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의 친이란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국제공항을 잇달아 공격하면서 중동 정세가 새로운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군사적 보복과 외교적 협상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에 직면했다. 특히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이란과의 외교적 접촉이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 EPA=연합뉴스
후티 반군의 공격이 사우디의 안보뿐 아니라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해 온 경제개혁 구상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1일(현지시각) 전했다.
수도 공항까지 뚫렸다 : 빈 살만의 경제개혁 구상에 직격탄
후티 반군은 지난 일주일 동안 리야드의 킹 칼리드 국제공항을 세 차례 공격했다. 특히 10일 여객터미널을 겨냥한 공격으로 최소 12명이 숨지고 300여 명이 다쳤다. 사우디 당국은 결국 공항 운영을 중단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번 공격은 2015년 사우디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 이후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사건으로 파악된다. 그동안 예멘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국경 밖의 분쟁으로 여겼던 사우디 국민들에게도 상당한 충격을 안긴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공격 대상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사우디를 국제 금융·관광·투자의 중심지로 육성하는 경제개혁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수도의 국제공항조차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면 해외 투자자와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중동연구소(MEI)의 F. 그레고리 가우스 연구원은 뉴욕타임스에 "후티 반군이 사우디의 핵심 기반시설을 공격해 입히는 피해가 사우디가 반군에 가할 수 있는 피해보다 훨씬 크다"고 지적했다.
이는 양측의 비대칭적인 전쟁 구조에서 비롯된다. 사우디는 막대한 자본과 현대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보호해야 할 경제시설도 많다. 반면 후티 반군이 장악한 예멘 북부 지역은 오랜 전쟁으로 상당 부분 파괴된 상태다.
10월8일(현지시각)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킹칼리드 국제공항에서 화염과 연기가 치솟는 모습. ⓒ AP통신=연합뉴스
군사적 보복도 협상도 난관 : 이란 외교가 돌파구 될까
빈 살만 왕세자에게 이번 사태가 더욱 뼈아픈 이유는 후티 반군의 성장 과정에 사우디의 군사개입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후티 반군이 예멘 수도 사나를 장악하자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빈 살만 왕세자는 2015년 군사개입을 주도했다. 그러나 사우디의 대규모 공습에도 반군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장기간의 전쟁을 거치며 미사일과 드론을 활용하는 강력한 무장세력으로 성장했다.
2022년 휴전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분쟁은 2026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을 계기로 다시 격화했다. 지난 7월 예멘 수도 사나의 국제공항 공습 이후 후티 반군은 사우디의 영공 통제에 반발하며 보복을 선언했고, 최근에는 사우디 공항을 직접적인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우디가 전면적인 군사작전에 나서기도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 10년 가까운 군사개입에도 후티 반군을 제압하지 못했다는 것이 주된 근거로 꼽힌다. 미국의 추가 개입 역시 분쟁을 조기에 종식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이 때문에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이란과의 외교적 해법이 거론된다. 최근 사우디와 이란 외교수장이 접촉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란이 후티 반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해도 반군의 모든 군사행동을 직접 통제할 수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가우스 연구원은 뉴욕타임스에 "사우디의 유일한 현실적 해결책은 미국과 이란의 전쟁을 끝내고, 이란이 후티 반군의 공격 중단을 유도하도록 하는 것이다"고 분석했다.
결국 빈 살만 왕세자는 후티 반군의 공격을 억제할 군사적 대응 능력을 보여주면서도 이란과의 협상 가능성을 열어둬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강경 대응은 확전 위험을 키우고, 성급한 협상은 후티 반군에 더 큰 양보를 요구할 기회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안보와 경제개혁이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지켜야 하는 빈 살만 왕세자의 선택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