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러시아와 밀착해온 북한을 다시 중국의 전략적 영향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외교·경제적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의 대러시아 의존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회복하는 동시에 미국과의 외교적 협상, 동북아시아 안보질서 변화에 대응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이 최근 신압록강대교 개통을 추진해온 배경에도 이러한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6년 9월30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국경절 리셉션에서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15일 로이터와 AP통신을 비롯한 외신,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의 분석을 종합하면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 복원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한반도 문제에서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이해관계가 작용하고 있다.
다만 북한 역시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협력상대를 다변화하고 있어 과거와 같은 일방적인 중국 의존관계로 돌아갈지는 불확실하다.
북한을 향한 러시아의 영향력 견제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서두르는 첫 번째 이유는 러시아의 대북 영향력 확대다.
북한은 2024년 러시아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한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에 병력과 무기를 지원하며 군사협력을 강화했다.
러시아는 이에 대한 대가로 북한에 연료와 식량 등을 제공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중국 외에도 경제·안보 지원을 확보할 통로를 마련하면서 중국의 전통적 대북 영향력에도 변화가 나타난 셈이다.
로이터는 올해 3월 중국의 대북 영향력 회복 움직임을 분석한 심층보도에서 중국이 국경 기반시설 확충과 교역 확대를 통해 북한을 다시 자국의 영향권으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위성사진과 무역통계, 북·중 접경지역 관계자에 대한 인터뷰를 토대로 중국의 대북 접근이 외교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도 올해 8월 보고서에서 "중국의 북·중 관계 재정립 노력은 분명히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설계됐다"고 분석했다. CSIS는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북·러 고위급 교류는 북·중 교류를 크게 압도했으며, 이는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일이다"고 지적했다.
시 주석은 지난해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베이징에서 맞이한 데 이어 올해 6월 평양을 방문했다. 7년 만의 방북이자 올해 첫 해외 방문이었다. 당시 양국은 무역과 외교뿐 아니라 군사 분야의 교류확대까지 논의하며 관계복원의 의지를 드러냈다.
북한 신의주와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연결하는 신압록강대교 모습. ⓒ 연합뉴스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의 발언권 유지
중국의 대북 접근에는 러시아 견제를 넘어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도 작용하고 있다.
CSIS는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배경으로 러시아 영향력 견제와 함께 미국의 예측하기 어려운 대북정책, 일본의 군사력 증강, 대만 문제에 대한 군사적 대비 등 네 가지 요인을 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의 대화 재개에 관심을 보이는 상황에서 중국으로서는 북한과 미국의 협상이 중국의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것을 경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에 대한 외교적 영향력을 유지해야 한반도 비핵화와 제재, 역내 안보 문제를 둘러싼 협상에서도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올해 6월 북·중 정상회담이 두 나라의 경제협력 복원을 넘어 안보와 외교 분야의 전략적 협력으로 관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중국이 북한을 단순한 경제적 지원 대상이 아니라 역내 전략적 협력 상대로 다시 중시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동북아 안보 경쟁 속 전략적 입지 확보
대만 문제와 일본의 군사력 강화 역시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로 꼽힌다.
CSIS는 미국과 일본의 동아시아 안보협력 강화에 대응해 중국이 북한과의 전략적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과의 관계가 약화되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들고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견제할 외교적 수단도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런 전략적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북한과 경제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가 군사협력을 통해 북한과 밀착하는 상황에서 중국은 경제적 지원과 교역확대를 통해 대북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과 북한이 12년간 사용하지 못했던 신압록강대교의 개통을 추진해온 것도 이런 흐름에서 주목된다.
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연결하는 왕복 4차로 교량인 신압록강대교는 2014년 중국 측 공사가 마무리됐지만 북한 측 연결도로와 세관시설 건설이 지연되면서 가동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신압록강대교가 15일 개통됨에 따라 북한과 중국 간 교역 확대에도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관건은 북한의 대응이다. 러시아와의 협력으로 외교·경제적 선택지를 넓힌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하더라도 과거와 같은 의존 관계를 받아들일 이유는 줄어들었다.
38노스는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가 군사기술과 안보를,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경제와 외교를 중심으로 발전하는 상호보완적 구조가 형성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결국 시 주석의 대북 관계 복원은 북한을 둘러싼 러시아의 영향력을 견제하면서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활용하는 외교적 선택지를 확보한 만큼,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과거와 같은 정치적 주도권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