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교통 인프라가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극단적 폭염이 유럽 물류경제 전반을 흔드는 구조적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라인강 수위는 역대 최저치로 떨어져 화물 운송에 마비 우려가 커지고 있고, 보험사 알리안츠는 폭염으로 인한 유럽의 경제손실이 2030년까지 8천억 유로(한화 약 1300조 원)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폴란드 남동부 제슈프 시내의 뙤약볕 아래로 한 시민이 걷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18일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유럽의 도로와 철로 등 교통인프라가 노후화된 상황에서 기후변화를 만나면서 경제적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온난화가 진행 중인 유럽대륙의 교통망이 폭염 앞에서 한계를 드러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6월 폭염이 유럽을 휩쓸 당시 독일 A2 고속도로 여러 차선이 열에 의해 부풀어 오르고 균열이 생기는 상황이 벌어졌다. 또한 스웨덴에서는 화물열차가 폭염으로 선로 휘어짐(선 커브) 현상으로 탈선하는 사고도 일어났다.
폭염은 유럽의 도로 인프라만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와 벨기에, 독일에서는 철도망이 폭염의 사정권 안에 들어갔다. 이 나라들은 철도망 긴급 점검에 막대한 인력을 투입하거나 운행을 축소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장 카스텍스 프랑스 국영철도(SNCF) 그룹 회장은 로이터와 나눈 인터뷰에서 "철도망이 고온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며 "3500여 명의 인력을 선로 점검에 투입했으며, 추가로 2천 명을 응급복구에 투입했다"고 말했다.
벨기에 철도 운영사는 철도전선 손상 우려로 일부 노선의 운행을 축소하고 서행 제한을 내리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프랑크푸르트와 기센 구간을 잇는 철도 노선에서 전선케이블에 화재가 일어나 열차 운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독일의 철도 노선이 선로 주변의 열손상으로 일부 구간의 운행을 제한했다"며 "올해 폭염은 유럽의 교통과 에너지, 수도 시스템 전반의 취약성을 동시에 드러냈다"고 바라봤다.
기후 전문가들은 앞으로 기록적 폭염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유럽의 철도와 도로 인프라에 근본적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해마다 여름에 같은 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폭염에 라인강이 마르자 물류가 통째로 흔들렸다
독일 라인강 카우프 지점. ⓒ AP통신=연합뉴스
기후변화로 인한 교통인프라 손상은 도로와 철로 위에서 멈추지 않았다. 유럽 내륙 수운의 심장인 라인강에서도 비슷한 위기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8월14일 독일 라인강의 주요 수로 관문인 코블렌츠 인근 카우프(Kaub) 지점의 가항수심(배가 오갈 수 있는 수심)이 10cm까지 떨어졌다. 이는 2018년 기록한 종전 최저치 25cm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유럽의 화학과 철강, 에너지 기업들이 잇따라 운송차질과 비용상승, 생산축소를 경고했고, 대다수 선박은 안전문제로 카우프 구간을 지나지 못하거나 20% 이하의 적재율로만 운항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물류업체 콘타르고는 로이터에 "우리는 한 가지 운송방식이 한계에 도달하면 다른 방식으로 전환해서 내륙수로, 철도, 도로 운송을 결합하고 있다"며 "고객들의 모든 컨테이너를 안전하게 옮길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유럽을 강타한 폭염이 남부 독일과 스위스로 향하는 석탄 및 연료공급에 병목현상을 일으키고 있어 운송비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폭염문제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도로와 철로, 강물에서 동시에 위험요소로 작용하면서 유럽국가들의 경제성장률과 재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 보험사 알리안츠는 올해 5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폭염이 지속될 경우 2026년부터 2030년까지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유럽 주요 나라가 겪을 국내총생산(GDP) 누적 손실이 최대 5~7%에 이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가별로는 프랑스가 2400억 달러(약 340조 원), 이탈리아 1470억 달러(약 207조 원), 독일 1310억 달러(약 185조 원), 스페인 1200억 달러(약 170조 원) 규모의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유로뉴스는 이 보고서를 인용해 "폭염이 부른 노동생산성 하락과 냉방수요 증가가 유럽 최대 경제국들의 성장을 갉아먹는 주요 동력이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알리안츠는 최근 추가로 내놓은 분석에서 이런 손실규모가 2030년까지 유럽 전체에서 최대 8천억 유로(약 1300조 원)까지 불어날 수 있다는 수치도 제시했다.
요컨대 유럽의 철도와 도로, 강물까지 뒤흔드는 폭염은 더 이상 여름 한철의 불편함이 아니라 국가 재정과 산업 공급망의 근간을 흔드는 구조적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