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 기후변화로 꿀벌이 흩어지고, 나비들이 서식지를 옮기거나 잃어가고 있다. 벌과 나비는 과일과 채소를 열매 맺게 해주는 핵심 매개체여서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식량생산 기반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특히 전문가들은 나비의 서식지 이동을 생태계 전체의 위기를 예고하는 '조기 경보 신호'로 보고 있다.
꽃에서 꿀을 빠는 나비 모습. ⓒ 픽사베이
18일 영국 가디언을 비롯한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전 세계 나비 종의 약 10분의 1이 이미 지리적 서식범위를 벗어나 이동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나비가 기존 서식지를 떠나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결과
나비는 기온 변화에 워낙 민감해 아주 작은 온도 상승에도 즉각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비가 서식지를 빈번하게 옮긴다는 것은 지구의 온도변화가 그만큼 가파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샤완 차우두리 글로벌 변화생태학 연구소장은 세계 105개 나라 1758종의 나비의 이동양상을 분석한 뒤 가디언과 나눈 인터뷰에서 "나비의 서식범위가 극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이는 지구 생태계 전반에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나비는 조기경보 지표종으로 전 지구에 걸쳐 경고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차우두리 소장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서식지를 옮긴 나비의 약 80%는 기온상승으로 새롭게 살기 적합한 곳을 찾아 범위를 옮긴 경우였다.
구체적으로 인도와 방글라데시, 스리랑카가 원래 서식지였던 '토니 코스터' 나비는 2012년 호주에 진입한 뒤 연간 135km 속도로 이동하며 서식지를 옮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영국에서 가장 작은 나비인 '쿠피도 미니무스'를 포함한 약 27%의 나비는 온도상승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서식범위가 줄어 기존 지역에서 사라졌다.
나비와 벌이 줄어들면, 작물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비뿐만 아니라 벌도 열매를 맺게 해주는 매개체로서 중요하다. ⓒ 픽사베이
나비와 벌이 줄어들면 조류도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작물과 야생화를 비롯한 식물생태계도 큰 영향을 받는다. 궁극적으로 인류에 치명적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진다.
매트 포리스터 네바다 리노대학교 교수는 ABC뉴스 인터뷰에서 "나방과 나비의 밀도가 계속 줄면 새들의 먹이가 줄어들고 식물이 열매 맺는 것도 어려워진다"며 "결국 사람의 생존과 즐거움에 영향을 주는 식물도 없어질 것이다"고 말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인간이 식량으로 쓰는 전 세계 작물 종류의 약 75%가 벌과 나비 같은 곤충 매개체의 수분(受粉 : 꽃가루받기)에 의존한다.
하버드대학교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랜싯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벌과 나비 같은 화분매개 곤충이 완전히 사라지면 해마다 142만 명 이상이 기아나 영양결핍으로 인한 질환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닉 하드 미시간주립대학교 교수는 AP통신 인터뷰에서 "육상 곤충류의 감소 추세가 해마다 0.9%씩 나타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는데 이는 입이 쩍 벌어지는 수준"이라며 "이런 감소가 계속되면 생태계와 인류에 재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벌과 나비의 서식지 복원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들
벌과 나비와 같은 매개체가 없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 픽사베이
이런 문제를 두고 세계 곳곳에서는 나비와 같은 화분매개 곤충의 서식지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호주 맬버른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여겨졌던 '엘섬 코퍼 나비'가 지역사회와 수자원공사 야라밸리 워터의 복원노력에 힘입어 최근 조사에서 애벌레 수가 약 5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나비는 오직 '스위트 버사리아'라는 식물에 의존해 살아가는 예민한 특징을 지녔는데, 자원봉사자들이 이 식물 400여 그루를 새로 심어 서식지를 넓혔다.
벌의 생존을 돕기 위한 시민 차원의 움직임도 확산 되고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노 모우 메이(No Mow May)' 운동은 5월 한 달간 잔디 깎기를 미뤄 벌이 먹을 야생화가 자랄 시간을 주자는 캠페인으로 미국까지 확산돼 미국 430여 개 도시·대학이 참여하는 '비 시티 USA(Bee City USA)' 네트워크를 통해 해마다 규모를 키우고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는 2015년부터 양봉인 단체 '바이바이(ByBi)'가 도시를 가로지르는 '벌 고속도로(Bee Highway)'를 조성해, 옥상 정원과 발코니 화분을 이어 벌이 도심에서도 먹이를 찾을 수 있는 통로를 만들기도 했다.
국제기구 차원의 노력으로는 유엔식량농업기구가 2000년부터 '국제 화분매개체 보전 이니셔티브'를 운영하면서 벌과 나비와 같은 곤충들이 감소하는 원인을 모니터링하고 각 나라의 법제 정비를 지원하고 있다.
유럽연합도 2023년 '화분매개체를 위한 새로운 협약'을 발표해 2030년까지 벌과 나비와 같은 곤충의 감소세를 반전시키겠다는 목표 아래 서식지 복원과 생존 강화를 위한 연구에 수백만 유로를 투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