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의 전통적인 텃밭인 텍사스주에서 민주당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에 비상이 걸렸다.
30년 넘게 민주당이 주 전체 단위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했던 텍사스에서 공화당 후보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자, 세계 최고 부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까지 거액의 정치자금을 투입하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민주당 소속 제임스 탈라리코 연방 상원의원 후보. ⓒ AP통신=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과 미국 뉴욕타임스(NYT), AP통신 등을 종합하면 텍사스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인 제임스 탈라리코 텍사스주 하원의원이 공화당 후보인 켄 팩스턴 텍사스주 법무장관과 초접전을 벌이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두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경쟁하는 가운데 일부 조사에서 탈라리코 후보가 근소하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년 넘은 공화당 아성에 균열 조짐
텍사스는 민주당이 1994년 이후 주 전체 단위 선거에서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대표적 공화당 강세 지역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팩스턴 공화당 후보의 각종 논란과 탈라리코 민주당 후보의 중도층 공략이 맞물리면서 기존 정치 지형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37세의 탈라리코 민주당 후보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과 진보적 정치 성향을 결합한 정치인이다. 신용카드 금리 상한제와 중산층 감세, 생애 첫 주택 구입 지원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민주당 지지층뿐 아니라 중도 성향 유권자들에게도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탈라리코 민주당 후보는 올해 10월14일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나는 자랑스러운 텍사스 민주당원이지만, 이미 종교도 있고 응원하는 스포츠팀도 있다"며 "텍사스에 가장 좋은 일이라면 내 당에도 쓴소리를 하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보다 지역 유권자의 이익을 우선하겠다는 메시지로 중도층에 접근한 것이다.
이러한 선거 전략은 정치자금 모금에서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미국 인터넷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탈라리코 후보는 올해 3분기에만 6400만 달러(한화 약 860억 원)를 모금해 연방 상원의원 후보의 3분기 모금 기록을 경신했다. 같은 기간 팩스턴 공화당 후보의 모금액은 약 1800만 달러(약 241억 원)로, 탈라리코 후보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공화당 소속 켄 팩스턴 연방 상원의원 후보. ⓒ AP통신=연합뉴스
스캔들에 발목 잡힌 팩스턴, 선거자금에서도 밀려
반면 팩스턴 공화당 후보는 오랜 정치 경력에도 불구하고 각종 스캔들에 발목이 잡혀 있다. 그는 과거 증권사기 혐의로 기소됐다가 배상금 지급과 사회봉사 등을 조건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2023년에는 뇌물 수수와 직권남용 의혹 등으로 주 하원에서 탄핵소추됐지만 주 상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생활 논란도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그의 아내인 앤절라 팩스턴 텍사스주 상원의원은 성경적 사유를 언급하며 이혼을 청구했다. 팩스턴 후보의 불륜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민주당은 그의 도덕성과 공직 적격성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공화당 역시 탈라리코 민주당 후보를 급진적인 진보 정치인으로 규정하며 반격에 나섰다. 과거 성별 관련 발언을 문제 삼는 한편, 최근 독감으로 유세를 중단했던 기간에는 정신건강 시설에 입원했다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확산했다. 뉴욕타임스는 관련 소문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팩스턴 공화당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9월 팩스턴 후보에 대해 "옷을 잘 입지 못할 수도 있고, 말솜씨가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잘생긴 사람도 아닐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그는 미국 최고의 법무장관"이라고 치켜세웠다.
공화당의 고민은 팩스턴 후보가 승리하기 위해 예상보다 훨씬 많은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화당 상원 지도부와 가까운 정치자금 단체들은 당초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으로 여겼던 텍사스에 대규모 광고비를 배정하면서 다른 경합주에 투입할 자금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일론 머스크까지 가세한 정치자금 총력전
이처럼 공화당의 위기감이 커지면서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본격적인 선거자금 지원에 나섰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머스크 CEO는 지난 9월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들을 지원하는 슈퍼팩(특별정치활동위원회)인 '상원 리더십 펀드'에 1억5800만 달러(약 2125억 원)를 기부했다. 이는 해당 단체의 3분기 전체 모금액의 절반을 웃도는 규모다.
머스크 CEO는 별도로 팩스턴 공화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론 스타 리버티 PAC'에도 1천만 달러(약 134억 원)를 기부했다. 두 단체에 제공한 자금은 총 1억6800만 달러(약 2260억 원)에 달한다. 다만 상원 리더십 펀드에 전달된 기부금은 텍사스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공화당 후보들을 지원하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머스크 측과 상원 리더십 펀드가 여론조사를 분석한 결과 팩스턴 후보의 승리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머스크 CEO의 자금 지원이 본격화됐다. 공화당이 당초 예상하지 못했던 텍사스의 접전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동원하고 있는 셈이다.
양측의 선거자금 경쟁도 기록적인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미국 텍사스 지역 공영 라디오 프로그램 텍사스 스탠더드에 따르면 이번 상원의원 선거에서 이미 집행됐거나 예약된 정치광고 비용은 5억 달러(약 6726억 원)를 넘어섰다. 이 수치에는 예비선거와 결선투표, 본선거 광고비가 모두 포함돼 있다.
머스크 CEO의 정치자금 지출 확대도 눈길을 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머스크 CEO는 2025~2026년 선거 주기에 연방 정치위원회에 약 3억6600만 달러(약 4921억 원)를 기부했다. 이는 2024년 대선 주기의 약 2억9천만 달러(약 3900억 원)보다 늘어난 규모로, 지난해 5월 머스크 CEO가 앞으로 정치자금 지출은 훨씬 줄어들 것 같다고 밝혔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머스크 CEO가 설립한 정치단체 아메리카 PAC의 앤드루 로미오 대변인은 뉴욕타임스에 "이번 대규모 투자는 공화당이 유권자들에게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은 공화당의 막대한 자금 투입이 후보의 경쟁력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 계열 슈퍼팩인 '상원 다수당 PAC'의 로런 프렌치 대변인은 AP통신과 나눈 인터뷰에서 "공화당은 인기 없는 후보와 대통령, 경제 상황을 덮기 위해 수천만 달러를 쏟아부으며 선거를 돈으로 사려 한다"고 주장했다.
텍사스 선거 결과는 공화당의 전통적인 지지 기반이 얼마나 견고한지 가늠하는 동시에 민주당의 연방 상원 다수당 탈환 가능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화당의 오랜 아성을 흔드는 민주당 신예의 돌풍이 실제 선거 승리로 이어질지, 아니면 머스크 CEO의 막강한 자금 지원과 공화당의 조직력이 기존 정치지형을 지켜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