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탈퇴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저렴하지만 정제가 까다로운 베네수엘라산 중질유가 글로벌 시장에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HD현대오일뱅크는 국내 정유사 가운데 유일하게 열분해공정(DCU)을 보유하고 있으며, 설비 고도화율도 가장 높아 중질유 처리에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기술·설비 역량은 송명준 HD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사장이 이번 원유 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으로 꼽힌다.
HD현대오일뱅크의 기술·설비 역량이 원유 시장 변화 속에서 돋보인다. 인물은 송명준 HD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사장.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 시장 변화 속 돋보이는 중질유 처리 역량
8월28일 블룸버그와 악시오스 등 해외 언론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임시 정부는 미국으로의 원유 공급을 위해 미국 정부와 협의 중이며, OPEC 탈퇴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이는 2026년 5월 아랍에미리트(UAE)가 OPEC 및 OPEC플러스(+)에서 공식 탈퇴한지 약 4개월 만이다.
OPEC+는 기존 OPEC 회원국에 러시아 등 주요 비OPEC 산유국이 참여하는 확대 협의체다. OPEC과 OPEC+는 회원국 사이 협의로 원유 생산량을 조율해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베네수엘라와 미국 정부의 협의는 글로벌 석유 기업들의 베네수엘라 진출 가속화 요인이 돼, 중장기적으로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베네수엘라의 원유 매장량은 약 3030억 배럴로 세계 1위지만, 생산 인프라 부족 등의 이유로 2026년 7월 생산량은 하루 평균 116만 배럴에 그쳤다. 또 베네수엘라 탈퇴 시 OPEC의 원유 가격 통제력은 약화돼 회원국들 사이의 분열이 촉진될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사건은 국내 정유 기업들에게 원유 조달 다변화 측면에서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정유 기업들은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50~70% 정도로 매우 커,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상태다.
다만 베네수엘라의 수출 물량은 대부분 황 함량이 높고 끈적한 중(重)질유다. 점도가 낮고 불순물이 적은 경질유보다 정제가 까다로운 대신,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이 저렴한 중질유를 처리할 수 있는 고도화 설비를 갖췄는지 여부다. HD현대오일뱅크는 여기에 강점이 있다.
◆ 설비 고도화율 1등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상압증류시설(CDU) 대비 중질유 분해시설 비중을 뜻하는 설비 고도화율은 HD현대오일뱅크가 42%로 국내 주요 정유 기업 가운데 가장 높았다. 에쓰오일은 39%, GS칼텍스는 34%, SK에너지는 25%였다.
정경희 LS증권 연구원 역시 2026년 3월 HD현대 분석 보고서에서 정유 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고도화율이라고 설명했다. 이진명 신한투자증권 연구원도 8월28일 정유 산업 분석 보고서에서 고도화율이 높으면 수요가 강한 석유 제품의 생산 비중을 높여 실적에 빠르게 반영하는데 이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HD현대오일뱅크는 국내 정유사 가운데 유일하게 충청남도 서산 대산 공장에 열분해공정(DCU)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활용해 앞선 공정에서 나온 부가가치가 낮은 중질유 등을 고온에서 열분해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뽑아낼 수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롯데케미칼과 각각 60%, 40% 비율로 합작해 설립한 HD현대케미칼을 통해 중질유 기반 석유화학 설비(HPC)도 보유하고 있다. 보통 석유화학 제품 생산 원료로는 나프타가 활용되지만, HPC는 탈황중질유·부생가스·액화석유가스(LPG) 등 정유 공정 부산물을 선택적으로 투입할 수 있다.
다만 이번 베네수엘라의 OPEC 탈퇴 검토 소식이 HD현대오일뱅크의 수혜로 현실화되기까지는 여러 변수가 남아있다.
◆ 중장기적으로 우호적 환경 조성 전망
우선 베네수엘라의 OPEC 탈퇴 자체가 아직 확정된 사안이 아니다. 블룸버그도 "아직 최종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어 실제 탈퇴 여부와 시점은 유동적이다.
또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 및 수출 인프라는 오랜 경제 제재와 투자 부족으로 망가진 상태이므로, 글로벌 시장에 영향을 줄 만한 대규모 증산까지는 물리적인 복구 시간이 필요하다.
증산이 이루어져도 이를 한국으로 조달하려면 파나마 운하나 희망봉을 경유해야 해 운송 기간이 30일 이상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중동산 원유 조달 시의 14일보다 두 배 이상 길어 운송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HD현대오일뱅크가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직접 들여와야만 수혜를 보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2026년 1월 미국 정부가 베네수엘라 원유를 수입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는 소식이 나왔을 때,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에너지 분석 보고서에서 "베네수엘라가 원유 생산을 확대하면 멕시코·사우디아라비아·브라질 등은 미국 시장점유율을 뺏길 수밖에 없고 결국 중질유를 받아 줄 아시아로 향하게 될 것"이라며 "단기는 물론 중장기적으로 아시아에는 여러 국가의 중질유가 넘쳐나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HD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허프포스트코리아와의 통화에서 "베네수엘라산 원유 도입 관련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면서도 "원유 다변화를 위해 호르무즈 사태 이전부터 이미 중남미산 원유 도입을 해오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HD현대오일뱅크는 고도화설비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이어온 결과 국내 정유사 가운데 상대적으로 높은 고도화율을 확보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원료 선택과 제품 생산의 유연성을 높이고, 정제마진 변동에 관한 대응력과 원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