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는 6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 모니터에 최고기온 상황이 표시돼 있다(왼쪽). 17일 집중호우와 산사태가 발생한 경남 거제시 옥포동 한 아파트에서 차량이 파손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일 경남 양산의 낮 기온은 42.5도까지 치솟았다. 근대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4년 이후 국내 최고기온이다.
올해 처음 도입된 폭염중대경보도 잇따라 발령됐다. 폭염중대경보는 하루 최고체감온도 35도 이상의 폭염이 이틀 이상 이어지는 지역에서 최고체감온도 38도 이상 또는 최고기온 39도 이상의 극심한 더위가 예상될 때 내려지는 최상위 폭염 특보다.
경북 칠곡군에 폭염중대경보가 발효된 7일 지천면 창평리 한 저수지가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내고 수면에는 녹조가 발생해 있는 가운데 피서객들이 수상레저를 즐기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연합뉴스
폭염이 길어지면서 비가 내리지 않는 기간도 길어졌다. 경남에서는 농업용수 부족이 심각해지면서 지난 4일 기준 밀양·양산·의령·산청·창원·거제·창녕·하동 등 8개 시·군의 농업용수 가뭄 대응 단계가 ‘경계’로 올라갔다. 경남 전체 농업용 저수율은 평년의 절반 수준이었다. 특히 밀양은 저수율이 30.4%까지 떨어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급수차와 소방차가 물을 실어 논밭에 공급했다.
17일 오후 경남 거제시 옥포동 도로가 집중호우로 물에 잠겼다. ⓒ연합뉴스
17일 밤부터 18일 새벽 사이 경남 거제에는 시간당 100㎜가 넘는 비가 쏟아졌다. 누적 강수량은 800㎜에 육박했다.
곳곳에서 침수와 산사태가 발생했다. 17일 오전 4시42분께 거제시 옥포동의 한 아파트 인근에서는 산사태로 토사와 빗물이 아파트 1층을 덮쳤다. 주민 2명이 구조됐지만 추가로 구조된 주민 1명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진 뒤 숨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물이 부족했던 땅에 이번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비가 쏟아진 것이다. 이런 날씨를 ‘올여름이 유난스럽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폭염과 가뭄, 폭우라는 서로 다른 극한현상이 짧은 시간 안에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상청 자료를 종합하면, 기온이 높아질수록 대기가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량이 늘고, 바다 수온이 높을수록 대기로 공급되는 수증기도 많아진다. 여기에 여름철 고기압이 한반도에 자리 잡으면 비가 적은 날이 이어질 수 있다. 이후 저기압이나 정체전선 등이 형성되면 축적된 수증기가 한꺼번에 유입되면서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쏟아질 수 있다.
기상청의 장기 관측자료에서도 이런 변화가 나타난다. 1912년 이후 우리나라의 폭염일수와 열대야일수는 크게 늘었다. 반면 강수일수는 줄었고 강수량과 강수 강도는 증가했다. 비가 내리는 날은 줄어드는데, 한 번 내릴 때는 더 많은 비가 내리는 양상이다.
17일 오후 경남 거제시 옥포동 한 차도가 범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집중호우의 변화도 뚜렷하다.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50년간 시간당 50㎜ 이상 호우는 연평균 12일에서 21일로 75% 증가했다. 장마철 시간당 100㎜ 이상의 극단호우도 2010~2023년 연평균 1.1회였지만 2024년에는 9회 발생했다. 짧은 시간에 좁은 지역으로 비가 집중되는 극한호우가 과거보다 잦아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극단적인 날씨가 각각 따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폭염이 길어지면 토양과 저수지가 마르고 농업용수가 부족해진다. 이후 집중호우가 찾아오더라도 필요한 만큼 물을 천천히 채워주는 방식으로 비가 내리는 것은 아니다. 짧은 시간에 비가 집중되면 침수와 산사태 같은 또 다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는 16일 경남 밀양시 무안면 백안 저수지에 모처럼 단비가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에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났다. 기상청이 지난 3월26일 발표한 ‘2025년 이상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기록적인 폭염과 시간당 100㎜ 이상의 집중호우, 108년 만의 극심한 가뭄이 잇따랐다. 기상청은 이를 두고 기록적인 폭염과 산불, 가뭄, 집중호우 등 ‘종합적인 기후재난’에 직면한 것으로 분석했다.
기후재난 시대의 여름은 ‘더 더운 여름’이 아니다. 폭염과 가뭄, 집중호우처럼 서로 다른 극단의 날씨가 짧은 시간과 좁은 지역을 사이에 두고 번갈아 나타나는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