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025년 이어진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 때 손잡았던 '4자연합' 내부에서 벌어진 위약벌 소송 1심에서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승리했다. 패소한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 킬링턴유한회사(라데팡스파트너스의 특수목적법인(SPC)) 쪽은 항소하겠다고 밝혀 소송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은 비록 1심이지만, 경영권 확보를 위해 결성한 연합이 실제 사업·투자 판단에서도 공동 의사결정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론을 다시 한번 부각시켰다. 현재 송영숙 회장과 신동국 회장 양쪽의 지분 확보 싸움이 치열한 가운데 이번 소송 결과까지 맞물리면서 4자연합 내부의 균열이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한미약품 쪽은, 전문경영인 체제가 자리 잡았기 때문에 소송이 사업과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왼쪽),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6일 제약업계 움직임을 종합하면, 서울중앙지법 민사30부(재판장 김석범 부장판사)는 1일 송 회장과 임 부회장, 킬링턴 등 3자(이하 송 회장 쪽)이 신 회장을 상대로 낸 약 600억 원 규모의 위약벌 청구를 기각했다. 소송비용은 원고 측이 부담하도록 했다.
◆ 시니어케어 투자 번복이 발단
앞서 송 회장 쪽과 신 회장은 2024년 11월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 때 임종윤 전 한미사이언스 사장과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사장 겸 한미정밀화학 대표의 형제에 맞서 '4자연합'을 꾸리고 주주 간 계약을 맺었다. 주주 간 계약은 이듬해 1월 한 차례 보완됐다. 4자연합은 계약에서 △이사회 구성 및 의결권 공동행사 △우선매수권(Right of First Offer) △동반매각참여권(Tag-along right) 등에 합의하고 이를 어기면 위약벌을 내기로 했다. 4자연합 계약은 2029년 만료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4자연합 내 법정 다툼의 시작은 2025년 6월 한미약품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의 시니어케어 사업 안건이다. 이사회는 6월5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시니어 레지던스 투자를 서울성모병원의 협력을 조건으로 의결했다. 하지만 닷새 뒤인 10일 이사회에서 다시 논의한 끝에 투자 안건이 찬성 4명, 반대 6명으로 부결됐다. 이 표결에서 신 회장은 병원 협력 확약의 어려움, 투자금 회수 장기화 우려, 추가 투자자 확보 곤란 등을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다.
송 회장 쪽은 신 회장이 합의 없이 재논의 안건을 올리고 기존 합의와 입장을 바꿔 안건을 부결시켜 투자가 무산됐다며 600억 원의 위약벌을 청구했다. 신 회장 쪽은 첫 표결이 서울성모병원 협력을 전제로 한 조건부 결정이었고 이후 사업 여건이 달라져 판단을 바꾼 것이어서 계약 위반이 아니라고 맞섰다.
1심 재판부는 신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6월5일 결의가 조건부 승인이어서 조건 충족을 확인할 후속 이사회가 예정돼 있었다고 판단했다. 6월10일 결의도 투자 여부를 확정하려는 것이어서 새 안건으로 이사회를 다시 연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바라봤다. 4자가 투자 여부를 이사회 안건으로 올리기로 합의했을 뿐 그 합의를 넘어 실제 투자까지 확정적으로 합의했다고 볼 증거도 없다고 했다.
◆ 내년 정기주주총회 표 대결 펼쳐지나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4자연합의 결속력이 더욱 약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상 와해 수준에 접어들었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양쪽의 가압류 공방과 지분 확보 경쟁에 더해 추가 소송전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 한미약품그룹의 지배구조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전이 계속될 확률이 높아졌다.
특히 사업·투자 판단에서 한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점이 확인된 만큼 앞으로 다가올 정기주주총회 등에서 표 대결이 펼쳐지는 등 경영권 분쟁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다만 당사자들이 계약의 합의 범위와 계약 내용의 이행 의무를 다투는 수준에 그칠 뿐 연합을 해체하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위약벌 책임이 무거울 뿐 아니라 서로의 지분을 통제하는 강력한 재산권 조항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6월 말 기준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임 부회장과 신 회장은 상반기 이사회에서 자기주식 처분, 현금배당, 재무제표 승인, 이사회 규정 승인 등 모든 안건에 함께 찬성표를 던졌다. 이는 상호 갈등 중에도 통상적인 경영 협력은 이어졌다는 근거가 된다.
결국 신사업에 대한 투자처럼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이사회 안건, 또는 2027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상정될 이사 재선임 또는 신규 이사 선임 안건에 양쪽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가 향후 경영권 분쟁의 수준과 향방을 판단할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10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내년 3월에는 임종훈 사장(사내이사), 배보경 기타비상무이사의 임기 만료가 예정돼 있다. 같은 해 11월에는 신 회장(기타비상무이사)의 임기가 만료된다.
◆ 상호 가압류와 지분 경쟁
현재 송 회장 쪽과 신 회장은 치열한 물밑 싸움을 벌이고 있다.
먼저 송 회장 쪽은 2025년 신 회장을 상대로 위약벌 소송을 제기하면서 신 회장 소유의 한미사이언스 주식과 신 회장 자택을 가압류했다. 가압류된 주식과 자택은 각각 120억 원, 100억 원 규모로 알려졌다. 다만 가압류 인용은 채권 보전을 위한 잠정 조치로, 계약 위반이나 위약벌 지급 책임이 확정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신 회장 역시 임 부회장이 공동의결권 행사 의무를 위반해 200억 원의 위약벌 채권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이 가운데 100억 원을 보전하기 위한 주식 가압류를 신청했다. 법원은 7월 이를 인용했다.
임 부회장은 4자연합 협약을 맺기 전인 2022년 1월~2023년 2월 기간에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자신의 지분 중 2.7%를 투자사인 에쿼티퍼스트에 환매조건부로 넘기는 계약을 맺었다. 신 회장은 에쿼티퍼스트가 이 주식을 시장에 임의로 처분하면서 임 부회장이 이 지분에 해당하는 의결권을 2025년과 2026년 정기주주총회에서 행사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임 부회장이 4자협약 체결 당시 보유 지분이라고 밝힌 9.15%에 이미 처분된 2.7%가 포함돼 있었고 주식의 의결권을 상실하지 않도록 방어하는 별도의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아 주주 간 계약을 위반했다는 주장이다.
송 회장과 신 회장 양쪽의 한미사이언스 지분 경쟁도 치열하다. 신 회장은 송 회장의 장남인 임종윤 전 사장 쪽의 지분을 장외매수하는 등 지분을 꾸준히 늘려 확실한 개인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현재 개인 지분율은 28.15%로, 한양정밀 지분(6.95%)까지 합치면 35.11%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9월29일 공시된 '주식등의대량보유상황보고서'를 기준으로 볼 때 송 회장 쪽(특수관계인과 킬링턴까지 포함)의 지분율은 34.02%로 신 회장에 1.1%포인트가량 뒤져 있다. 다만 2024년 특별관계 해소로 주식 보유 현황을 별도 공시하고 있는 차남 임종훈 사장(2.60%)과 임 사장이 최근 지분을 매각한 나우아이비(2.50%)까지 포함하면 39%대로 앞선다.
과거 경영권 다툼에서 형인 임 전 사장과 손잡고 어머니와 누나인 송영숙·임주현 모녀와 대결하던 임 사장은 7월 모녀의 우호세력인 나우아이비에 일부 지분을 넘기면서 모녀 쪽에 합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