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연대, 연결을 노래한 음악이 이민자를 체포하고 추방하는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뒤바뀌었다. 아티스트들이 곡에 담았다고 밝힌 메시지와 배치되는 정치적 맥락에 음악을 끌어다 쓰는 백악관의 SNS 전략에 “내 음악을 사용하지 말라”는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
스웨덴 팝스타 자라 라르손이 9월17일(현지시각) 자신의 노래 ‘미드나잇 선(Midnight Sun)’을 사용한 백악관을 비판하는 틱톡 영상에서 ‘루저(loser)’를 뜻하는 ‘L’자 손동작을 하고 있다(왼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자라 라르손 틱톡/AP/연합뉴스
스웨덴 팝스타 자라 라르손은 트럼프 백악관이 자신의 히트곡 ‘미드나잇 선(Midnight Sun)’을 이민자 추방 홍보 영상에 사용하자 “너무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연예매체 ‘피플(People)’의 9월 17일(현지시각)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은 전날인 16일 틱톡에 이민세관집행국(ICE) 요원들이 사람들을 체포하고 수갑을 채워 연행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을 올렸다. 배경에는 라르손의 ‘미드나잇 선’이 흘렀다. 영상에는 노래 가사인 ‘끝없는 한밤의 태양(Never ending midnight sun)’을 비튼 ‘끝없는 추방(Never ending deportations)’이라는 문구도 등장했다.
9월16일(현지시각) 백악관 공식 틱톡 계정에 올라온 이민 단속·추방 영상에 자라 라르손의 ‘미드나잇 선(Midnight Sun)’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 ⓒ백악관 틱톡 계정
라르손은 17일 자신의 틱톡을 통해 직접 입을 열었다. 라르손은 ‘루저(loser)’를 뜻하는 L자를 이마에 만드는 손동작으로 영상을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이 ‘엄청 화났을 것’이라고 하던데 나는 그저 슬프다”며 “저 모습을 보는 게 진심으로 슬프고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특히 라르손은 영상을 만든 사람과 직접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우리 역시 이 영상에 나오는 사람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며 “우리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그저 인생에서 서로 다른 패를 받았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누려온 삶의 많은 부분 역시 ‘운’이었다고 강조했다. 라르손은 스웨덴에서 태어나 의료와 교육의 혜택을 받고 여러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며 “나는 내가 살아오며 누린 것들을 생각하면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중 정말 많은 부분이 운”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영상은 너무 비인간적이다. 영상 속 사람들은 실제 사람들”이라며 “모든 것이 밈이 되고 ‘하하하’ 하고 웃을 영상이 되는 게 너무 이상하다”고 말했다.
특히 자신의 노래가 사용된 것을 두고 “이 곡은 자연과 우주, 본질적으로는 사람들과 연결돼 있다고 느끼는 것에 관한 노래”라며 해당 영상은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 “거대한 분열”을 만든다고 비판했다.
라르손의 노래가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을 홍보하는 콘텐츠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라르손은 지난 1월11일 인스타그램에 이민자와 트랜스젠더 등을 “사랑한다”고 나열한 뒤 “나는 ICE가 정말 싫다”고 밝혔다.
이틀 뒤 백악관은 라르손의 히트곡 ‘러시 라이프(Lush Life)’에 맞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춤추는 영상을 틱톡에 올렸다. 영상에는 “우리는 추방을 사랑한다”, “우리는 ICE와 법 집행기관을 사랑한다” 등의 문구가 등장했다.
자신의 음악이 이민 단속·추방을 홍보하는 콘텐츠에 사용된 데 반발한 아티스트는 라르손뿐만이 아니다.
2025년 12월1일(현지시각) 백악관 공식 틱톡 계정에 올라온 ICE의 이민 단속 영상에 사브리나 카펜터의 ‘주노(Juno)’가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 ⓒ백악관 틱톡
2025년 12월1일 백악관은 사브리나 카펜터의 ‘주노(Juno)’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해 ICE 요원들이 사람들을 쫓아가 체포하고 수갑을 채우는 장면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카펜터는 다음 날 엑스(X, 옛 트위터)에 “이 영상은 악하고 역겹다”며 “나와 내 음악을 당신들의 비인간적인 의제를 위해 절대 이용하지 말라”고 적으며 반발했다.
