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제조 현장에 들어오고 위성통신이 미래 산업의 한 축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기업들이 정부와 국회에 바라는 정책 과제도 산업 육성부터 노동 규제 정비까지 폭넓게 펼쳐졌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지원은 늘리면서 기업의 투자와 인력 운용을 둘러싼 경영 판단에는 노사 교섭이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제계가 내년 정책 수립을 앞두고 특히 강조한 분야는 피지컬 AI와 우주항공 산업이다.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둘러싼 요구는 노동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경영상 결정과 근무지 이동 등이 교섭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투자와 인력배치 등 경영권 고유 사항은 교섭 대상에서 명확히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이 정부와 국회에 기업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마련한 '2027 경제계 정책의견서'를 제출했다. 사진은 13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피지컬 AI 코리아'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조형물을 옮기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기업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마련한 ‘2027 경제계 정책의견서’를 19~20일 정부와 국회에 제출했다고 22일 밝혔다. 정부의 내년도 정책 수립 시기에 맞춰 기업 투자와 경영활력 제고를 위한 제도개선 과제를 담았다.
정책의견서에 담긴 과제는 모두 119건으로 AI 대전환, 첨단·에너지 산업 경쟁력, 기업 제도 정비, 노동시장, 국민생활 안정 등 분야 10개로 구성됐다.
먼저 경제계는 국내 첨단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제조업 고부가가치화를 이끌 핵심 기술인 피지컬 AI, 글로벌 5대 강국 도약을 추진하고 있는 우주항공 분야를 향한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피지컬 AI 산업에서는 생태계 육성을 뒷받침할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는 점을 짚었다. AI, 로봇, 자율주행, 드론 등 분야별로 관련 법체계가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산업 생태계를 종합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통합 근거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우주항공 산업은 예산 규모 자체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IT 제조 강국의 역량을 집중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봤다. 2024년 기준 한국 우주 예산은 6억 달러로 미국(773억 달러)의 0.8%에 불과하다. 이에 서비스와 지상 장비 등 위성통신 사업을 향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전통 산업인 석유화학 부문에서는 정부 주도 사업재편 과정에서 가동을 중단하는 설비의 철거 및 환경 복구 비용이 지원돼야 한다는 점을 건의했다.
이번 정책의견서에는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이른바 노란봉투법과 관련한 내용이 핵심 과제로 담겼다.
경제계는 노조법을 개정해 투자·인력 배치 등 경영권 고유 사항과 공장 이전·신설에 따른 근무지 이동을 교섭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3월 시행된 개정 노조법은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 결정’도 교섭과 파업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이어 고용노동부는 9월 발표한 지침에서 공장 신설 결정 자체는 교섭 대상이 아니지만 그에 따른 직원의 근무지 이동은 교섭 대상이라고 봤다.
이 밖에 △의원입법 규제 법안의 숙의 절차 마련 △에너지 전환·탄소중립 달성 관련 품목의 공제 대상 추가 △배당소득 분리과세 대상 확대 △주식 장기보유 세제혜택 등이 이번 정책의견서에서 건의됐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본부장은 “민간의 투자와 혁신이 살아나려면 기업 현장의 걸림돌을 빠르게 걷어내야 한다”며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 흐름이 내년에도 유지될 수 있도록 경제계의 의견이 정부와 국회의 정책 입안 과정에 적극적으로 반영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