을 의결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정치권 움직임을 종합하면, 오는 30일 마무리되는 국감은 일부 상임위원회의 종합감사와 국회 운영위원회 감사 등 마지막 일정을 남겨두고 있다. 그동안 여야 의원들은 정부 정책의 허점을 드러내거나 정부 관계자들의 답변을 받아내기도 했지만, 증인 채택 문제를 둘러싼 여야간 대치는 계속 시끄러웠다.
다만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서는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졌다. 이정헌 민주당 의원은 22일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KOBACO)의 AI 광고 제작 시스템 '아이작(AiSAC)'에 '돈 버는 슬롯게임', '슬롯머신' 등의 단어를 입력했다. 그러자 불법도박을 홍보하는 광고의 스토리보드가 생성됐다.
이 의원은 이러한 시연을 바탕으로 "특정 단어나 이미지만 차단해서는 안 된다"며 "광고의 전체 맥락과 목적까지 검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엄정환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직무대행은 기존의 유해 콘텐츠 차단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하고 보완하겠다고 답했다.
중국산 휴머노이드 로봇이 6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정감사장에 걸어 들어오고 있다. ⓒ연합뉴스
이 의원의 시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국감 첫날에는 중국산 인간형 로봇을 국감장에 등장시켜 국내 AI 로봇 산업의 경쟁력을 따져 물었고, 23일에는 스마트안경을 이용한 불법촬영 위험을 지적했다. 그는 "2천 원이면 스마트글래스의 촬영 여부를 알 수 있는 LED 경고등을 무력화할 수 있다"며 촬영 표시등을 가리는 방법을 직접 보여줬다. 이에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범부처 대책이 필요하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인 출신으로 국회 입성 당시 언론개혁을 우선 과제로 내세웠던 이 의원은 과방위 배정 이후 과학기술 분야로도 의정활동의 폭을 넓혀왔다. 이번 국감에서는 기술 시연을 통해 허점을 짚는 방식으로 피감기관의 대응을 촉구했다.
군의 정보보안 문제도 국감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여성 최초 2성 장군 출신인 강선영 국민의힘 의원은 19일 국방위원회 국감에서 김규하 육군참모총장에게 중국산 화상회의 장비의 도입 경위를 물었다. 미국에서 보안 문제가 제기된 중국 기업의 영상·음성 처리장비 105대가 육군에 도입됐다고 지적했다.
강선영 국민의힘 의원. ⓒ연합뉴스
이에 김규하 총장은 중국산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육군은 해당 장비가 외부 인터넷망과 분리돼 있고 보안검사도 거쳤다고 밝혔다. 강선영 의원은 군사정보를 다루는 장비인 만큼 보안성을 다시 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소상공인 지원 정책의 실효성도 여야의 공통된 관심사였다.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은 7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중위) 국감에서 "온라인 전통시장관에 들어가 보면 해외 전자제품이 엄청 많다"며 고가의 다이슨 청소기와 800만 원짜리 영국산 오디오 등을 거론했다. 전통시장 지원을 목적으로 발행한 온누리상품권의 할인 혜택이 고가 수입제품 구매에도 적용되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이에 이소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주 내부 회의를 하면서 저도 똑같은 지적을 했다"며 온라인 전통시장관의 판매 품목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김원이 민주당 의원은 광주의 한 채소가게에서 지난해 온누리상품권으로 결제된 금액이 122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전체 매출 128억 원 가운데 약 95%가 온누리상품권 결제액이라는 점에서 정상적 거래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온누리깡' 가능성이 제기된 것인데, 이 장관은 "짚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국세청 등 관계기관과 함께 조사하겠다"고 답했다.
