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책장을 나와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다. 빵과 캔디에 작품의 제목과 표지, 문장이 새겨지고, 랜덤 책갈피와 한정판 굿즈가 더해진다. 이제 문학은 읽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맛보고, 모으고, 간직하는 새로운 소비 대상으로 변하고 있다.
특히 2030세대를 중심으로 글자와 책을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소비하는 ‘텍스트힙’이 확산하고 있다. 책의 표지와 문장, 작가의 감성까지 하나의 콘텐츠로 즐기고 소장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문학의 활용 범위도 넓어졌다. 유통업계도 문학이 가진 고유한 감성과 이야기에 주목해 새로운 마케팅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GS25가 민음사·캐릭터 IP ‘오늘의 귀여움’과 협업해 선보인 ‘문학빵’. 빵 속에 민음사 문학 작품을 활용한 랜덤 책갈피를 넣어 문학을 맛보고 소장하는 경험을 더했다. ⓒGS25 공식 인스타그램 갈무리
대표 사례가 GS25의 ‘문학빵’이다. GS25는 최근 출판사 민음사, 캐릭터 IP(지적재산) 브랜드 ‘오늘의 귀여움’과 손잡고 문학 작품을 모티브로 한 빵을 선보였다. 빵 안에는 민음사 대표 문학 작품 표지에 ‘오늘의 귀여움’ 캐릭터를 입힌 투명 책갈피가 무작위로 들어 있다. 책갈피는 20종으로 구성됐으며, 이 가운데 3종은 GS25에서만 만날 수 있는 한정판이다.
문학빵은 출시 직후부터 높은 판매율을 기록하며 흥행하고 있다. GS25는 지난 21일 이 시리즈의 1차 신제품으로 ‘사랑에 대하여(모카번 커스터드맛)’와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깨찰빵 솔티밀크맛)’ 등 2종을 출시했다. 두 제품의 판매율은 현재까지 입고 물량의 약 95%에 달했다. GS25 전체 빵 카테고리에서도 매출 1·2위를 나란히 기록하고 있다.
실제 소비자 반응에서도 제품을 구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GS25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우리 동네 GS25 점포에는 재고가 없다”, “이 동네 저 동네 다 없다”, “공급을 늘려달라”는 등의 댓글이 잇따르고 있다. 주변 편의점의 재고를 찾아 나서겠다는 반응도 나온다.
높은 수요에 GS25는 문학빵 라인업도 확대한다. GS25는 26일 ‘오만과 편견(모카번 우유크림맛)’과 ‘나쁜 소년이 서 있다(깨찰빵 커스터드맛)’ 등 2종을 추가로 선보인다. 이에 따라 민음사와 협업한 문학빵은 총 4종으로 늘어난다.
문학빵의 인기에는 문학을 굿즈처럼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상품 구성이 자리 잡고 있다. 소비자는 빵을 먹으면서 어떤 책갈피가 나올지 기대하고, 원하는 디자인을 모으는 재미도 누릴 수 있다. 문학 작품의 이름이나 표지를 제품에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캐릭터와 랜덤 굿즈, 한정판을 결합해 문학 자체를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하도록 만든 것이다.
GS25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문학빵을 실제 독서 경험으로 연결하고 있다. 오는 9월 11일까지 민음사와 함께 ‘가장 달콤한 문장 선발대회’를 진행한다. 소비자가 문학빵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함께 즐긴 뒤 인상 깊은 문장을 골라 소개하는 행사다. 특정 도서를 지정하지 않고 소비자가 직접 책과 문장을 선택하도록 해 제품 구매가 작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문학과 식품의 결합은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롯데웰푸드는 앞서 출판사 부크크와 협업해 시집 ‘피치 원 바이트’와 ‘청포도 필라멘트’의 감성을 담은 ‘애니타임 복숭아맛’과 ‘청포도캔디’를 선보였다. 제품 패키지에 시집 표지 디자인과 글귀를 입혀 일상적 간식에 문학적 이미지를 더했다.
유통업계가 문학에 주목하는 이유는 제품에 새로운 ‘서사’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맛과 가격만으로 차별화하기 어려운 식품에 익숙한 작품의 제목과 표지, 문장을 더하면 소비자가 제품을 기억할 이유가 생긴다. 여기에 캐릭터와 굿즈, 한정판을 결합하면 구매를 넘어 소장과 공유까지 유도할 수 있다.
출판사에도 새로운 기회다. 소비자는 편의점에서 빵을 사고 책갈피를 접하는 과정에서 작품을 만나고, 이벤트를 통해 실제 책 속 문장까지 찾아볼 수 있다. 문학은 식품의 새로운 마케팅 소재가 되고, 식품은 문학이 새로운 독자와 만나는 접점이 되는 셈이다.
문학의 활용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유명 작품의 이름을 제품에 빌려 쓰는 수준을 넘어 제목과 표지, 문장, 감성을 먹거리와 굿즈로 옮겨 소비자가 읽고, 맛보고, 모으고, 공유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책장 속에 머물던 문학이 일상의 소비재와 만나 새로운 취향의 콘텐츠로 변주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