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이 조욱제 현 대표이사 사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승계 절차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욱제 사장은 2021년 3월 대표에 취임해 2024년 연임에 성공했고, 2027년 3월로 임기를 마칠 예정이다. 유한양행 대표이사 임기는 3년이며, 1회 연임만 허용된다.
유한양행의 대표 선임 결정권은 이사회가 갖고 있다. 유한양행이 공시한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포함된 ‘최고경영자 승계정책’에 따르면, ‘이사회는 추천받은 최고경영자 후보군에 대해 그 적정성을 심의 및 결의해 최종 1명을 주주총회 약 6개월 전 대표이사 후보자로 확정한다’고 돼 있다. 이에 따라 9월 중순까지는 차기 후보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업계에서는 내다보고 있다.
이렇게 확정된 최종 후보는 주주총회 전까지 약 반년 동안 경영 인수인계와 승계 과정을 밟게 된다. 이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되면 이사회 결의를 거쳐 대표이사로 공식 취임한다.
다만 올해의 경우 차기 대표 후보 선정이 이전과 비교해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전년 6~7월께에는 윤곽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내부 출신 부사장급 인사로 후보가 정해졌던 종전과 달리, 이번에는 외부 출신 사장급 인사가 포함되면서 이사회 내부의 고민이 깊어졌다는 추측이 나온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허프포스트와 한 통화에서 “아직 이사회 등 일정이 확정된 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열홍 사장, 이병만 부사장, 유재천 부사장 ⓒ 유한양행
◆ 차기 후보 3인방은? 첫 외부 출신 대표 선임될까?
이번 대표 선임 과정이 이전과 다른 점은 외부 출신 사장급 인사가 포함됐다는 것이다. 유한양행은 그동안 창업주인 유일한 박사가 1969년 고안한 전문경영인 체제를 그대로 지키면서, 내부에서 평사원으로 입사해 승진한 대표이사가 경영을 책임지는 기업문화를 수십 년간 이어 왔다.
아울러 신임 대표 후보군은 그동안 부사장급 인사로 선임해 구성해 왔다.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따르면 ‘최고경영자 후보군을 선임 약 2~4년 전부터 부사장으로 선임하고 사업경험과 역량을 보강할 수 있도록 최고경영자와 인사담당 임원 협의 하에 주도적으로 육성한다’고 하고 있다. 또 대표 후보군 중 이사회를 통해 차기 대표로 내정된 인사는 총괄부사장으로 승진시켜 취임 전까지 승계 절차를 밟도록 해 왔다. 현 조욱제 사장 역시 2020년 7월1일 총괄부사장에 오르면서 이 같은 과정을 거쳤다.
31일 제약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차기 대표 후보군은 세 사람으로 좁혀지고 있다. 김열홍 R&D 총괄 사장, 이병만 경영관리본부장 부사장, 유재천 약품사업본부장 부사장이 그 주인공들이다. 현 대표인 조욱제 사장을 제외하면 공시된 임원 중 부사장 이상급은 이들 3명이 전부다.
김열홍 사장은 외부 영입 인사로서 CEO 후보로 유력하게 부각되고 있는 인물이다. 1959년생인 김 사장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나와 2023년 2월까지 같은 학교에서 교수를 지난 종양혈액내과 전문의다. 고려대 암연구소 소장, 대한암학회 이사장, 아시아암학회 회장을 지냈고,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 자격을 갖고 있다.
2023년 3월 유한양행 R&D본부장(사장)으로 선임된 이후 ‘포스트 렉라자’ 신약 개발을 위한 파이프라인 확대를 주도해 왔다. 유한양행이 ‘글로벌 톱 50 제약사’ 도약을 목표로 R&D 중심 성장을 꾀하고 있는 만큼 전문성 면에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이병만 부사장은 1958년생으로, 홍익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유한양행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영업기획, 홍보, 약품사업, 경영관리 등 핵심 부서를 두루 거친 40년 경력의 ‘정통 유한맨’이다. 2021년 부사장 승진 후 2022년부터 경영관리본부장(CFO)을 맡으며 회사 살림과 내부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통적인 ‘유한양행형 CEO’에 가장 가까운 후보로 평가된다.
유재천 부사장은 1968년생으로,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유한양행에 입사해 종합병원사업부장, 일반병원사업부장, 마케팅본부장을 거쳐 약품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는 현장 중심의 영업·마케팅 전문가다. 유한양행의 주력 매출을 담당하는 약품사업에서 뛰어난 조직 장악력과 성과를 입증해 온 점, 경쟁 후보들에 견줘 비교적 젊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제약업계는 유한양행이 신약 R&D를 이끌 전문가(김열홍)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조직 안정과 내부 승계의 전통(이병만·유재천)을 택할 것인가 주목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R&D와 경영관리의 전문성을 각각 살리기 위해 공동대표 또는 각자대표 체제를 도입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유한양행 서울 동작구 본사 ⓒ 유한양행
◆ 회장 선임 가능성은?
유한양행은 2024년 회장·부회장직을 신설하는 내용으로 정관을 개정한 바 있다. 당시 유한양행은 주주총회를 거쳐 ‘회사는 이사회의 결의로서 이사 중에서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약간인을 선임할 수 있다’는 정관 조항을 수정해, 회장과 부회장을 추가하고 ‘이사 중에서’를 삭제했다. 그러면서 외부 인재 유치를 위해 자리를 만든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회장직 신설은 그간 ‘주인 없는 회사’라는 전통을 이어온 유한양행에 ‘오너’ 자리를 만든다는 해석을 낳았다. 특정 인사나 파벌에 의한 사유화 우려도 제기됐다.
논란이 불거지자 유한양행은 내규를 손질하는 방법으로 회장의 장기집권 가능성을 없앴다. 회장은 초임 대표이사만 선임될 수 있고, 연임 중인 대표나 전임 대표는 선임될 수 없도록 했다. 이에 따라 회장의 최대 임기도 자연스럽게 6년으로 제한된다.
지금까지 유한양행에서 회장 선임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내년 3월에 선임될 대표는 회장직에 올라 ‘대표이사 회장’이라는 직책을 얻을 수 있다. 이는 회사의 신사업 진출 등에 따른 조직 확대개편이 이뤄질 경우 가능한 시나리오다. 물론 이번에도 회장을 선임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