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 통합 방안을 최종 승인하면서, 2020년 11월 인수 추진 후 약 6년 만에 양사 결합을 위한 행정 규제의 높은 산은 대체로 넘어서게 됐다.
안전운항체계 변경검사 등 일부 행정적 후속 절차가 남아 있으나 중요한 법률적·행정적 규제 승인 절차는 사실상 완료됐다.
이제 양사 통합 작업의 무게중심은 법률과 규제에서 실제 승객이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운영 통합으로 이동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즉 예약번호와 편명 변경, 좌석 배정, 항공권 발행, 수하물 연결, 체크인, 라운지 이용, 우수회원 등급, 결항·지연 처리 등 실제 고객 접점에서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통합해 나가야 하는 과제들이 남은 것이다.
여기에 조종사 서열을 둘러싼 대한항공 조종사노조의 반발 등 인력·조직 통합 과정의 갈등도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에게는 '시스템'과 '사람' 두 영역에서 결합 절차를 순조롭게 마침으로써 12월17일 법적으로 하나가 되는 두 회사를 고객이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하나의 항공사로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주어진 셈이다.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 ⓒ 대한항공
2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고객의 예약·항공권 정보를 대한항공 시스템으로 옮기는 작업에 들어갔다.
11월2일부터 12월3일까지 아시아나항공의 편명 'OZ'를 대한항공 편명 'KE'로 전환하는 항공편명 변경을 실시한다. 통합 항공사 출범일(12월17일) 이후 출발하는 아시아나항공 항공편을 예약했거나 항공권을 구매한 고객이 대상이다.
업계에서는 이 작업이 간단하지 않다고 본다. 고객 예약에는 예약번호와 전자항공권 번호, 출발·도착 시각뿐 아니라 좌석 등급과 사전 지정 좌석, 특별기내식·휠체어 등 부가서비스, 유아·반려동물 예약, 우수회원 정보와 수하물 혜택, 여행사·제휴항공사를 통한 발권 내역까지 복잡하게 연계돼 있다. 정보가 일부라도 누락되면 좌석 배정 실패, 온라인 체크인 실패, 항공권 조회 오류, 특별서비스 신청 누락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한항공은 좌석·기내식·라운지·수하물·우수회원 제도 등 고객이 체감하는 서비스를 표준화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무료수하물 허용량과 유료좌석, 반려동물·유아 동반 서비스, 지연·결항 때 지원 기준 등 세부 정책을 출범 전에 충분히 안내하는 것도 과제다.
외부 고객에게 보이는 시스템뿐 아니라 항공기의 운항과 안전을 관리하는 내부 시스템도 하나로 묶어야 한다. 통합 대상에는 △항공기의 출발부터 도착까지 운항 상황을 관리하는 운항통제시스템 △부품 교체와 결함·검사 이력을 기록하는 정비·감항관리시스템 △조종사와 객실승무원의 자격 및 교육 이수 여부와 근무·휴식시간을 관리하는 승무원 자격·편성시스템 △잠재적 위험을 식별하고 관리하는 안전관리시스템 등이 포함된다.
단순히 시스템의 데이터를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시스템 간 실시간 연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까지 확인해야 하는 만큼 상당한 정교함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대한항공 보잉 787-10 ⓒ 대한항공
◆ 아직 완결되지 않은 인력·조직 통합 과제 – 조종사 서열과 복수노조
고객 접점 시스템 통합이 속도를 내는 것과 달리, 조종사를 포함한 인력·조직의 결합은 여전히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다.
가장 뜨거운 쟁점은 '통합 서열(시니어리티)'을 둘러싼 대한항공 조종사노조의 반발이다. 대한항공은 두 회사 조종사의 순서를 하나의 시니어리티 명부로 합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조종사노조는 이 통합안이 두 회사의 서로 다른 기준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핵심은 기장이 되는 순서인 '서열'을 매기는 기준일이다. 노조는 회사가 입사일이 아니라 정식 사번 부여일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8~27개월의 초기교육을 거친 후 정식 사번을 받는 대한항공 민간경력 조종사가 입사 후 바로 사번을 받는 아시아나항공 민간경력 조종사에 견줘 상대적으로 불리해졌다는 입장이다. 또 민간경력 조종사 채용 시 대한항공은 1천 시간, 아시아나항공은 250∼300시간의 비행경력을 요구해 채용 기준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이 노조 쪽 주장이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사측은 통합 서열 운영 시 현재 양사의 군경력-민간경력 간의 내부 서열과 군경력-민간경력 조종사 사이 승격 격차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군경력-민간경력 승격서열 격차는 대한항공의 경우 9개월, 아시아나항공은 4년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대한항공 민간경력 조종사의 승격 시기가 아시아나항공 민간경력 조종사보다 3년 3개월 앞서기 때문에 대한항공 민간경력 조종사에게 차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민간경력 조종사가 입사 전 쌓은 더 많은 비행경력과 입사 후 거친 초기교육 기간을 보상하는 효과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시니어리티 갈등 내용을 요약하면 대한항공 민간경력 조종사와 아시아나항공 군경력 조종사의 통합 명부상 선후관계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입사일을 기준으로 하면 대한항공 민간경력이 아시아나항공 군경력보다 서열에서 앞서고, 사번 부여일로 하면 일부 조종사에서 이 순서가 뒤집힌다.
대한항공 사측은 이번 합병에서 아시아나항공 직원에 대한 포괄적 고용승계와 비차별을 통합 원칙으로 삼은 만큼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를 일률적으로 후순위에 배치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내세운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7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했다. 노사가 합의에 이르지 못할 때 노동위원회가 중간에서 조정하는 절차다. 노사는 18일 1차 조정에 이어 22일 2차 조정을 진행했지만 타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정기한을 15일 연장해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다시 합의에 실패하면 노조가 파업 등 쟁의행위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한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내부에 각각 복수의 노조가 활동하고 있어, 회사 통합 이후 단체교섭 창구 단일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노조와 노조 간 갈등, 즉 '노-노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현재 대한항공에는 2개 노조(대한항공 노조,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아시아나항공에는 3개 노조(아시아나항공 노조,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 아시아나항공 열린조종사노조)가 활동하고 있다.
다만 인력·조직 통합 과정이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는 17일 '2026년 임금교섭안'과 '통합항공사 근로조건 단일화 안건'을 모두 가결했다. 이 중 통합항공사 근로조건 단일화 안건은 임금협약과 단체협약, 운항승무원 제반 근로조건을 통합사 기준으로 일원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양사 조종사노조 중 적어도 한쪽은 통합을 앞두고 내부 정리를 마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