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안세영 선수가 2026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아시안게임 최초로 배드민턴 여자 단식 2연패라는 새 역사를 쓴 것이다.
경기 내용은 2연패라는 상징성보다 더 압도적이었다. 4강전과 결승전에서 세계랭킹 4위 천위페이, 3위 야마구치 선수를 큰 격차로 따돌렸다. 최정상급 선수들과 맞붙어 안세영 선수는 각각 한 세트씩 상대에게 10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배드민턴은 세트당 21점을 내야 하는 경기다.
안세영 선수는 올해 56승 1패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1패의 성적은 단 1개의 대회를 제외하고는 모든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대표 안세영 선수가 9월29일 일본 아이치현 이치노미야 시립체육관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에서 셔틀콕을 받아 넘기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안세영 선수가 코트 위에 서 있을 때 셔틀콕이 오가는 랠리를 복기해 보면 글로벌 패권 경쟁 한복판에 놓인 산업계가 짚어봐야 할 생존 전략이 담겨 있다.
안세영 선수가 경쟁자들을 물리치는 데는 강력한 스매싱보다 어떤 공격이든 받아내는 기본기, 철벽수비가 있다. 2023년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안세영 선수의 수비에 모든 공격이 막힌 뒤 체력이 고갈된 상대 선수가 발을 떼지 못하는 장면은 많은 스포츠 팬들에게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수십 번 이어지는 랠리 속에서 공격 일변도였던 상대의 체력과 인내심이 바닥나는 순간 안세영 선수는 빠르고 날카로운 반격으로 점수를 획득한다. 안세영 선수에게 수비란 단순히 실점을 막는 방어 기제가 아니라 ‘완벽한 공격을 위한 사전 작업’이다.
시선을 산업계로 돌려보면 불확실성이 커진 글로벌 경제 상황 속에서 기업들의 처지도 비슷하다.
중국 기업들의 굴기는 모든 산업군에서 상수가 됐고 유가 변동성은 더욱 심화했다. 인공지능(AI) 산업에서는 최근 ‘규제 논쟁’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런저런 이슈가 터지면서 기업들에게 혼선을 준다. 반도체 공정 한계 돌파, 피지컬 AI의 부상, 에너지저장장치(ESS) 중심의 배터리 생태계 재편 등 빠르게 시장이 변화하고 있다. 이에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선제적 투자로 시장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기초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무리한 공격의 대가는 치명적이다. 60년 가까운 역사의 ‘반도체 제국’ 인텔의 위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미세공정 전환과 수율 확보라는 제조업 본연의 기초체력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무리하게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재건과 AI 칩이라는 승부수를 띄운 결과 현금흐름이 악화하며 결국 파운드리 사업을 분사했고 매각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스웨덴 배터리 제조사 노스볼트의 몰락도 궤를 같이한다. 공격적 사업 확장에 나섰던 노스볼트는 정작 핵심인 품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자금 사정이 악화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라는 변수가 발생하자 취약한 펀더멘털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보호 신청에 이르렀다. 펀더멘털을 기르는 수비만 해서는 주도권을 쥐기 어렵지만 공격적 투자라는 스매싱만 날려서는 생각보다 빠르게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반면 위기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방어력을 끌어올려 다음 공격을 준비하거나 이미 구축한 펀더멘털을 바탕으로 초격차 투자를 이어가는 사례도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의 초호황이 도래하기 전 꽤 길었던 반도체 겨울 국면을 단단한 재무 여력으로 버티면서 기업의 근간인 연구개발(R&D)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다소 부침을 겪었지만 그동안 쌓아왔던 자산들이 3분기와 4분기 각각 100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으로 돌아오는 모양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대규모 반도체 팹 증설 등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면서도 시장의 신뢰를 받고 있다. HBM 시장 주도권으로 확보한 이익을 바탕으로 ‘순현금 100조 원’이라는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기초체력인 현금 보유량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시기다. 당장 비용을 줄이고 현금 확보에만 치중하는 기업은 미래 성장에 제동이 걸리고 반대로 기초체력을 외면한 채 무리한 차입에 의존하는 기업은 위기를 넘기기 어렵다.
공격과 수비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는 질문은 자칫 우문이 될 수 있지만 앞선 기업들의 명암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지점은 분명하다. 위기를 버텨낼 수비력이 전제되지 않은 채 휘두르는 스매싱은 승리를 보장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안세영 선수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한 뒤 귀국길에서 “전성기라고 느끼지 못하겠다”며 “전성기라고 하기에는 아직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이 남아 있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아시안게임 최초 2연패, 56승 1패라는 성적에도 더 나은 전성기를 바라볼 수 있는 자신감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기초체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