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들의 2026년 상반기 성적표가 나왔다. 성장의 동력은 대부분 증권과 보험 등 비은행에 있었다. 은행이 제 몫을 해낸 곳은 사실상 신한은행 하나뿐이었다.
5대 은행장의 임기가 연말 일제히 만료되는 가운데, 실적을 연임 명분으로 강력하게 내세울 수 있는 은행장이 정상혁 신한은행장 한 명뿐인 셈이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이런 강력한 ‘실적 명분’에도 불구하고 정 행장의 연임이 그리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3연임에 도전한다는 정 행장의 특수성이 연임의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혁 신한은행장이 7월6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소재 신한은행 연수원에서 열린 '2026년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신한은행
7일 각 금융지주의 실적발표 자료를 살펴보면, 신한금융을 제외한 나머지 금융지주는 대부분 은행이 실적 성장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KB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는 상반기 순이익이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3.1%, 4.4% 늘었다. 같은 기간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의 순이익 증가율은 모두 1.7%에 그치며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
농협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는 그룹 순이익이 늘어나는 동안 은행이 아예 역성장했다. 두 지주의 상반기 순이익은 각각 9.2%, 3.7% 증가했지만, NH농협은행과 우리은행의 순이익은 오히려 각각 2.1%, 11.9% 감소했다.
그룹 실적 성장의 발목을 잡지 않은 것은 신한은행이 유일했다. 신한은행의 상반기 순이익은 2조4585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5% 늘었다. 5대 은행 가운데 순이익 증가율이 5%를 넘긴 곳은 신한은행뿐이다.
정 행장은 지난해 신한은행의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끌었고, 올해 1분기 리딩뱅크 타이틀을 탈환한 데 이어 상반기까지 선두를 지켰다.
단순히 타이틀을 지킨 데 그치지 않았다. 2위와의 격차도 벌어졌다. 1분기까지만 해도 신한은행과 2위 하나은행의 격차는 529억 원에 불과했지만, 2분기를 지나며 상반기 누적 순이익 기준 2위 KB국민은행과 격차를 2331억 원으로 늘렸다.
성장을 이끈 것은 이자이익이었다. 상반기 이자이익은 4조8888억 원으로 9.5% 늘었다. 금리 하락기에 예대마진을 지켜낸 결과다. 순이자마진(NIM)은 상반기 1.602%로 지난해 같은 기간(1.547%)보다 높아졌고, 2분기에는 1.608%까지 올라섰다.
대출 성장도 뒷받침됐다. 6월 말 원화대출 잔액은 340조3398억 원으로 1년 새 5.4% 늘었다. 이 가운데 대기업·공공 부문이 14.9% 증가하며 성장을 주도했다. 가계대출 규제 국면에서 기업금융으로 활로를 찾은 셈인데, 정부가 강조하는 생산적 금융 기조와도 맞아떨어진다.
이에 “실적으로 연임 명분은 충분하다”는 문장을 쓸 수 있는 은행장이 사실상 정 행장 한 명이라는 평가가 금융권에서 나온다.
문제는 지배구조다. 지금까지 신한은행장 가운데 3연임을 했던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점, 그리고 금융당국이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의 장기집권을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 등이 정 행장 연임의 최대 변수로 꼽힌다.
정 행장의 임기는 오는 12월 31일 만료된다. 다시 선임되면 세 번째 임기다.
정 행장은 2024년 말 연임 당시 통상적인 ‘2+1’, 즉 1년의 추가 임기가 아닌 2년의 추가 임기를 받았다.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신임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해석됐다.
특기할 만한 점은 신한은행에 행장 3연임 전례가 없다는 것이다. 정 행장이 연임에 성공하면 신한은행 역사상 첫 3연임 행장이 된다.
여기에 당국의 시선도 겹치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6월22일 기자간담회에서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안과 관련해 “행장 선임 절차도 다수 예정돼 있는데 해당 스케줄에 차질이 없도록 입법과 모범규준이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 재임을 경계하는 당국의 시선이 금융지주 회장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 발언이다.
최근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의 은행장 인사 과정에서 은행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 역시 정 행장 연임의 변수가 될 수 있다.
금융감독원이 직접 지적한 것은 하나금융지주지만, 금융감독원의 이런 태도가 올해 연말에 있을 각 금융지주들의 은행장 인사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하나금융지주 정기 검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지주가 은행 최고경영자의 최종 후보군(숏리스트) 및 최종 후보 승인시, 은행 임추위의 의견 개진 절차가 없어 은행 임추위의 의견이 충분히 평가에 반영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은 이와 함께 “금융지주는 은행 최고경영자 경영승계시 은행 임추위가 지주 그룹 임추위에 의견을 개진하는 절차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