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초는 바닷물 온도가 급격히 오르면 몸 속에 공생하는 해조류를 뱉어내며 색이 하얗게 변한다. 이를 두고 '백화(bleaching)' 현상이라고 하는데, 산호초의 즉각적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회복하지 못하면 대규모 폐사로 이어질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갈수록 심해지면서, 세계 산호초가 백화 현상에서 회복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산호의 죽음은 해양생태계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지구온난화로 산호초의 백화현상이 심각한 수준이 이른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산호초(사진)는 전체 해양면적에 1%도 채 안 되지만, 해양생물의 25%가 이곳을 서식처로 삼는다. ⓒ 픽사베이
20일 로이터를 비롯한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세계 산호초 모니터링 네트워크(GCRMN)은 최근 보고서에서 "산호초가 다음 백화현상이 오기 전에 회복할 시간을 갖지 못할 정도로 잦은 열스트레스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산호초는 전체 해양 면적의 1%도 채 안 되지만, 해양생물 25%의 서식처이자 해안선을 지키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그런 산호초가 지구온난화로 떼죽음의 위협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산호초의 위기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제주 서귀포 앞바다의 유네스코 지정 연산호 군락도 최근 색이 빠지고 무너지는 '슬럼핑(slumping)' 현상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슬럼핑은 고수온 스트레스가 산호초의 몸체 자체가 무너지는 현상으로 산호의 죽음을 뜻한다.
제주 앞바다 산호초들도 생존위기
로이터는 제주 서귀포 무인도 인근의 유네스코 지정 연산호 군락이 최근 2년 새 색이 빠지고 몸체가 무너지는 '슬럼핑' 현상을 겪고 있다고 이번 달 7일 전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해양열파(marine heatwave)'가 있다. 대기에 폭염이 있는 것처럼, 바다에도 평년보다 훨씬 뜨거운 물이 특정 지역에 며칠에서 몇 달씩 머무는 현상이 있는데 이를 해양열파라 부른다.
산호초는 정해진 수온 범위 안에서만 몸속 해조류와 공생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데, 열파로 바닷물이 이 범위를 오래 벗어나면 산호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해조류를 뱉어내거나 조직 자체가 약해진다. 마치 사람이 고열에 오래 시달리면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딱딱한 골격으로 버티는 경산호와 달리, 연산호는 몸속 체액의 압력으로 형태를 유지하는데 높은 수온과 같은 환경 스트레스가 이런 압력조절 기능을 무너뜨리면 산호가 옆으로 쓰러지거나 뭉개진다.
실제로 제주도의 한 해녀는 로이터에 산호가 쓰러지면서 하얗게 변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는데, 이는 백화와 슬럼핑이 같은 고수온 스트레스에서 비롯돼 연쇄적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한반도 주변 해양열파 지속 기간이 4배 가까이 늘어난 83.3일에 달한 것으로 파악된다. 열파가 짧게 지나가면 산호초가 버텨낼 수 있지만, 지속기간이 이렇게 길어지면 회복할 틈도 없이 스트레스가 누적돼 죽음으로 이어질 위험이 커진다.
'백화' 주기가 줄었다, '회복 시간'이 부족하다
산호초는 원래 스트레스와 회복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백화된 산호가 곧바로 죽는 것은 아니다. 물이 다시 식으면 조류가 돌아오고 산호도 서서히 회복할 수 있다.
문제는 그 회복에 걸리는 시간이다. GCRMN 보고서에 따르면 2020~2024년 전 세계 산호 면적은 1980~2009년 평균보다 9.5% 줄었고, 과거 10년에 한 번꼴이던 대규모 백화현상은 2010년 이후 4~6년 주기로 반복되고 있다.
GCRMN 보고서의 주저자인 호주 해양과학연구소 마누엘 곤살레스-리베로 박사는 "산호초가 잃어버린 것을 실제로 되찾으려면 수십 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1998년 첫 세계적 백화 현상이 관측된 이후 2010년부터는 그 주기가 급격히 짧아졌다. 실제로 2023년 시작돼 2025년까지 이어진 가장 최근의 백화 현상은 전 세계 산호초의 약 87%에 영향을 미쳐 역대 최대 규모로 기록됐다.
곤살레스-리베로 박사는 이런 상황을 '쇠락의 계단(staircase of decline)'이라 표현했다. 회복할 새도 없이 한 계단씩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곤살레스-리베로 박사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산호초가 회복할 시간 없이 쇠락하는 것은 비참하고 심각하다"며 "산호초들이 더 이상 스트레스와 회복의 자연스러운 순환을 거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산호초 군락이 색이 빠지고 몸체가 무너지는 현상을 겪고 있다. 사진은 바닷속 산호초 모습. ⓒ 픽사베이
산호초가 사라지면 바다도, 해안도 위험해진다
산호초는 단순히 '예쁜 바닷속 풍경'이 아니다.
산호초는 전체 해양 면적의 1%도 채 안 되지만, 해양생물의 25%가 이곳을 서식처로 삼는다. 산호초는 물고기의 산란장이자 먹이사슬의 시작점 역할을 해 '바다의 열대우림'으로 불리기도 한다.
동시에 산호초는 파도와 폭풍의 힘을 흡수해 해안선을 보호하는 자연 방파제이기도 하다. 산호초가 무너지면 어업으로 생계를 잇는 수백만 명의 생업이 흔들리고, 해안 마을은 태풍과 해일에 그대로 노출된다.
해양과학자 카를로스 두아르테 박사는 최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산호초의 백화 실태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두아르테 박사는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오르면 산호초의 70~90%가, 2도 오르면 최대 99%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럽연합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의 집계에 따르면 올해 8월 세계 평균 해수면 온도는 21.1도까지 올라 2024년 기록을 경신한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에 올해 발달 중인 엘니뇨까지 겹치면서 과학자들은 또 한 번의 전 지구적 백화현상이 임박했다고 보고 있다.
호주 제임스쿡 대학교의 테리 휴즈 명예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겉보기에 산호가 덮인 면적만 따지면 괜찮아 보여도 실제로는 다양한 산호 종이 줄어들고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휴즈 교수는 "이는 마치 숲이 사라진 자리에 풀밭이 들어서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풀은 금방 자라나 땅을 뒤덮지만 불이 나면 쉽게 타버리듯, 열에 강하지만 다양성이 낮은 산호 종이 빠르게 자리를 채우면서 정작 열에 약하고 희귀한 산호초 종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해양생태 전문가들은 오염저감이나 해안 개발규제 같은 지역 차원 대책도 도움이 되지만, 근본적 해법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바다가 더 뜨거워지는 것을 막는 데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