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군 이지스 구축함이 남중국해에서 나흘간 동력을 완전히 상실한 채 표류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이지스함 안의 조리실과 화장실, 에어컨 가동이 중단됐고, 음용수 공급까지 차질을 빚어 인근 함정이 식사지원에 나서야 하는 상황도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이란 인근 해역에서 장기작전을 이어가는 미국 해군 장병들의 피로와 사기저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라 큰 파장을 낳고 있다.
미국 해군 벤폴드 구축함. ⓒ 미국 해군=연합뉴스
18일 영국 가디언과 미국 해군전문매체 USNI뉴스를 비롯한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미국 구축함 USS 벤폴드함은 올해 7월 남중국해를 항해하던 중 발전기와 관련된 기계고장으로 동력을 완전히 상실한 채 나흘간 표류한 것으로 파악된다.
매슈 코머 미국 해군 제7함대 대변인에 따르면 벤폴드함은 7월24일 조지워싱턴 항공모함 타격단 소속으로 인도·태평양에서 정례 작전을 수행하던 중 발전기 관련 기계고장으로 동력을 상실했다.
벤폴드함은 조지워싱턴 항모의 핵심 호위전력으로 대공 및 대잠수함 방어를 담당하는 최신예 구축함이다. 하지만 이 동력상실 사고로 함정 안의 필수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
코머 대변인은 동력장치에 이상이 생긴 기간에 조리실과 화장실, 에어컨 등을 이용할 수 없었고, 음용수 공급마저 원활하지 않아 같은 타격단 소속인 미국 순양함 USS로버트스몰스함이 벤폴드함에 타고 있는 수병들의 식사를 지원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벤폴드함은 4일 뒤인 7월28일 필리핀 수빅만으로 예인됐고, 동력장치는 복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 함정은 정비를 마치고 8월8일 수빅만을 떠나 임무에 복귀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첨단 전력으로 꼽히는 이지스 구축함이 기계결함 하나로 4일간 무력화되고 우방국 항구까지 예인돼야 했다는 사실은 단순 정비사고를 넘어 미국 해군 함정의 노후화와 장기배치에 따른 유지보수 부담을 그대로 드러낸 사례로 읽힌다.
특히 이번 사고는 이란 인근 해역에서 장기작전 중인 미국 해군장병들의 정신건강과 사기저하 우려가 고조된 시점에 발생해 더 충격을 주고 있다.
앞서 미국 언론들은 중동에 배체된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이 250일 이상 입항 없이 작전을 수행하면서 승조원이 바다에 투신을 시도하는 등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링컨함은 일본 요코스카를 모항으로 하는 조지 워싱턴함과 임무를 교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링컨함이 8개월 넘는 기간 해상에 머문 것이 지나치게 길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아니다, 충분히 길지 않았다"며 "링컨함이 곧 중동지역을 떠나면서 매우 유사한 다른 함정으로 교체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파병 장병가족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파병장병들이 겪는 정신적 압박과 열악한 함내 생활 여건에 대한 문제제기를 일축한 것을 두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기계고장으로 표류한 이지스 구축함과, 2050일 넘게 입항하지 못한 항공모함, 그리고 이를 문제없다고 일축하는 미국 백악관의 태도가 겹치면서 미국이 자랑해온 압도적 해군력에 의구심이 짙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