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국에 몇 개 점포가 나갔다는 식의 얘기를 많이 했는데,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신한은행장이던 2019년 은행장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7년이 지나고 진옥동 행장이 진옥동 회장이 된 지금, 진 회장의 이야기는 베트남에서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최근 베트남 최대 대기업집단인 빈그룹과 협력 범위를 자동차금융에서 자본시장으로 넓히기로 했다. 은행의 자동차대출과 여신전문금융회사의 할부금융에서 시작한 관계가 신한투자증권의 아리랑본드 주선과 400억 원 직접투자까지 나아가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글로벌 전략의 방점은 '넓이'보다 '깊이'에 찍혀 있다.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금융이 베트남에서 벌이는 사업이 '거래 규모'가 아니라 '거래의 종류'를 바꾸고 있다는 점에서, 진옥동 회장의 글로벌 전략이 2단계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한금융이 신규 시장 진출을 멈춘 것은 아니다. 다만 베트남·일본처럼 이미 자리를 잡은 핵심 시장에서는 '한 시장에 얼마나 다양한 금융 기능을 붙이느냐'가 성장의 다음 열쇠말이 되고 있다.
◆ 빈그룹이 보여주는 '2단계', 거래 규모가 아니라 거래의 깊이
이번 빈그룹 협력 확장의 핵심은 규모가 아니라 구조다. 은행이 자동차 대출로 문을 열고, 여신전문금융회사(여전사)가 거기에 할부금융을 붙이고, 증권이 채권 주선과 직접투자를 담당한다. 신한금융그룹 계열사가 현지 최대 대기업의 사업을 금융으로 차례차례 감싸는 형태인 셈이다.
진옥동 회장의 '몇 개 나라에 몇 개 점포' 발언이 겹쳐 보이는 전략이다. 고객의 수와 거래 규모를 늘리는 방향이 아니라, 이미 확보한 고객 한 곳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금융을 붙일 수 있느냐가 승부처가 됐다는 뜻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그 대상이 리테일 고객이 아니라 베트남 증시 시가총액 1위의 대기업집단이라는 점이다. 상대가 바뀌면 붙일 수 있는 사업도 달라진다. 소매금융에 더해 채권 주선과 투자 등 자본시장 업무까지 수익원을 넓히는 전략인 셈이다.
신한금융그룹이 같은 날 신용보증기금과 국내 스타트업의 베트남 진출을 지원하는 협약을 맺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현지 영업을 넘어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금융 가교로 그룹의 역할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 해외 세전이익 1조 넘긴 유일한 금융그룹, 그러나 목표 30%는 아직 멀다
신한금융그룹의 글로벌 사업은 이미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2025년 글로벌 세전이익 1조890억 원을 내면서 국내 금융사 최초로 1조 원을 넘겼다. 세금을 낸 이후의 순이익을 보더라도 8243억 원으로, 2025년 그룹 전체 순이익의 16.6%를 차지했다.
상반기에도 해외 부문 순이익은 4725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5% 늘었다. 다만 상반기 기준으로 그룹 전체 순이익(3조4427억 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13%대에 머물러 있다.
신한금융그룹의 목표는 여기서 한참 위에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신한 2030 1·3·5' 전략을 통해 2030년 글로벌 이익 비중 30%를 목표로 내걸었다. 지금의 두 배 가까운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수치다.
주목할만한 점은 해외가 신한이 리딩금융 경쟁에서 KB에 앞서는 전장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신한금융그룹의 올해 상반기 전체 순이익(3조4427억 원)은 KB금융그룹(3조8846억 원)에 못 미쳤지만, 은행 해외법인 순이익만 놓고 보면 신한은행이 4대 은행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 적자 법인은 접고 핵심 채널은 더 깊게, SBJ 키운 진옥동의 '선택과 집중'
베트남 바깥으로 시야를 넓히면 진 회장의 글로벌 전략이 '외형 확장'과 거리가 있다는 점이 더 선명해진다.
신한투자증권은 1993년 세운 뉴욕법인을 올해 키움증권에 매각했다. 2022년부터 4년 연속 적자로 누적 손실이 45억 원을 넘긴 거점이었다. 반면 신한투자증권은 베트남에서는 빈그룹 아리랑본드 주선으로 사업을 키우려 하고 있다.
뉴욕이라고 해서 다 같은 방향으로 사업을 축소하는 것 또한 아니다. 신한은행 뉴욕지점은 홍콩·런던·싱가포르와 함께 MMC(Money Market Center)를 이루며 여전히 핵심 글로벌 IB 채널로 운영되고 있다.
성숙시장에서 이기지 못하는 사업은 접고, 성장시장의 잘되는 거점은 더 깊게 파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 방식은 진 회장이 오래전부터 이야기하고 증명해 온 것이기도 하다. 진 회장은 2019년 신한은행장 취임 간담회에서 기축통화 지역에는 하나의 똘똘한 채널, 성장시장에는 투자라는 글로벌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그 전략이 현재 무작정 나라 수를 늘리기보다 통화와 리스크를 따져 거점을 고르고, 고른 곳은 넓게 펼치기보다 깊게 판다는 원칙으로 이어진 셈이다.
빈그룹에 계열사를 차례로 투입해 거래의 깊이를 키우는 방식은 그 원칙의 최신판이다. 실제 신한금융그룹의 해외이익을 살펴보면 베트남과 일본이라는 두 축이 떠받치고 있기도 하다. 2025년 국가별 손익은 베트남 2720억 원, 일본 1792억 원으로, 두 나라의 이익 합산 금액은 글로벌 이익의 절반을 넘겼다.
진 회장은 금융 경력 가운데 약 18년을 일본에서 보낸 '일본통'이다. 오사카지점장과 SBJ은행 법인장을 지내며 SBJ를 직접 키워낸 당사자이기도 하다. "팔고 싶을 때 팔 수 없으면 재산이 아니다"라는 진 회장의 말도 오사카에서 겪은 외환위기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 남은 과제는 '넓힌 곳'이 아니라 '깊이 판 곳'에 있다
특기할 만한 점은 '깊이' 전략의 시험대가 역설적으로 가장 깊게 파고든 베트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거점에 사업을 겹겹이 쌓을수록 그 거점이 흔들릴 때의 충격도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한금융그룹의 글로벌 간판 시장 베트남에서는 둔화 신호가 관측되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베트남 지역에서 2026년 상반기 1301억 원의 순이익을 냈다. 지난해 상반기(1325억 원)보다 약 1.8% 줄었다.
다만 분기별로 살펴보면 신한금융그룹의 2026년 2분기 베트남 지역 손익은 720억 원으로 1분기(581억) 대비 24% 늘어나며 회복세를 보였다.
상반기 해외 성장을 끌어올린 것은 베트남이 아니라 일본 SBJ와 홍콩·싱가포르 등 IB 채널(MMC)이었다.
일본 SBJ은행은 상반기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 늘어난 931억 원의 순이익을 냈고, MMC(홍콩, 런던, 뉴욕, 싱가포르) 상반기 합산 순이익은 1097억 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43.1% 늘어났다.
결국 간판 시장의 성장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곳으로 시장을 무작정 넓히느냐, 간판 시장의 좀 더 깊은 영역까지 들어가느냐에 대한 신한금융그룹의 대답이 이번 빈그룹과의 협력인 셈이다.
신한금융그룹 관계자는 "자동차금융으로 쌓은 거래 경험을 바탕으로 그룹사 협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며 "베트남 기업의 국내 자본시장 조달을 지원하고 금융 가교 역할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