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안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이 조선업계와 철강업계 등 중후장대 산업에서 커져가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리스크를 빠르게 해소하는 데 성공했다.
최 부회장은 삼성중공업의 사업 확장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가운데 중국 기업과 ‘초격차’를 시현할 무기로 꼽히는 부유식 데이터센터(FDC) 성과 확보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성안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이 업계에서 장기화하고 있는 '임단협 리스크'에서 빠르게 벗어나 부유식 데이터센터(FDC) 등 미래 먹거리 확보에 공을 들인다. ⓒ삼성중공업
23일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에 따르면 이날 오전 조합원 388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잠정합의안 찬반투표는 찬성표 58.78%(2097표)로 가결됐다. 반대표는 41.12%(1467표)가 나왔다.
삼성중공업 노사는 전날 21차 협상에서 3개월여 만에 첫 잠정합의안을 마련한 뒤 빠르게 올해 임금협상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삼성중공업 노사는 6월 말부터 올해 임금협상을 시작했지만 기본급 인상, 성과급 재원 등을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해 왔다. 노조는 기본급 9.3% 인상을 요구했고 사측은 기본급 4.7% 인상에 격려금을 제시했다.
삼성중공업 노사는 기본급 인상 폭을 사측의 제시안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면서 성과급 지급 기준은 노조의 요구를 담는 방안으로 합의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날 가결된 잠정합의안에 따르면 기본급은 기준 4.5%에 정기승급분 0.7%를 더한 5.2%가 인상되는 것으로 결정됐다. 또 각종 격려금 700만 원과 올해 정년퇴직자의 계약직 재고용 기간 연장, 내년 생산직 신규 채용 등의 내용이 잠정합의안에 담겼다.
특히 초과이익성과급(OPI) 재원은 기존 경제적부가가치(EVA) 20%에서 영업이익의 10%로 정해졌다. 삼성중공업 노조는 호황의 성과가 구성원에게 제대로 공유돼야 한다는 차원에서 앞서 다른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도입한 ‘영업이익 10% 성과급 배분’을 주장해 왔다. 올해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전기, 삼성SDI 등에서 이 제도를 도입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상호 신뢰와 존중으로 임금협상을 마무리했다”며 “임직원 모두가 경쟁력 강화와 실적개선에 힘을 모으고 상생의 노사 문화 구축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 부회장은 올해 중후장대 산업 전반에서 불거지고 있는 ‘임단협 리스크’를 털어내고 삼성중공업 사업 확장에 집중할 환경을 마련하게 됐다.
현재 조선업계에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철강업계에서는 포스코가 노사 사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올해 임단협 타결을 추석 이후로 넘기게 됐다. 중후장대 산업의 노사 갈등이 여름철 ‘하투’를 넘어 명절 이후 ‘추투’까지 길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삼성중공업 이외의 기업들은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이날 추가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모두 첫 잠정합의안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각각의 노조들은 추석 이후 전면 파업 등 강경한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조선업계에서는 장기화하는 임단협이 사업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조선업 호황에 힘입어 도크(건조시설)가 가득 찬 만큼 선박 건조에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이지만 노조의 투쟁이 파업으로 번지면 건조 일정 지연, 대외신뢰도 하락, 중장기 수주 경쟁력 약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 부회장은 올해 삼성중공업 실적개선 및 수주 호조 등을 이끌고 있는데 우수한 경영실적을 이어갈 기반을 다지게 된 셈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올해 연결기준 매출 12조7841억 원, 영업이익 1조3686억 원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보다 매출은 20.0%, 영업이익은 58.7% 늘어난 것이다.
또 삼성중공업은 14일 기준으로 상선 부문에서 올해 수주목표(57억 달러), 지난해 수주실적(71억 달러)을 초과한 신규수주 73억 달러를 기록했다. 남은 기간 1기당 1조 원을 훌쩍 넘는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설비(FLNG) 2기를 추가로 수주해 전체 수주목표 139억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다만 중국 기업들이 물량과 기술 모두에서 추격의 속도를 높이고 있어 삼성중공업을 포함한 국내 기업들은 중국 기업들이 진출하지 못한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해야 한다는 시각이 나온다.
현재 중국 기업들은 글로벌 조선업계의 건조 설비 증설량 대부분을 차지하면서도 범용 선박뿐 아니라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등 국내 기업의 차별화 지점이었던 고부가가치 선박으로도 발을 넓히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헝리중공업을 들 수 있다. 헝리중공업은 최근 중국에서 여섯 번째로 LNG운반선 건조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 조선3사보다 저렴한 가격을 경쟁력 삼아 LNG운반선 시장을 넘보고 있는 것이다.
또 헝리중공업은 9월 셋째 주 머스크가 발주한 컨테이너선 26척 가운데 20척, 다이콤탱커스가 발주한 VLCC 및 초대형 암모니아운반선(VLAC) 8척을 모두 따내면서 수주를 빠르게 늘려가고 있다. 8월 말 기준으로 올해 발주된 VLCC 143척 가운데 58척(40.6%)을 헝리중공업이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최 부회장은 중국 기업과 기술 격차를 벌리는 일이 중요해진 시점에서 FDC를 새로운 먹거리로 점찍고 있는데 올해 안에 가시적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FDC는 AI 기술 상용화에 따라 폭발적으로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데이터센터의 부유식 모델이다. 육지가 아닌 강이나 바다 위에 설치해 부지 확보, 전력 수급, 냉각 효율 등의 기존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도 바다 위 발전소 및 데이터센터 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하는 가운데 삼성중공업은 올해 4월 미국선급(ABS)과 영국선급(LR)으로부터 50MW(메가와트)급 개념설계 인증(AiP)을 획득하며 가장 빠르게 상용화 절차를 밟고 있다.
특히 올해 안에 FDC 일감을 실제로 수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미국 데이터센터 사업개발 전문기업 무스테리안과 현지 FDC 도입을 위해 손을 잡고 있는데 무스테리안이 디벨로퍼(개발사업자)로 주도하는 프로젝트에서 마수걸이 수주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스테리안은 ‘제우스’로 명명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텍사스주 휴스턴 복합화력발전소 인근에 500MW 규모의 하이브리드 부유식 및 육상형 발전 캠퍼스를 조성하는 것으로 2028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무스테리안은 이 프로젝트를 놓고 “장기 전력구매계약(PPA)으로 우수한 에너지 가격을 확보하고 지속적 가동 시간을 보장하는 등 고성능 컴퓨팅 용량을 직접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무스테리안은 제우스 이외에도 ‘샌드파이퍼’라는 이름으로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지역에서 860MW 규모의 FDC 캠퍼스를 구축하겠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2029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도 삼성중공업의 기회 요인으로 꼽힌다.
한승한 SK증권 연구원은 17일 삼성중공업 분석보고서에서 “무스테리안의 제우스 프로젝트에 FDC 2기를 납품하는 것과 관련해 올해 4분기 안에 설계·조달·시공(EPC) 본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샌드파이퍼 프로젝트에서도 삼성중공업의 FDC가 다수 납품될 것으로 예상돼 삼성중공업은 반복건조 효과를 볼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최 부회장은 7월 무스테리안과 FDC 구축 사업에 관한 엔지니어링 계약을 맺으며 “FDC는 50년 이상 쌓아온 수행 역량을 자연스럽게 확장하는 분야”라며 “엄격한 기준, 높은 품질, 정확한 납기를 통해 FDC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