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를 맞았지만 한창 일할 나이인 40대 직장인들이 갑작스러운 권고사직으로 일터를 떠난 뒤 재취업 시장에서 높은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직장인 콩트 '무한상사'에서 정준하 과장이 정리해고를 당하는 장면. ⓒMBC 방송 화면 캡처
12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요즘 심각하다는 40대 권고사직'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관심을 모았다.
유튜브에서도 '43세 백수 4개월, 다시 취업하려니 갈 곳이 없었습니다.(40대 권고사직 가장의 기록)', '권고사직 3년 후 40대 백수가 되고 알게 된 것들' 등 중년의 실직과 재취업 실패 경험을 담은 영상들이 공유되고 있다.
지난 11일 유튜브 채널 '나도 산다 : 40대 실직 가장의 생존기'에 공개된 영상의 한 장면이다. ⓒ유튜브 채널 '나도 산다 : 40대 실직 가장의 생존기'
이들 영상에는 "쿠팡 알바라도 해라"라는 댓글도 등장한다. 당장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가리지 말라는 취지지만, 중장년층이 겪는 재취업의 구조적 어려움을 간과한 반응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40대 재취업의 첫 번째 걸림돌로는 그동안 쌓아온 경력을 살릴 만한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점이 꼽힌다.
40대는 기업에서는 인건비 부담이 큰 인력으로, 채용 시장에서는 몸값이 높은 구직자로 평가받는다. 기업들이 인건비와 조직 내 직급 체계를 고려해 경력직 채용에 신중한 데다,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높아지는 임금체계에서는 오랜 경력이 오히려 재취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사무직과 관리직 출신은 선택의 폭이 더 좁다. 오랜 직장생활로 전문성과 관리 경험을 쌓았더라도 이에 걸맞은 직급과 처우를 제공하는 일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임금과 직급을 낮춰 지원하기도 쉽지 않다. 기업이 기존 직원과의 관계나 조직 적응 문제 등을 우려해 채용을 주저할 수 있어서다.
문제는 이처럼 재취업의 문턱이 높은 상황에서 중장년층의 퇴직 시점도 빠르다는 점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2023년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40세 이상 중장년 구직자들의 평균 퇴직 연령은 50.5세로, 법정 정년인 60세보다 약 10년 빨랐다.
퇴직이 반드시 자발적인 선택인 것도 아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2025년 6월 30일 발표한 '4050 중장년 재취업 인식 조사'에서는 남성 응답자의 22.5%가 퇴직 사유로 '정리해고·권고사직'을 꼽았다. 남성 응답자의 퇴직 사유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이다. 이번 조사는 10년 이상 근로 경력이 있고 현재 구직 의사가 있는 40~59세 미취업자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9월17일 부산 부산진구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26년 제2회 부산진구·부산상공회의소 합동 채용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두 번째 장벽은 구직자와 기업 사이의 임금 눈높이 차이다. 중장년 구직자가 재취업을 위해 이전보다 낮은 급여를 감수할 의향이 있더라도, 기업이 실제로 제시하는 임금 수준은 그보다 더 낮은 경우가 많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서 4050 구직자들이 재취업 시 희망하는 최소 연봉은 평균 4천149만원으로 나타났다. 전 직장에서 받던 연봉의 약 75% 수준이다. 재취업을 위해 기존 연봉보다 약 25% 낮은 급여도 감수할 의향이 있다는 의미다.
40대만 따로 살펴봐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2025년 9월23일 공개된 서울시 중장년 재취업 관련 조사에 따르면 40대 구직자의 희망 월급은 평균 439만원이었지만,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월급은 371만원이었다. 재취업을 위해 월 68만원가량 눈높이를 낮춘 셈이다.
그러나 기업이 제시할 수 있는 임금은 이보다 낮았다. 기업 429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중장년 채용 시 지급 가능한 임금으로 월 200만원대를 선택한 비율이 42.1%로 가장 높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40대부터 인생의 진짜 고비가 시작된다는 말이 나온다. 자녀 양육과 부모 부양의 책임이 커지는 데다 교육비와 주거비, 대출 상환 등 경제적 부담까지 겹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서 중장년 구직자들이 가장 부담스럽게 여기는 지출은 생활비(35.7%)였다. 응답자의 76.3%는 노후 준비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9월17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서울시 시니어 일자리박람회 2026'에서 참가자들이 채용공고 게시대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세 번째 장벽은 직무 전환의 어려움이다. 기존 경력을 살려 재취업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전기·소방·시설관리·산업안전 등 새로운 분야로 눈을 돌리는 중장년층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자격증을 딴다고 곧바로 취업의 문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기술직 채용에서는 자격증 못지않게 현장 경험과 실무 능력을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사무직으로 일해 온 구직자라면 어렵게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새로운 분야에서 경력을 처음부터 쌓아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일하는 환경도 넘어야 할 산이다. 사무실을 벗어나 현장 중심의 직종으로 옮기면 낯선 근무 방식은 물론 이전보다 높은 노동 강도에도 적응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만큼이나 달라진 업무 환경에 몸을 맞추는 일도 쉽지 않은 셈이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의 확산도 중장년층의 재취업을 둘러싼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들이 문서 작성과 자료 분석, 행정 업무 등에 AI를 도입하면서 기존 사무직의 업무 영역에도 변화가 일고 있기 때문이다. 중장년 사무직 구직자로서는 오랜 시간 쌓아온 경력과 전문성을 살릴 길을 찾는 동시에, 빠르게 바뀌는 디지털 업무 환경에도 적응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게 됐다.
정부도 중장년층의 새로운 출발을 돕기 위해 직무 전환 지원에 나서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2025년부터 '중장년 경력지원제'를 시행해 퇴직한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새로운 직무에서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2026년에도 직무교육과 실제 일 경험을 연계해 경력 전환을 돕고 있다.
다만 지원의 무게중심이 50대 이상에 쏠려 있다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40대 실직자들이 그동안 쌓아온 경력을 살려 다시 일할 수 있도록 별도의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장년 구직자들이 바라는 지원도 일자리 알선을 넘어선다. 한국경제인협회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가장 필요한 재취업 지원정책으로 '중장년 친화 유연근무제 및 시간제 일자리 확대'(22.2%)와 '중장년 특화 직무교육 및 경력 전환 지원 강화'(22.0%)가 나란히 상위에 올랐다. 퇴직 이후에도 경력을 이어갈 수 있는 일자리와 새로운 직무에 적응할 기회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중장년층의 이른 퇴직이 장기 실업과 가계 소득 감소로 이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그동안 쌓아온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늘리고 직무교육부터 현장 경험, 재취업까지 이어지는 지원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