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중국과의 무역 적자가 갈수록 확대되자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필요할 경우 중국의 EU 단일 시장 접근을 차단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U 집행위원회는 이같은 상황에서 하이브리드 차뿐 아니라 화학·기계 산업에서도 수입 급증에 대응하기 위한 전 세계 대상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검토하고 있다.
EU는 한국산 일부 플라스틱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시작한 상태다. 일부 제품엔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긴급수입제한조치까지 시행되면 LG화학·한화솔루션·롯데케미칼 등 국내 화학업체들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업계는 플라스틱 제품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실제 조치 대상이 무엇인지에 따라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유럽연합(EU) 깃발들이 2026년 10월 2일 브뤼셀에 있는 EU 집행위원회 본부인 베를레이몬 건물 외부에 펄럭이고 있다. ⓒAFP통신=연합뉴스
블룸버그는 15일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EU 집행위원회가 하이브리드 차량 이외 중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수입이 급증할 가능성이 있는 다른 분야에도 수입 상한제를 적용하려고 무역 데이터를 평가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11일 EU가 중국산 하이브리드 자동차 수입량을 연간 35만 대로 제한하는 긴급수입제한조치를 빠르면 오는 12월1일부터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소식통 발언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하이브리드 차량 외에 추가적으로 화학·기계 산업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긴급수입제한조치가 필요한지 검토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따른 긴급수입제한조치는 원칙적으로 특정 국가만을 대상으로 시행할 수 없다. 특정 제품의 수입이 급증해 국내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주거나 그럴 우려가 있을 때, 원칙적으로 해당 제품을 수출하는 국가들에 국적과 관계없이 적용해야 한다.
따라서 EU가 중국산 저가 제품의 유입을 억제하기 위해 화학·기계 산업에 긴급수입제한조치를 시행하더라도 한국산 제품이 대상에 포함되면 국내 업체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EU는 올해 8월 한국·중국·대만·멕시코산 PVC(폴리염화비닐)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 결과 한국산 제품의 덤핑이 확인되고 관련 요건을 충족하면 EU는 해당 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같은 달 한국·멕시코산 PTA(고순도 테레프탈산) 제품에도 6.1~13.3%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여기에 긴급수입제한조치까지 시행되면 국내 화학업계의 대EU 수출에 추가적 부담이 될 수 있다. 다만 업계는 실제 조치 대상 품목이 정해져야 영향을 판단할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LG화학 관계자는 "긴급수입제한조치의 구체적 내용이 어떻게 발표되는지 지켜본 뒤 내부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한화솔루션의 경우 유럽 판매 물량 자체가 적어 심각한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며 "PVC는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결국 긴급수입제한조치가 어떤 품목을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한화솔루션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질 것이다"고 말했다.
◆ EU, 대중 무역 적자에 강경 대응 : 연말까지 중국의 시장 접근 차단 방안 마련 요구
아울러 블룸버그는 15일 EU가 중국과의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한 강경책의 하나로, 중국의 EU 단일 시장 접근을 전면 차단할 수 있는 새로운 무역 권한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7일 유럽의 대중국 무역 적자가 하루 평균 10억 유로(약 1조5천억 원)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EU의 9월 대중국 무역 적자는 348억 달러(약 46조7천억 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블룸버그는 소식통들을 인용해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집행위원회가 연말까지 중국의 EU 단일 시장 접근을 차단하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권한은 중국 등 경쟁국이 EU 경제를 위협한다고 간주되는 극단적 상황에 발동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정상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중국이 특정한 불공정 무역 관행을 저지른다면 중국 제품의 유럽 시장 진입을 제한할 수 있다"며 "시장을 완전히 폐쇄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라 대통령이 2026년 10월15일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EU) 본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 참석차 도착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AFP통신=연합뉴스
블룸버그는 중국 기업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빠르게 확대되자 유럽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독일의 입장 변화가 눈에 띈다. 과거 독일은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바탕으로 중국과 긴밀한 무역 관계를 유지해 온 만큼, 중국을 겨냥한 보호무역 조치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독일 제조업의 고용 감소가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6월 이달 기준으로 2022년 6월 이후 제조업 관련 일자리가 매달 최소 1만 개씩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이에 독일 산업계는 정부에 중국산 제품의 유입을 제한해 달라고 요구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오는 12월 17~18일 열릴 EU 정상회의를 앞두고 관련 추가 제안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