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9천억 원대 재산분할금 다툼이 재상고심으로 이어졌다. 최 회장의 막대한 현금 조달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의 자금 마련의 주요 기반이 될 SK 주가가 상승하면 현금 확보에는 유리해지지만 재상고심에서 재산분할 비율을 낮출 수 있는 법리적 주장과는 상충될 수 있어 주가 등락에 따른 계산이 복잡해진 상황으로 풀이된다.
기한 마지막 날 재상고를 결정하며 최 회장은 자산 매각, 대출 등을 위한 물리적 시간은 벌었지만 소송이 10년 가까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SK그룹 지배구조와 주가 향방을 둘러싼 경영 불확실성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26년 6월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산분할 파기환송심 2차 변론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 10년간 배당과 급여로 받은 8822억에도 마련하기 힘든 1조 원의 재산분할금
8월18일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이 고심 끝에 재상고 기한 마지막 날인 14일 재상고를 결정한 데는 현금 9440억 원을 마련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던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 회장은 7월24일 재산분할 소송 파기환송심 기일에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금으로 9440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었다.
이는 재계 2위 그룹 총수로서 배당과 급여로 적지 않은 현금을 수취해 온 최 회장에게도 단번에 마련하기는 쉽지 않은 수준의 금액으로 평가된다.
기업분석전문기관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최 회장이 2016년부터 지주사 SK로부터 받은 배당금은 7755억 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SK 및 SK하이닉스에서 받은 급여까지 합치면 10년 동안 경영의 결과물로 받은 금액은 모두 8822억 원에 이른다.
다만 이 금액이 모두 최 회장의 현금성 자산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은 희박한 것이 사실이다. 배당 및 근로소득에 관한 세금 등을 고려하면 실제 손에 쥔 금액은 크게 줄어들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또 그룹 지배력 유지를 위한 지분 매입, 기존 주식담보대출에 관한 이자 상환, 개인적 투자 및 지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실제 동원할 수 있는 유동성은 눈에 보이는 금액보다 크게 적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가중되는 막대한 이자 비용도 최 회장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파기환송심 법원의 판단에 따라 확정판결 이후 재산분할금을 모두 지급할 때까지 연 5%의 지연손해금이 발생하는데 연간 472억 원, 이를 단순 환산해도 하루 이자만 약 1억3천만 원에 육박한다.
◆ SK 주가가 올라도, 내려도 고민이다?
최 회장의 주요 현금 마련 창구로는 개인적으로 보유한 SK실트론 주식 매각이 꼽혀왔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실트론 지분은 29.39%가 그 대상이다. 최근 지주사 SK가 70.61%를 2조3천억 원에 매각하기로 거래 상대방인 두산과 합의하면서 최 회장이 보유한 SK실트론 지분의 가치는 산술적으로 9570억 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재산분할금을 단번에 마련할 수 있는 수치로 보이지만 양도소득세, 총수익스와프(TRS) 관련 수수료 등을 고려하면 실제로 최 회장이 SK실트론 지분 매각으로 확보할 현금은 5천억 원 미만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 회장은 2017년 주식 등 자산의 매수자를 대신해 재무적투자자가 자산을 사들이는 파생거래인 TRS 계약으로 SK실트론 지분을 인수했다. 또 모수가 되는 최 회장의 SK실트론 지분 가치 자체도 경영권 프리미엄이 없어 산술적으로 9570억 원 아래로 형성될 공산이 크다.
이에 최 회장이 SK 주식을 활용해 현금을 마련할 방안으로는 SK 주식을 담보로 받는 대출이나 지분 일부 매각까지 거론된다. 여기서 최 회장의 셈법이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SK 주식을 활용한 주식 담보대출이나 SK 지분 일부 매각의 방법은 SK 주가가 높아질수록 최 회장에게 유리한 구조로 파악된다. SK 주가가 높아져야 주식 담보 대출 여력이 더 커지고 최후의 방안으로 꼽히는 SK 주식 일부 매각에서도 더 적은 주식을 팔고도 더 많은 현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SK 주가 상승은 최 회장 측이 재상고심에서 다툴 것으로 예상되는 논리와 배치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재상고심에서는 재산분할 비율이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가치의 산정 시점을 파기환송심 변론종결일인 2026년 6월26일(종가 81만 5천 원)이 아닌 이혼소송의 항소심 변론종결일인 2024년 4월16일(종가 16만 원)으로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주가가 급등한 사정을 분할 비율(노 관장 33%)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주가 상승을 실제 지분 가치에 반영하지 않았지만 정성적으로 고려한 것인데 법조계에서는 이를 놓고 적절했는지 의문이 나오기도 했다.
최 회장 측도 SK 주가가 고점인 80만 원대와 비교해 30%가량 빠진 50만 원대에서 횡보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주가를 분할 비율에서 고려한 것이 모순됐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최 회장에게 SK 주가 상승은 재산분할금을 마련할 여력을 높이는 상황인데 반대로 재상고심에서 재산분할금 자체를 낮출 논리는 약해지는 셈이다.
◆ 재상고로 시간적 여유는 생겼지만 불확실성은 여전
2017년 7월 이혼조정 신청으로부터 시작된 최 회장과 노 관장 법정 공방은 올해를 넘겨 만 10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나오면서 SK그룹의 지배구조, 주가 향방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의 불씨도 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재계에서는 경영의 불확실성을 차단하는 차원에서 재상고를 포기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기도 했다.
법원행정처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4년 가사소송 상고심의 평균 처리 기간은 8개월가량으로 집계됐다.
이미 한 차례 상고심을 거친 만큼 대법원이 재상고를 기각하는 심리불속행으로 빠르게 법적 다툼이 마무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재산분할 규모 등에서 전례 없는 사례인 점을 고려하면 재상고심 역시 장기화할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재산분할 소송 역시 상고심의 판단이 나오기까지 1년4개월이 걸렸다.
최 회장이 SK실트론 주식 매각을 결정하더라도 실제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시점은 SK와 두산의 거래 종결이 예정된 1월로 예상된다. 최 회장 입장에서는 잠재적 재원으로 여겨지는 SK실트론 매각에 따른 현금확보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최 회장이 재상고를 제기한 데 따른 대응으로 노 관장 측도 방어 차원에서 부대상고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대상고는 상대방이 제기한 상고와 관련해 불리한 부분을 다툴 수 있는 장치다.
최 회장 법률대리인단은 8월14일 오후 11시59분 입장문을 내고 “최태원 회장은 여러 사정을 고려해 고심 끝에 상고장을 제출했다”며 “주주들과 그룹경영에 관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자세로 향후 절차에 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