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일본 문학상이 수천 편의 작품 가운데 무엇을 문학으로 인정할지 가려내야 하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
책 자료사진. ⓒ픽사베이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17일 일본 문학상 공모에 AI로 작성한 소설이 몰리면서 작품을 선별하고 심사하는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출판사 하야카와쇼보가 지난 3월 말 응모를 마감한 ‘제14회 하야카와 SF 콘테스트’에는 1012편이 접수됐다. 통상 약 400편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생성형 AI 사용을 허용해온 이 공모전은 다음 회부터 AI를 어디에 어떻게 활용했는지 밝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AI 사용 작품이 늘어난 현상은 심사 현장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닛케이에 따르면, 한 관계자는 자신이 읽은 응모작 가운데 10편 중 2~3편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흔적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AI가 문학상 심사대에 오른 것도 처음은 아니다. 2016년 일본 호시 신이치상에는 AI와 인간이 공동으로 만든 단편 4편이 출품됐고, 이 가운데 1편이 1차 심사를 통과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달라졌다. 제13회 호시 신이치상 일반부문에서는 수상작 4편 가운데 3편이 창작 과정에서 AI를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모작 2107편 가운데 AI 활용을 인정한 작품도 491편에 달했다.
AI는 더 이상 문학의 바깥에서 실험되는 기술이 아니다. 문제는 생성형 AI가 짧은 시간과 적은 비용으로 대량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변화가 출판시장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연구도 나왔다. 미국 연구진은 2023년부터 2026년까지 아마존에서 판매된 자가출판 장르소설 1만4419권을 분석했다.
그 결과 AI 생성 텍스트가 25% 넘게 포함된 것으로 탐지된 책들은 전체 도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처음에는 판매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판매량이 늘었고 상위 판매 순위에도 더 많이 진입했다.
다만 책은 빠르게 늘었지만 매출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 분기별로 판매 실적이 확인된 책의 수는 19.2배 증가한 반면, 전체 매출은 8.9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시장에 쏟아지는 책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시장의 성장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연구진은 생성형 AI가 작품의 질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지 않더라도, 빠르고 저렴한 대량 생산만으로 창작시장의 경쟁 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분석했다.
AI가 만들어내는 작품의 ‘양’뿐 아니라 ‘다양성’도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2024년 실린 연구에서는 293명이 짧은 이야기를 쓰도록 한 뒤 AI의 아이디어를 활용한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비교했다. 그 결과 AI의 도움을 받은 작품은 창의성·완성도·재미 측면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AI를 활용한 작품끼리는 서로 더 비슷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AI가 한 사람의 창작물을 개선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이 같은 AI를 활용하면 전체적으로는 작품의 다양성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일본어 소설을 대상으로 한 최근 연구에서도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인간이 쓴 작품과 AI가 생성한 작품, 인간과 AI가 함께 만든 작품을 비교한 결과 인간과 AI가 협업한 작품이 가장 높은 품질 평가를 받았다. AI가 인간의 창작을 보완하는 도구로 활용될 때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높은 완성도가 곧 독창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연구에서는 AI를 활용한 작품에서 개성이나 독창성이 떨어질 가능성도 나타났다. 한 사람의 작품을 더 잘 다듬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수많은 사람이 비슷한 AI를 사용한다면 결과물 역시 서로 닮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문학상에도 새로운 부담을 안긴다. AI는 작품을 만드는 비용은 낮추지만, 그 작품이 얼마나 독창적인지 읽고 판단하는 데 필요한 비용까지 낮춰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응모작이 늘어날수록 심사위원들은 작품의 완성도뿐 아니라 AI가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 인간의 창작은 어디까지였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창작의 문턱을 낮춘 AI가 문학상에는 오히려 더 까다로운 선별의 과제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AI가 쓴 작품을 기술적으로 찾아내면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AI 탐지 도구의 결과만으로 작품의 저자성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일부 문학상은 AI 사용 여부를 응모자가 직접 밝히도록 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처럼 AI를 금지할 것인지, 허용하되 공개하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AI 활용 자체를 창작의 한 방식으로 인정할 것인지 문학상마다 기준을 새로 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AI가 소설을 만드는 문턱은 낮아졌지만, 좋은 소설을 찾아내는 문턱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