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가 새로운 컬렉션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 라벨이 붙은 운동화를 공개했다. 원산지 표기가 곧 브랜드 이미지로 귀결되는 명품 업계에서 이례적인 행보로 평가된다.
'메이드 인 차이나' 원산지 표기로 논란이 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의 운동화 '드립' ⓒ로이터=연합뉴스
5일 로이터를 비롯한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Gucci)의 운동화 '드립'(Drip)에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라벨을 붙여 나온 것을 두고 최근 논란이 일고 있다.
구찌 로고가 박힌 양말 형태의 이 운동화는 1050달러(약 160만 원)의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웹사이트 상품 소개에서도 '메이드 인 차이나' 라벨을 확인할 수 있다.
구찌 공식 홈페이지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로 표기된 제품 상세 설명을 확인할 수 있다. ⓒ웹사이트 캡처
로이터는 24일 보도에서 구찌의 이번 중국산 원산지 표기를 두고 "구찌가 이탈리아 명품 하우스의 전통을 깨뜨렸다"고 평가했다. 이어 "중국 원산지 라벨은 구찌에게 좋은 이미지가 될 수 없다"며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 내다봤다.
일각에선 구찌가 매출 부진이 이어지자 비용 절감을 위해 일부 제품을 중국에서 제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구찌의 모회사 케링 그룹이 올해 발표한 실적 자료를 보면 구찌의 매출은 2022년 103억4870만 유로(약 15조9085억 원)에서 2025년엔 59억9200만 유로(약 9조1900억 원)로 크게 줄었다. 영업이익 역시 2022년 37억3200만 유로(약 5조7337억 원)에서 2025년 9억6600만 유로(1조4816억 원)로 4분의 1토막이 났다.
로이터는 구찌가 중국 생산을 통해 비용을 통제하면서 가격에 민감한 중산층 소비자를 다시 끌어들이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내놨다.
이에 케링 그룹 대표 루카 데 메오는 30일 기자회견을 통해 "해당 제품 제작에 필요한 기술적 노하우와 역량을 중국 측이 갖추고 있다"며 "생산 시설 일체를 중국으로 이전할 계획은 없다"고 비용 감축 의혹을 반박했다.
고가 명품 브랜드 상품의 공정 일부가 중국과 동유럽 등 저임금 국가에서 이루어지는 건 새로운 흐름이 아니다.
2017년 영국 가디언 취재를 통해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의 운동화를 둘러싸고 원산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루마니아 공장에서 완제품 직전까지 만든 운동화를 이탈리아로 보내 밑창만 붙여 '메이드 인 이태리'(Made in Italy)라고 원산지를 표기했다는 것이다. '실질적 제조'가 마지막으로 발생한 국가를 원산지로 표기하는 EU법의 허점을 이용한 술수였다.
그런데 이번에 구찌는 '대놓고' 원산지를 중국으로 표시하면서 새로운 논란을 낳은 것이다. 루이비통은 제작 공정 대부분이 다른 국가에서 이뤄졌음에도 '메이드 인 이태리'라고 포장을 유지했지만, 구찌는 '메이드 인 차이나'를 스스로 드러내면서 포장을 없앤 셈이다.
명품의 원산지 라벨은 단순히 생산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제품의 가치와 정체성을 이야기한다. '이탈이아 장인'의 손길로 지어졌다는 '신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실제 이탈리아의 라치오 대학교 교수 루치오 카펠리가 2017년 국제학술지 서스테이너빌리티(Sustainability)에 기고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메이드 인 이태리' 표시가 있는 제품에 10~30% 정도 추가적으로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구찌의 '메이드 인 차이나' 운동화는 '이탈리아 명품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