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홍콩에서는 직장 동료 열다섯 명이 돈을 모아 산 복권이 1등에 당첨되자, 복권을 대표로 사서 보관하던 직원이 자기 몫을 더 달라며 균등 분배를 거부하고 잠적했다가 경찰에 체포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만 우리에게도 낯선 장면은 아닙니다. 회식 자리에서 재미 삼아 복권을 사며 "1등 되면 절반 떼 줄게"라고 호기롭게 말하는 동료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로또 1등에 당첨되면 일부를 나눠주겠다는 구두 약속을 한 뒤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종종 나타난다. AI 이미지.
문제는 그 말이 현실이 되었을 때입니다. 당첨자가 연락을 끊거나 회사를 떠나 버리면, 그 말을 믿었던 사람은 법원에 약속한 돈을 청구할 수 있을까요.
먼저 짚어 둘 점이 있습니다. 말로 한 약속도 계약입니다. 우리 민법은 계약서를 써야만 계약이 성립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당사자의 의사가 합치하면 구두로도 계약은 성립합니다.
"당첨되면 주겠다"는 조건이 붙었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장래의 불확실한 사실에 효력을 걸어 두는 조건부 약정도 법이 인정하는 계약입니다. 당첨 확률이 낮다는 사정만으로 약속이 무효가 되지는 않습니다.
"농담이었다"는 항변도 쉽게 통하지 않습니다. 민법 제107조는 진심이 아닌 의사표시도 원칙적으로 유효하다고 보고, 상대방이 그 말이 진심이 아님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만 무효로 합니다.
실제로 술자리 약속을 지키라고 한 판결이 있습니다. 동료들과 술을 마시던 사람이 복권을 사서 한 장씩 나눠 주자, 복권을 받은 사람이 "1등에 당첨되면 2억 원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사람이 실제로 1등에 당첨되어 14억 원을 받고도 8천만 원만 건네자 소송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법원은 나머지 1억 2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당첨자는 기한도 정하지 않았고 문서로 쓴 적도 없다고 다퉜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복권을 건넨 사람이 상대방이었고, 약속을 함께 들은 사람들이 있었고, 당첨자가 이미 일부를 지급했다는 사정이 약속의 진지함을 뒷받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대 결론에 이른 사건도 언론에 소개된 바 있습니다. 한동네 친구 둘이 술을 마시다 "로또에 당첨되면 서로 1억 원씩 주자"고 했는데, 한 사람이 혼자 산 복권으로 1등에 당첨된 사건입니다.
법원은 그런 말이 오간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조건이 논의되지 않았고, 술자리 잡담이나 농담으로 보이며, 복권도 당첨자가 혼자 샀다는 점을 들어 당첨금 지급 약정이 성립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약정이 성립했다고 보더라도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있습니다. 대가 없이 돈을 주겠다는 약속은 법적으로 증여입니다. 민법 제555조는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않은 경우 각 당사자가 이를 해제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당첨자가 혼자 산 복권을 두고 일방적으로 한 약속이라면, 당첨자는 이 조항에 따라 약속을 거둬들일 수 있습니다. 다만 이미 건넨 돈까지 돌려받을 수는 없습니다(민법 제558조).
결국 같은 "나눠 줄게"라도 결론은 사정에 따라 갈립니다. 누가 돈을 내고 복권을 샀는지, 복권을 건넨 데 대한 답례로 한 약속인지, 금액이나 비율이 구체적이었는지,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있는지, 문자나 메모 같은 기록이 남아 있는지가 판단을 가릅니다. 여럿이 돈을 모아 샀다면 당첨금은 처음부터 함께 낸 사람들의 몫이므로 다툼의 여지가 훨씬 줄어듭니다.
그러니 동료들과 복권을 함께 산다면 누가 얼마를 냈고 당첨금을 어떻게 나눌지 단체 대화방에라도 남겨 두시기 바랍니다. 반대로 지킬 생각이 없는 약속이라면 처음부터 가볍게 내뱉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행운이 찾아온 뒤에는 술자리의 한마디가 수억 원짜리 소송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글쓴이 김승현 변호사는 법무법인 선인 파트너 변호사다. 한양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거제시에서 행정법률 자문 공무원으로 일하기도 했으며, 다양한 소송 현장을 누비며 법적 문제를 해결해 왔다. ‘승변’은 의뢰인의 승소를 위해 열심히 뛰겠다는 뜻에서 그의 이름 가운데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복잡한 법전 속에 갇힌 법률 상식이 아니라, 당장 내 삶을 지켜주는 유용한 생활 법률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