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마다 온라인에서 소환되는 댓글이 있다. 한때 '대한민국 명절 문화를 바꾼 댓글'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명절이면 고향을 찾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차례를 지내던 풍경을 비튼 한마디다.
추석을 나흘 앞둔 21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아쿠아플라넷 광교에서 한복을 입은 아쿠아리스트가 추석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 추석에는 명절을 보내는 모습도 한층 다양해졌다. 이들 가운데 북적이는 고향집 대신 집에서 쉬고, 친척 모임 대신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 이른바 '혼추족', 혼자 추석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숫자로 봐도 명절 풍경은 달라지고 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 4~7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천 명을 조사한 결과, 이번 추석에 따로 사는 가족을 만나겠다는 응답은 63%였다. 지난해 추석보다 5%포인트, 올해 설보다 7%포인트 줄었다. 친척을 만나겠다는 응답은 47%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특히 30대에서는 64%가 따로 사는 친척을 만날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명절은 가족 모임이라는 공식이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휴식이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피앰아이(PMI)가 지난 11~14일 전국 만 20~69세 성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번 추석 연휴 계획 1위는 '집에서 휴식'이었다. 복수응답 기준 59.6%에 이르러 10명 중 6명꼴이다.
사람들이 추석을 기다리는 이유에서도 변화가 보인다.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라는 응답이 55.1%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42.5%)보다 높았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추석을 '가족·친지와 화합하는 시간'으로 본다는 응답은 45%,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라는 응답은 43%였다. 차이는 2%포인트에 불과하다. 37%는 추석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휴일'이라고 받아들였다.
차례상 앞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이번 추석에 차례나 제사를 지낼 계획이라는 응답은 30%였다. 지난해 추석과 올해 설에는 각각 35%를 기록했지만, 이번에는 5%포인트 낮아졌다. 차례나 제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40%에 그쳤다.
그렇다고 명절에는 가족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따로 사는 가족을 명절에 만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81%에 이르렀다. 하지만 실제 이번 추석에 만나겠다는 사람은 63%에 그쳤다.
올해 추석 연휴가 길지 않은 것도 이 같은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추석 공휴일인 24~26일에 일요일인 27일이 이어져 연휴는 나흘에 불과하다. 먼 고향을 오가는 데 시간과 비용을 들이기보다 집에서 쉬거나 가까운 곳에서 연휴를 보내려는 이들에게는 짧은 연휴가 귀향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추석을 나흘 앞둔 21일 서울 서초구 센트럴시티 터미널이 귀성객으로 분주하다. ⓒ연합뉴스
물론 혼자 명절을 보내는 것이 모두 자발적인 선택은 아니다. 연휴가 짧아 고향을 오가기 어렵거나, 명절에도 일해야 해 귀향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이번 달 1~7일 전국 5인 이상 기업 601곳을 조사한 결과, 추석에 휴무하는 기업 가운데 76.5%가 4일간 휴무하는 반면 9.3%는 3일 이하만 쉬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무 기간이 3일 이하인 기업의 46%는 ‘납기 준수 등 불가피한 근무’를 이유로 들었다.
유통·서비스업 종사자나 교대근무자처럼 남들이 쉴 때 일해야 하는 사람에게 고향행은 애초부터 쉽지 않은 선택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명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고향으로 향하고, 누군가는 집에 남는다. 또 누군가는 가족과 함께하는 대신 나만의 시간으로 명절을 채운다. 혼추는 그렇게 달라진 명절 풍경의 한 장면이 됐다.
책 한 권 들고 광장으로
5월1일 서울광장에 설치된 야외도서관 '책 읽는 서울광장'에서 시민들이 책을 읽으며 독서와 휴식을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혼자라고 집에만 있을 필요는 없다. 이번 추석에는 홀로 즐길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이 곳곳에서 열린다.
책 한 권을 들고 도심으로 나가보는 건 어떨까. 추석 연휴인 25일부터 27일까지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 청계천에서는 '서울야외도서관'이 오후 4시부터 10시까지 운영된다.
야외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거나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으며 이용료는 무료다. 광장에서 느긋하게 책장을 넘기다 해가 지면 청계천을 따라 걸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도 있다.
그림과 보내는 오후
5월18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 마련된 유영국 회고전 '유영국 :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회. ⓒ연합뉴스
조용히 전시를 감상하며 명절을 보내고 싶다면 미술관도 선택지가 된다.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작가의 탄생 110주년을 기념한 대규모 회고전 '유영국 : 산은 내 안에 있다'가 열리고 있다. 미공개작을 포함한 회화·부조·사진·드로잉 작품과 아카이브 170여 점을 선보이는 역대 최대 규모 회고전으로, 관람료는 무료다.
사진에 관심이 있다면 서울 도봉구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을 찾아도 좋다. 현대 사진의 거장 마틴 파의 '마틴 파 : We Are Martin Parr'가 연휴에도 관람객을 맞는다. 1970년대 초기 흑백사진부터 후기 작업까지 대표 연작 14개 시리즈, 사진 500여 점과 사진책 90권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역시 무료다.
연휴엔 영화 한 편
연휴를 영화 한 편과 함께 보내는 것도 방법이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3일 극장가에는 신작들이 나란히 개봉한다. 이창동 감독이 '버닝'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가능한 사랑'은 국내 일부 극장에서 개봉한다. 전도연과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 등이 출연한다.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도 같은 날 개봉한다. 1974년 육영수 영부인 저격 사건을 모티프로 한 작품으로, 사건을 둘러싼 의혹과 배후를 추적한다.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 등이 출연한다.
조금 더 가볍게 즐길 작품을 찾는다면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포가튼 아일랜드'도 있다. 기억이 사라지는 신비한 섬에 간 두 친구가 우정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모험을 그린 작품으로, 역시 23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