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끼에 커피만 마셔도 3만 원 안팎, 술까지 곁들이면 5만 원을 훌쩍 넘기기 때문이다. 친구 모임에 매번 참석하는 대신 몇 번 중 한 번만 얼굴을 비추거나, 생일 선물을 주고받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생일 알림을 끄는 이들도 있다.
치솟는 외식·여가비에 친구와의 만남마저 부담이 되면서 청년들의 인간관계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고물가가 식비와 주거비를 넘어 사람을 만나는 데 필요한 비용까지 끌어올리면서 청년들의 인간관계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프렌드플레이션(friendflation)’이다. 친구(friend)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말로,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높아지면서 만남이나 모임을 줄이는 현상을 뜻한다. 최근에는 단순히 친구를 덜 만나는 데서 나아가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어떤 방식으로 만날지까지 비용을 따지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 소비 행태에서도 이런 변화가 확인된다. 구인·구직 플랫폼 알바천국이 지난 6월 Z세대(1995~2010년생) 6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1.2%가 최근 1년간 친구와의 만남이나 모임 관련 지출을 줄였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83.9%는 만남이나 모임 횟수 자체를 줄였다고 응답했다. 친구를 만나는 빈도가 주 1회 미만이라는 응답도 64.6%에 달했다. M세대(1980~1994년생)까지 포함하면 친구와의 만남이나 모임 비용을 부담스럽게 느낀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90%를 넘어섰다.
청년들이 관계 비용을 줄이기 시작한 배경에는 빠르게 오른 외식비가 있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 6월 서울 지역 김밥 한 줄의 평균 가격은 3838원으로 1년 전보다 5.9% 상승했다. 한국소비자원이 조사하는 주요 외식 품목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같은 기간 삼겹살은 4.3%, 칼국수 3.6%, 냉면과 삼계탕은 각각 2.8% 올랐다.
김밥 한 줄이 4천 원에 육박하면서 ‘가볍게 밥 한 끼 먹자’는 약속도 만 원 단위의 지출이 됐다. 여기에 커피 한 잔만 더해도 비용은 2만~3만 원에 가까워지고, 술자리까지 이어지면 한 번의 만남에 5만 원이 넘어간다.
알바천국 조사에서도 응답자들이 한 번의 모임에서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는 금액으로 5만 원을 꼽은 응답이 가장 많았다. 5만 원을 기준으로 매주 한 차례 친구를 만나면 한 달 20만 원, 1년이면 240만 원이다. 여기에 생일선물이나 여행비까지 더해지면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지출은 더 커진다.
관계 비용은 밥값에서 끝나지 않는다. 여가와 여행 비용도 가파르게 올랐다. 2024년 7월부터 2026년 7월까지 전체 소비자물가가 4.9% 오른 사이 콘도이용료는 23.5%, 국제항공료는 20.4%, 호텔숙박료는 15.8% 상승했다.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 역시 큰 지출이 되면서, 여행 약속을 잡는 것조차 비용부터 따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반면 주거비와 생활비처럼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비는 쉽게 줄일 수 없다. 결국 허리띠를 졸라맬 때 손대기 쉬운 것은 외식·여가·친목처럼 ‘안 해도 되는 지출’로 분류되는 비용이다. 특히 소득 여력이 크지 않은 취업준비생과 사회초년생에게 친구와의 만남은 필요하면서도 언제든 줄일 수 있는 지출이 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비용을 아끼는 과정에서 인간관계의 형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대학가에서는 친목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모임보다 독서·등산·운동처럼 비용 부담이 적은 활동이나 취업·자격증·외국어 공부 등 뚜렷한 목적을 내건 모임이 선호되고 있다. 대학생 커뮤니티 동아리 모집 게시판에서도 ‘음주 없는 모임’, ‘소액으로 즐기는 취미’ 등을 내세운 모집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직장인들도 ‘돈이 드는 관계’부터 정리하고 있다. 매달 일정 금액을 내야 하는 계모임을 중단하거나, 생일 선물처럼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없애는 식이다. 단순히 만남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과 돈을 쓰는 관계에도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를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친목 자체를 위한 만남보다 취미·공부·운동처럼 관계의 목적이 분명한 모임을 선택하면서 인간관계 역시 점차 ‘목적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비슷한 변화는 해외에서도 나타난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34세 이하 1인 근로자 가구의 소득 대비 교제비용 비중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2.2%에서 2025년 1.3%로 낮아졌다. 미국에서도 물가 상승으로 친구를 만나는 데 경제적 부담을 느끼거나, 비용을 이유로 사교 모임을 건너뛰는 청년층이 나타나고 있다. 물가 상승이 식비나 주거비 같은 필수 지출을 넘어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까지 바꾸는 현상은 한국만의 일이 아닌 셈이다.
이런 변화가 장기화하면 청년들의 사회적 지지망까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연구원의 ‘청년 삶의 질 2025’에 따르면 2023년 기준 19~34세 청년 가운데 낙심하거나 우울해 이야기 상대가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사람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85.0%였다.
아파서 집안일을 부탁할 사람이 있다는 응답은 79.0%, 갑자기 큰돈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사람이 있다는 응답은 60.2%였다. 보고서는 세 가지 상황 모두에서 청년의 사회적 지지망이 최근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고물가가 바꾼 것은 청년들의 소비 목록만이 아니다. 누구를 얼마나 자주 만나고, 어떤 관계를 이어갈지까지 비용을 따지게 만들고 있다. 밥 한 끼, 커피 한 잔, 선물과 여행까지 관계에 비용이 붙으면서 이제 인간관계도 ‘선택과 집중’의 대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