2025년 11월4일에는 국토안보부(DHS)와 백악관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올 아메리칸 비치(All-American Bitch)’를 사용한 영상이 올라왔다. ICE가 사람들을 구금하는 장면과 이민자들의 ‘자진 출국’을 홍보하는 내용을 엮은 영상이었다.
로드리고는 해당 게시물에 “내 노래를 인종차별적이고 혐오적인 선전에 절대 사용하지 말라”고 댓글을 남겼다. 해당 댓글은 이후 사라졌지만 이미 캡처돼 온라인에 확산됐으며, 이후 인스타그램에서 로드리고의 음악이 삭제됐다.
2025년 12월8일에는 SZA의 ‘빅 보이즈(Big Boys)’가 ICE의 이민자 체포 장면을 담은 백악관 영상에 등장했다. 백악관은 노래 속 ‘커핑 시즌(cuffing season)’이라는 표현을 수갑을 채운다는 의미의 ‘cuffing’과 연결해 “지금이 커핑 시즌이라고 들었다”는 문구를 달았다.
2025년 12월8일(현지시각) 백악관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ICE의 이민자 체포 영상에 SZA의 ‘빅 보이즈(Big Boys)’가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 ⓒ백악관 유튜브 채널
2025년 12월8일에는 SZA가 참여한 2022년 미국 NBC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의 코미디송 ‘빅 보이즈(Big Boys)’가 ICE 요원들의 체포 장면을 담은 백악관 영상에 사용됐다. 백악관은 노래 속 ‘커핑 시즌(cuffing season)’이라는 표현을 수갑을 채운다는 의미의 ‘cuffing’과 연결해 “지금이 커핑 시즌이라고 들었다”는 문구를 달았다.
SZA는 지난해 12월10일 자신의 엑스(X)를 통해 백악관을 비판했다. 그는 “백악관이 공짜 홍보를 위해 아티스트들을 레이지 베이팅하는 것은 극도로 어두운 일”이라며 이를 “비인간성과 충격 전술”이라고 지적했다. ‘레이지 베이팅(rage baiting)’은 온라인에서 의도적으로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해 반응과 관심을 끌어내는 행위를 뜻한다. SZA는 백악관이 아티스트들의 반발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해당 콘텐츠가 더 널리 퍼지는 효과를 얻는다고 본 것이다.
6월9일(현지시각) 백악관 공식 틱톡 계정에 올라온 ICE의 이민자 체포 영상에 아리아나 그란데의 ‘바이(bye)’가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 ⓒ백악관 틱톡
2026년 6월9일에는 아리아나 그란데의 ‘바이(bye)’가 ICE 요원들이 사람들에게 수갑을 채우고 연행하는 모습을 담은 백악관 틱톡 영상에 사용됐다. 백악관은 영상에 “바이바이(Bye-bye)”라는 문구를 붙였다.
그란데는 해당 게시물에 직접 “제 음악을 이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이며 끔찍한 짓과 연관 지어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댓글을 남겼다. 이후 영상에서 그란데의 음악은 삭제됐다.
2025년 7월 29일(현지시각) 백악관 공식 엑스(X, 옛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이민자 추방 홍보 영상에 제스 글린의 노래 ‘홀드 마이 핸드(Hold My Hand)’가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 백악관 엑스
2025년 7월29일에는 제스 글린의 ‘홀드 마이 핸드(Hold My Hand)’가 포함된 ‘Jet2 Holiday’ 음원이 백악관의 추방 홍보 영상에 등장했다. 백악관은 수갑을 찬 사람들이 차량에서 내려 비행기에 오르는 장면에 “ICE가 당신에게 추방행 편도 Jet2 휴가를 예약해줄 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문구를 붙였다.
글린은 7월30일 인스타그램에 “이 게시물을 보니 정말 역겹다”며 “내 음악은 사랑과 화합,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지 분열이나 증오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사랑과 연대, 연결을 노래한 음악부터 이별을 노래한 팝송까지, 백악관은 곡에 담긴 맥락을 이민 단속과 추방을 홍보하는 정치적 메시지로 바꿔 활용해왔다. 그때마다 아티스트들의 대답은 비슷했다. “내 음악을 사용하지 말라.”
한편, 트럼프 행정부가 이민 단속을 강화하면서 ICE의 체포 인원도 크게 늘었다. 로이터가 미 정부의 예비 자료를 분석해 14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ICE는 8월 한 달 동안 약 5만1천 명을 체포했다. 같은 달 추방된 이민자는 하루 평균 약 1200명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