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사고가 나면 조사관들이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블랙박스다. 비행기록장치에는 고도와 속도, 조종간의 움직임이 남고, 조종실 음성기록장치에는 조종석에서 오간 대화가 남는다. 조사는 그 기록을 따라 사고 직전의 순간을 한 장면씩 되감는 데서 시작한다.
조사가 시작되자마자 항공사 회장의 사무실로 직행하는 조사관은 없다. 회장에게 책임이 없어서가 아니다. 무리한 운항 일정이나 정비 예산 삭감 같은 경영 판단이 사고의 사슬에 닿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비로소 조사관은 회장실 문을 두드린다. 회장실은 조사의 출발점이 아니라 도착점인 셈이다.
국민의힘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과 관련된 증인 신청 명단에 김남구 한국투자금융그룹 회장(왼쪽)과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을 올렸다. ⓒ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국민의힘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을 누가 처음 제안했는지 따지겠다며 김용범 전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함께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을 증인 신청 명단에 올렸다. 아직 채택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최종 명단은 여야 간사 협의를 거쳐 가려지게 된다.
국회가 확인하려는 것은 이 상품이 만들어진 경로다. 올해 1월6일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주재로 금융당국과 업계의 회의가 열렸고, 1월13일에는 김용범 당시 정책실장 주재의 비공개 회의가 이어졌다. 같은 달 30일 금융위원회는 단일종목 2배 레버리지 ETF 허용을 담은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5월27일 미래에셋·한국투자 등 8개 운용사가 16개 ETF를 출시했고, 미래에셋증권은 ETN 2종을 내놨다.
1월13일 회의를 앞두고 참석 업체 5곳이 낸 사전 의견서에는 레버리지 상품 도입을 직접 요구한 곳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은석 국민의힘 의원실이 확보한 1월6일 회의 자료는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증권사·운용사들이 각자 낸 제안서에는 없던 '단일종목 2배 레버리지 허용'이, 금융투자협회 이름으로 묶인 종합자료에서는 맨 첫 안건으로 올라 있었다. 협회는 이 문서가 "참석자가 회의 발언을 위해 준비한 참고자료"였다며, 업계에서 이미 여러 차례 나온 의견을 참고해 만들었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1월13일 회의는 회의록조차 남지 않았다. '블랙박스'가 없는 사고인 셈이다. 이런 사고일수록 조사는 조종실에 있던 사람들의 기억을 하나씩 맞춰보는 수밖에 없다. 누가 이 상품을 처음 테이블에 올렸는지, 누가 어떤 의견을 냈는지, 당국은 누구의 말을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그 답을 가진 사람들은 그날 그 방에 있었던 인물들이다.
김 전 실장은 그 회의를 주재했다. 그를 부르는 데 이견을 달기는 어렵다.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들도 그 방에 있었다. 두 회사가 어떤 의견을 냈고 상품 도입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확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배 대표가 이끄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의 SK하이닉스 레버리지 ETF는 상장 12일 만인 6월8일 괴리율이 90%를 넘어섰다.
그러나 박현주 회장과 김남구 회장은 그 회의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다. 국회가 밝혀내겠다는 것이 '그 회의에서 누가 무엇을 제안했느냐'인데, 정작 그 자리에 없었던 그룹 오너들의 이름이 가장 크게 불리고 있는 셈이다.
물론 박 회장에게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제기한 '김 전 실장과의 비밀 회동 의혹'이라는 앵커가 하나 더 걸려 있다. 하지만 이는 아직 의혹 제기 단계이고, 미래에셋그룹은 회동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회동이 실제로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회동이 레버리지 ETF와 관련된 것이었다는 것 역시 밝혀지지 않았다.
가정에 가정이 얹혀 있는 상태에서, 심지어 당사자가 해당 가정을 부인하고 있는 상태에서 국정감사 증인으로 소환했을 때 받을 수 있는 대답은 "만난 적 없다"는 한마디뿐이다. 국정감사를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이 얻을 수 있는 것 역시 대기업 회장을 국회의원이 호통치며 몰아세우는 장면 하나뿐이다. 실체적 진실 규명이라는 본질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기업 오너를 국감에 불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 없다. 오너도 사건에 관여했다면 당연히 국회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문제는 오너라는 직함 자체가 사건과의 관련성을 대신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책임을 규명하는 일에는 순서가 있다. 누가 상품 도입을 처음 제안했는지, 누가 회의에서 의견을 냈는지, 금융당국은 누구의 의견을 받아들였는지, 회사 안에서는 누구에게 보고됐는지, 최종 의사결정은 어디까지 올라갔는지를 하나씩 확인해야 한다.
박 회장이나 김 회장을 부르는 것은, 그 사슬이 박 회장이나 김 회장의 책상까지 이어지는 것을 확인했을 때다. 직접 지시했거나 보고를 받고 결정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두 사람을 증인으로 세우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연결고리를 확인하기도 전에 '그 회사가 관련됐으니 그 회사 회장'이라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조사의 방향이 거꾸로 된 것이다. 사실을 따라 책임자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조직도의 가장 높은 곳에서 사람을 먼저 정한 뒤 책임의 근거를 찾는 모양새가 된다.
국감 증인을 고르는 기준도 '누가 가장 높은가'가 아니라 '누가 가장 정확하게 답할 수 있는가'여야 한다. 단일종목 레버리지의 도입 과정을 묻겠다면, 그 회의와 정책 결정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부터 물어야 한다.
국감의 기업인 소환을 둘러싼 논란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2020년 63명이던 국감 기업인 증인은 22대 국회 첫 국감이었던 2024년 159명으로 늘었다. 그해 채택된 일반증인 510명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기업인이었다. 지난해에는 채택 기준 195명으로 다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하루를 꼬박 기다려 몇 분 답하고 돌아가거나, 질문 한 번 받지 못하고 국회를 떠나는 기업인도 한둘이 아니었다.
기업 활동이 국민경제와 소비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기업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국회의 역할 가운데 하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증인 선정은 더 정확해야 한다.
유명한 그룹 회장이 증언대에 앉은 장면은 눈길을 끈다. 반면 실무 책임자와 정책 담당자를 상대로 몇 시간 동안 의사결정 과정을 복원하는 일은 훨씬 덜 극적이다. 그렇다고 후자가 덜 중요한 일은 아니다. 사고 조사의 대부분이 기록을 한 줄씩 대조하는 지루한 작업으로 채워지듯이.
국감에 필요한 것은 '그림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답을 가진 사람'이다. 사건과의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은 유명인을 부르는 순간, 국감의 관심은 책임 규명에서 인물 자체로 옮겨가기 쉽다.
국회가 가진 증인 출석 요구권은 강력하다.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를 수 있다'와 '불러야 한다' 사이에는 엄격한 구분이 필요하다. 국회의 권위는 얼마나 높은 사람을 국감장에 세웠는지가 아니라, 필요한 사람을 정확히 골라 정확한 질문을 던지는 데서 나온다.
국감은 높은 사람을 혼내는 자리가 아니라 답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답을 듣는 자리다. '누가 제일 높은가'를 묻기 시작하는 순간, '누가 실체적 진실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은 뒤로 밀려난다.
조종실을 들여다보기도 전에 회장실 문부터 두드리는 항공기 사고 조사관을 신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블랙박스가 남지 않은 사고일수록 조사는 조종실에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