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 상승으로 빙하가 녹으면서 산 위에 새로운 호수가 생기고 커진 호수는 범람한다. 때로 빙하가 녹으면서 붕괴하고 주변 암석과 함께 무너져 계곡 아래로 쏟아진다.
네팔 히말라야에서는 하늘에서 비 한방울 내리지 않았음에도 큰 홍수가 일어나 수백 명이 목숨을 한순간에 잃었다. 인류는 기후온난화 속에서 '빙하 재해'라는 새로운 천재지변을 만나고 있다.
2026년 8월26일 네팔 누와코트 지역에서 홍수가 발생한 뒤 콜푸르타르(Kolpurtar) 일대 계속이 진흙으로 뒤덮여 있다. 플래닛랩스(Planet Labs) 위성사진(왼쪽). 네팔 누와코트(Nuwakot) 지역 트리슐리(Trishuli)에서 2026년 8월26일 발생한 대규모 홍수로 마을 전체가 진흙에 뒤덮여 있다.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의 한 장면. ⓒ플래닛랩스/AFP/로이터/연합뉴스
네팔은 히말라야 산맥의 남쪽 비탈에 자리한 남아시아 국가다. 최근 네팔에서 발생한 재해는 빙하와 산사면의 변화가 실제 산악지역의 재해로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2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오전 네팔 중북부 바그마티주 일대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로 네팔에서 최소 157명이 숨지고 484명이 실종됐다. 실종자 가운데 391명은 외국인으로 집계됐다.
로이터는 이날 위성자료를 분석한 전문가들을 인용해 해발 약 5200m 지점에서 빙하 일부가 붕괴해 약 1200m 아래 계곡으로 떨어진 것이 홍수의 시작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빙하에서 떨어진 얼음과 암석이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토사와 뒤섞였고, 하류에서는 급격한 홍수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현상을 ‘얼음-암석 사태(ice-rock avalanche)’로 설명했다.
다만 빙하 붕괴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네팔 당국은 재해 직전 발생한 지진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지진이 실제 붕괴를 촉발했는지는 불분명한 상태다.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고온으로 눈과 얼음이 녹은 것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빙하가 녹으면 산 자체도 불안정해진다
고산지대의 빙하는 산사면의 안정성과도 관련이 있다. 빙하가 후퇴하고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암석과 토양을 붙잡던 지반이 약해질 수 있고, 여기에 폭우나 폭설 같은 극한기상이 겹치면 산사태나 얼음-암석 사태가 발생할 위험도 커진다.
2026년 3월 국제학술지 ‘지구와 환경에 관한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발표된 ‘기후가 따뜻해지는 히말라야에서 발생하는 얼음-암석 사태와 효과적인 대비를 위한 경로’ 연구는 기후변화로 히말라야의 급경사면이 불안정해지면서 얼음-암석 사태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급격한 빙하 후퇴, 극한 강수, 영구동토층 악화 등이 이러한 위험과 관련 있다고 설명했다.
산사태가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현상도 관찰됐다. 2026년 국제학술지 내셔널 사이언스 리뷰(National Science Review)에 발표된 ‘기후변화에 따른 동부 히말라야 습곡대의 고도별 산사태 증가’ 연구는 1987~2020년 동부 히말라야 습곡대에서 발생한 기후 관련 산사태 8607건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해발 3000m 이상 지역에서 산사태로 발생한 연간 물질의 부피가 지난 30년 동안 5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 산사태 분포가 빙하 후퇴와 영구동토층 해빙이 나타나는 지역을 따라 더 높은 고도로 이동하는 현상도 확인했다.
32년 사이 '빙하 호수' 면적 80% 이상 증가
빙하가 녹으면서 나타나는 또 다른 변화는 산 위에 물이 고이는 것이다. 2026년 국제학술지 지구 시스템 과학 데이터(Earth System Science Data)에 발표된 ‘고산아시아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빙하 호수 접경 빙하 : 1990~2022년 자료’ 연구는 위성자료를 이용해 고산아시아의 빙하와 그 앞에 생기는 빙하 호수의 변화를 분석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1990~2022년 빙하 전면 호수의 전체 면적은 138.19㎢, 81.7% 증가했다. 같은 기간 빙하 면적은 324.43㎢, 5.1% 감소했다.
새롭게 형성된 빙하 호수는 1123개였다. 반면 485개 호수는 빙하와의 연결이 끊겼고, 이 가운데 25개는 완전히 사라졌다. 연구진은 힌두쿠시와 히말라야를 포함한 고산아시아 남부 지역에서 빙하와 호수의 변화가 특히 빠르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커진 빙하호, 한꺼번에 물을 쏟아낼 수도 있다.
2026년 8월7일 촬영된 스위스 알프스 글레치(Gletsch) 인근의 론 빙하(Rhone Glacier). 항공사진을 조합했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형성된 빙하호의 모습이 2021년 10월27일(위)과 2026년 7월24일(아래) 각각 담겼다. 5년 사이에 빙하호가 눈에 띌 정도로 커졌다. ⓒAFP/연합뉴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빙하호가 안정적인 저수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빙하호를 막고 있는 것은 콘크리트로 만든 댐이 아니다. 빙하가 밀어놓은 암석과 토사인 빙퇴석(moraine) 등이 자연제방 역할을 한다. 수위가 높아진 상태에서 산사태나 눈사태, 빙하 일부가 호수로 떨어지면 큰 파도가 발생하고 자연제방이 무너질 수 있다.
이때 호수에 고여 있던 물이 한꺼번에 하류로 쏟아지는 현상이 빙하호 범람(Glacial Lake Outburst Flood)이다. 물살은 산 아래로 내려가면서 암석과 토사까지 휩쓸어 홍수와 토석류로 피해를 키울 수 있다.
2026년 1월 국제학술지 엔피제이 내추럴 해저즈(npj Natural Hazards)에 발표된 ‘기후가 따뜻해지는 히말라야-카라코람 지역의 빙하호와 빙하호 범람: 현재의 이해와 과제, 앞으로의 방향’ 연구는 기존 기록을 분석한 결과 히말라야와 카라코람 지역에서 388건의 빙하호 범람이 확인됐다고 집계했다.
이 가운데 빙퇴석으로 막힌 호수에서 발생한 사례가 163건, 얼음으로 막힌 호수에서 발생한 사례가 144건이었다. 연구진은 얼음사태와 극한 강수 등을 주요 촉발 요인으로 꼽았다. 또 기온 상승과 빙하 후퇴로 이 지역의 빙하호 수와 규모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홍수는 더 이상 폭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기온 상승으로 빙하가 녹아 빙하호가 커지거나 빙하와 암석이 무너지는 과정에서도 물과 토사가 한꺼번에 쏟아지며 홍수가 발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