행정제도 변경에 따른 부담을 짚은 질의도 있었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6일 행정안전위원회 국감에서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을 향해 "행정안전부 때문에 서울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들이 부당하게 세금을 한꺼번에 부과받으면서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일부 장애인 지원기관이 지방세 관련 법률 개정으로 주민세 감면 대상에서 제외됐다가 다시 포함되는 과정에서 과거 세금까지 뒤늦게 부과된 것이다. 서울의 한 센터에는 가산세 약 6680만 원을 포함해 총 1억7410만 원이 부과됐으며, 장애인 이동지원 차량을 압류당한 기관도 있었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오른쪽)이 6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윤호중 행정안전부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김예지 의원 공식 유튜브 채널
김예지 의원은 "법적 판단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장애인 서비스기관의 운영과 서비스 제공이 위협받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윤호중 장관은 "관련 세법 적용에 대한 법률적 해석을 다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고 민주당 출신 장관이 해결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응답한 '훈훈한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여당 의원이 군 수뇌부의 사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김성회 민주당 의원은 19~20일 국방위원회 국감에서 지난해 육군 8사단의 '주간 러닝 챌린지'에 참여했다가 열사병으로 숨진 고 지수혁 상병 사건을 언급했다. 김성회 의원은 사고 당시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책임자에 대한 조사가 충분했는지를 문제 삼았다. 이에 김규하 육군참모총장은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지휘관이 유가족을 찾아가 직접 사과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증인 채택을 둘러싼 여야의 충돌은 상임위 곳곳에서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에 정책 검증에 쓰여야 할 시간이 줄어들기도 했다. 13일 보건복지위원회의 식품의약품안전처 국감에서는 김승원 민주당 의원의 제넨셀 임상시험 승인 청탁 의혹이 쟁점이 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국민 앞에 밝혀야 할 진실, 핵심증인 왜 못 부르나'라는 팻말을 내걸고 관련 증인 출석과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조배숙 국민의힘 의원은 "행정부의 비리와 외압을 파헤치는 것이 국정감사에 있어 국회의 소임이다"라며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남인순 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정부 아래 식약처장과 공무원이 조사했고 혐의 없다고 결론 난 사안"이라며 "정쟁에도 지켜야 하는 선이 있다"고 맞섰다. 팻말 철거 문제로 고성까지 이어지면서 감사는 시작한 지 약 30분 만에 정회됐다. 기관장의 업무보고조차 진행되지 못한 채 중단됐던 회의는 이후 팻말을 제거한 뒤 재개됐다.
21일 운영위원회에서도 김현지 청와대 제1부속실장과 김용범 전 정책실장 등의 증인 채택을 놓고 여야가 맞붙었다. 이상휘 국민의힘 의원은 "김현지, 정진상 등 이른바 성남·경기라인의 인사개입은 반드시 사실 확인을 해야 한다"며 출석을 요구했다.
전은수 민주당 의원은 "'카더라' 하나로 제1부속실장을 불러야 하나"라고 반박했다. 여기에 윤용근 국민의힘 의원이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까지 증인으로 채택하자고 주장하면서 충돌은 더욱 격해졌다. 한병도 운영위원장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은 하면 안 된다"고 제지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성역이 어디 있느냐"고 항의했다.
결국 여당 주도로 기관증인 명단이 의결되면서 야당이 요구한 김현지 실장과 김용범 전 실장 등은 증인 명단에서 제외됐다. 오는 29일 대통령비서실 국감을 앞두고 주요 인사들의 출석 문제를 둘러싼 이견은 이날 현재까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왼쪽)이 13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NATV 국회방송 유튜브 채널
의원 간 언쟁이 극언으로 얼룩진 사례도 있었다. 13일 법제사법위원회 국감에서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에게 이 대통령의 골프 비용 결제 여부를 확인하라고 요구하자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자비로 했다. 내가 가르쳐줄게"라고 끼어들었다.
주진우 의원이 "자비로 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반박하자, 박지원 의원은 "아직도 당신이 검사야?"라고 맞받았다. 이후 두 의원이 언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박 의원은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법률비서관 출신인 주 의원을 향해 "나 같으면, 법률비서관 했으면 자살한다"고 발언했다. 주 의원은 이후 페이스북에 "박 의원이 나에게 패륜 망언을 했다"며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제소를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