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른바 ‘경제적 D-Day’를 예고한 데 이어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24일(현지시간) 이란의 자금줄을 차단하기 위한 새로운 제재 방안을 발표했다. 미국이 이란을 국제 금융·무역망에서 떼어내는 이른바 ‘경제적 왕따 작전’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2026년 8월22일(현지시각) 이란 테헤란의 한 가판대에 이란 일간지 자메잠(Jame-Jam)이 진열돼 있다. 신문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묘사한 만화와 함께 ‘중복 제재 버전(Duplicated Sanctions version)’이라는 제목이 실려 있으며, 이는 이란에 대한 새로운 강력한 경제적 압박을 다루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은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과 기업에도 향후 2차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제재에는 디지털자산과 항공, 기술, 금, 해운 등 분야의 이란 관련 개인·기관 약 60곳이 포함됐다.
베선트 장관은 이번 조치를 이란 정권을 유지시키는 “모든 경제적 생명줄을 끊는” 작전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그는 이번 제재를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the toughest sanctions in history)”라고 표현했다.
47년째 이어진 대이란 경제 제재
그러나 이란 언론에서는 이번 제재를 새로운 압박이 아닌 과거 제재를 되풀이하는 ‘제재 재탕판’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 역사는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 사태가 발생하자 지미 카터 행정부는 그해 11월 이란 정부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했고, 이듬해에는 대이란 수출 금지 등 경제제재를 확대했다. 이후 이란의 테러 지원과 핵·미사일 개발 등을 이유로 제재는 계속 강화됐다.
1995년 빌 클린턴 행정부는 이란 석유산업에 대한 미국인의 투자를 금지한 데 이어 이란과의 교역·투자를 사실상 전면 금지했다. 1996년에는 이란·리비아 제재법(ILSA)을 제정해 이란 에너지 산업에 일정 규모 이상 투자하는 외국 기업까지 제재 대상에 포함했다.
2010년대 들어서는 이란의 금융·원유 거래를 겨냥한 제재가 한층 강화됐다. 이 같은 경제적 압박과 핵협상이 맞물리면서 이란과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은 2015년 핵합의(JCPOA)를 체결했다.
그러나 2018년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핵합의에서 탈퇴하고 대이란 ‘최대 압박’ 정책을 재개하면서 양국의 갈등은 다시 격화됐다. 미국은 이후에도 새로운 핵합의를 요구했지만, 양국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40년 넘는 제재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경제 제재가 이란에 고통을 줄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이란을 굴복시키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군사 압박까지 더했다
물론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과거 대이란 제재가 경제적 압박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이번에는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이 이어지는 가운데 경제 봉쇄까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도 24일 이번 조치의 한계를 짚었다. NYT는 미국이 이란 경제를 세계와 분리하려는 대규모 제재 계획을 내놨지만, 실제로 이란 경제를 얼마나 더 압박할 수 있는지, 또 이란이 핵 프로그램과 호르무즈 해협 문제에서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만큼 강력한 조치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베선트 장관 스스로도 이날 조치를 ‘경고 사격’에 가깝다고 인정했다.
미국의 ‘경제적 왕따’, 중국이 핵심 변수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2026년 8월2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재무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 때문에 핵심 변수로 떠오른 것이 중국이다. NYT는 이번 제재에서 외교적 핵심은 중국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중국은 이란산 원유의 최대 구매국인 데다 미국의 제재 위협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보호된 금융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을 본격적으로 제재할 경우 이란 압박은 강화할 수 있지만, 동시에 미·중 관계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중국은 이란산 원유의 핵심 구매국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중국으로 향하는 이란산 원유 선적량은 7월 하루 평균 82만3000배럴에서 8월 53만4000배럴로 감소했지만, 거래가 끊긴 것은 아니다. 이란산 원유를 다른 국가산으로 표시하거나 중국 위안화로 결제하는 등 제재를 우회하는 거래망이 활용되고 있다.
미국에도 딜레마가 있다. 중국의 금융기관과 기업까지 강하게 제재하면 이란에 대한 압박은 커지지만, 동시에 미·중 갈등과 세계 금융시장으로 충격이 번질 수 있다.
실제 NYT는 미국이 달러를 세계 기축통화로 활용해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독특한 힘을 갖고 있지만, 이를 지나치게 사용하면 각국이 달러 사용을 줄이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베선트 장관이 제3국에 즉각적인 2차 제재를 가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왜 내가 세계 금융시스템을 폭파하고 싶겠느냐(Why would I want to blow up the global financial system?)”라고 말한 것도 이런 부담을 보여준다.
경제 제재의 가장 큰 약점은 ‘시간’
또 다른 약점은 시간이다. 군사 공격이 단기간에 시설을 파괴할 수 있는 것과 달리 경제 제재는 외화 수입과 무역망, 금융거래를 서서히 압박한다. 그 사이 제재 대상국은 거래 상대를 바꾸고 새로운 결제 수단과 우회로를 찾을 수 있다.
특히 이란은 이미 40년 넘게 제재를 받아온 만큼 제재 회피를 위한 무역·금융망을 축적해왔다. 미국이 강력한 제재를 발표하더라도 이란 경제가 곧바로 멈추지 않는 이유다.
NYT가 이번 조치를 두고 구체적인 제재 내용과 실제 효과가 아직 불분명하다고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은 세계 금융망에 대한 영향력을 이용해 이란을 압박할 수 있지만 실제 효과가 나타나려면 제3국이 미국의 요구에 따라 거래를 끊어야 한다.
결국 이번 ‘경제적 D-Day’의 성패는 제재 명단의 규모만으로 결정되기 어렵다. 미국이 얼마나 오랫동안 압박을 지속할 수 있는지, 이란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그리고 중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국이 어디까지 미국의 제재에 협조할지가 관건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47년째 버틴 이란을 이번에는 무너뜨릴 수 있을까.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떠올리는 ‘경제적 D-Day’라는 이름까지 붙인 이번 작전의 성패는 이란의 버티는 시간과 중국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